셰일에서 신재생으로 타깃 대이동
터키는 과거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 아시아·유럽·아프리카의 3개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오스만은 현재 터키의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수도로 정하고 서쪽의 모로코에서 동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까지, 북쪽의 우크라이나에서 남쪽의 예멘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다민족 제국이다.
18세기 후반부터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아시아와 유럽의 영토는 다른 나라에 점령되거나 독립하게 됐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로 멸망하게 되었으며 터키공화국으로 변모하게 됐다.
오스만이 쇠퇴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제국은 따뜻한 남쪽 땅을 갈망하고 있었다. 이에 러시아의 남하정책은 흑해뿐만 아니라 지중해, 팔레스타인 땅까지 진출하는 계획을 담고 있었다. 그만큼 터키와 러시아는 오래 전부터 충돌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현재까지 양국 간의 이러한 감정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스만과 러시아의 수많은 전쟁 중, 1853년 발발한 크림전쟁은 이슬람교를 대표한 오스만과 그리스 정교를 받아들인 러시아의 종교적 충돌의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당시 오스만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 상태였지만 영국과 프랑스 등이 가담하면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크림전쟁은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데 오스만의 참전을 조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만큼 오스만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실익을 얻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오스만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 독일 편에 서서 싸웠으나 패전국이 됐다. 그 결과 세브르 조약이 오스만의 독립을 위태롭게 했고 결국 오스만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너지 자원의 관점에서 볼 때,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다.
중동 지정학적 분열의 원인… ‘검은 황금’ 석유
1차 세계대전은 이스라엘과 중동전쟁, 1, 2차 걸프전, 최근 지속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 등의 원초적 발단이라 할 수 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군(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은 오스만이 지배하고 있던 중동지역의 경계선을 마음대로 결정짓는다. 이는 석유 사업과 이권에 필요한 지역을 유리하게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국경선이 만들어지면서 같은 민족이 갈라지고 대립 관계의 민족이 서로 합쳐지는 등 극도의 긴장감이 형성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국가들이 새롭게 출현했다. 특히 석유 매장량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종교·인종적 차이와 민족주의를 이용해 큰 혼란과 서로 간의 폭동을 야기한 다음 해당 석유 매장지역을 본격적으로 획득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미국인들은 이 전쟁에 참전하길 원치 않았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이용해 ‘승리 없는 평화(Peace without Victory)’라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1916년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미국의 28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지만 윌슨은 자신의 말을 뒤엎고 전쟁 참전을 선언한다. 이후 그는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전쟁에 참전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설립된 것이 공공정보위원회(Committeeon Public Information)이며, 이를 통해 본격적인 선전(Propaganda) 시대가 열리게 된다.
선전은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공산주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과, ‘아이젠하워 독트린’(Eisenhower Doctrine)을 통해 미국이 중동국가들에 대해 우호적임을 표현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미국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영국 정부를 상대로 압력을 넣으며 미국 석유기업들을 중동으로 진출시켰다. 1928년 7월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 자원 채굴권을 획득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 이어 명실상부한 중동의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석유산업 장악이었다.
서방의 석유기업들의 중동진출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출범을 야기했고 OPEC 회원국들은 유가 결정권을 쥐게 됐다. 이후 미국은 에너지 문제를 국가 안보 차원으로 승격시키고 문제 해소를 위해 현재까지 약 40년의 시간을 보냈다.
OPEC, ‘셰일혁명’에 대한 도전은 무모한 싸움?
미국은 세계 석유수요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에게 석유, 정확히 말해 유가 수준은 자국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요소다. 지난 2004년부터 세계 경제는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가 고도성장을 하면서 호황 국면을 맞이했다. 이러한 성장으로 석유 공급은 부족해졌고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선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오기 전까지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했다.
이 기간 동안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석유 최대 소비국인 미국은 비전통자원(Non-Conventional Energy)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은 ‘셰일혁명’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지난 2014년 하반기 국제유가 폭락의 주범이 됐다.
비전통자원이란 석유, 가스 등의 자원이지만 그 부존 상태가 다른 에너지를 의미한다. 즉, 기존 채굴방식으로 생산할 수 없는 자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전통 자원의 대표적인 형태는 셰일오일과 셰일가스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오일샌드, 초중질유 등이 있다. 이들은 기술적으로 채굴을 할 수 없거나 생산 비용이 높아 에너지로 분류되지 않았다.
셰일자원은 진흙으로 돼 있는 셰일층에 갇혀 있는 석유와 가스로써 미국 석유기업들은 이들 자원을 시추하기 위한 ‘프랙킹 기술(Fracking, 수평시추·수압파쇄)’을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초기에는 셰일오일보다 셰일가스 생산 비중이 높았다. 당시 미국은 가스의 가격이 비싸고, 소비추세도 빠르게 증가해 자국 생산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가스수입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셰일가스 ‘러시’가 확대됐고 실제로 2008년 이후 셰일가스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가스 가격이 폭락하게 된다. 지난 2012년 버락 오마바 대통령이 ‘셰일가스 시대’를 천명할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이상을 여전히 상회하고 있었으며 유럽이나 아시아 지역의 가스 가격은 9~15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미국만 가스 가격이 이전 6~8달러에서 2달러대로 내려앉았다. 이에 셰일가스 기업들은 생산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고 이번에는 셰일오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미국의 가스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 이는 셰일오일을 생산할 때, 셰일가스도 수반돼 생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의 전반적인 에너지 가격은 낮아진 상태를 유지하기 이르렀다.
셰일오일 투자가 늘자 단시간에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지난 2005년 기준 하루 700만배럴에서 2013년 1000만배럴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미국의 석유 생산량을 사우디아라비아의 생산 수준인 1100만배럴로 추정하고 있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 미국의 석유 생산량 증가는 분명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쳤고 일명 ‘저유가’ 시대는 현재 1년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유가가 재상승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셰일오일의 ‘경제성’이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현재 셰일오일의 생산비는 배럴당 약 50~60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OPEC의 중동 맹주국들의 원유 생산비는 배럴당 10~15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작년 OPEC 총회에서 사우디가 원유 감산 결정을 하지 않은 이유로는 가격 경쟁인 ‘치킨게임’을 통해 셰일오일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점이 가장 설득력 있다.
한편, 2015년 12월 OPEC총회에서 이란의 반대로 OPEC 회원국들은 원유감산 합의에 실패했다. 이는 지난해 OPEC 회원국들의 결정과 비교할 때, 그 배경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OPEC의 입장에서는 저유가를 유지할 경우 미국 셰일오일 기업들이 파산해 원유 공급량이 줄어들고 재차 유가가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을 수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 폭락이 발생한 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제유가는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분명 유가하락으로 미국의 셰일오일 시추 유정 수는 감소했다. 하지만 미국의 생산업자들은 보다 효율이 높은 광구에 이전대비 진전된 기술로 생산비를 낮춰 석유공급을 늘리고 있어 국제유가를 짓누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셰일오일은 전통자원과 달리 생산주기가 매우 짧아 이 또한 국제유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통자원은 광구를 개발하고 시장에 공급하는 데 상당 기간이 소요되지만 셰일오일은 불과 수 주일 안에 유정을 시추하고 석유를 생산해 시장에 공급이 가능하다.
게다가 기술발달로 인해 셰일오일 생산비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2015년 OPEC 회원국들의 감산합의 실패는 직전년도와 다르게 더 이상 중동 산유국들이 국제 원유시장에서 수요 공급을 주도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미국의 에너지 자원은 철저히 민간 중심의 상업적 시장에 의해 움직이고 있어 중동 산유국과는 달리 정책적 관리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그만큼 중동 산유국들이 ‘셰일혁명’과 싸우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 될지 모른다. 결국 OPEC 회원국들에게 ‘감산’은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은 셈이다.
산유국 신재생에너지 투자… 또 다른 패권전쟁의 시작
최근 중동 산유국들의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비전통자원 석유가 향후 국제에너지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돼, 중동을 비롯한 OPEC 국가들이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중동 산유국은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구조로 인해 정책 결정에 있어서 에너지 업종이 강력한 로비그룹으로 활동하며 재생에너지 발전 등 에너지전환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사우디, 쿠웨이트, 오만 등은 여전히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산유국의 재생에너지 정책 결정요인 분석’ 보고서를 통해, 산유국의 재생에너지 발전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비롯한 환경적 요인과 실업률 변수로 사용한 사회적 요인보다는 경제적 영향이 유의미하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실제 분석 결과 예상과는 다르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재생에너지 개발에 부(-)의 결과가 나타났다. 또한 기후변화에 관한 사회적 압력이 재생에너지 개발로 이어지는 데 아직 부족하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정책과 사회적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국내총생산(GDP), 원유 부존량, 석유수출수익비중을 통해 산유국에서는 화석연료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에너지 구조 전환을 통해 원유 수출량을 늘려 더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자 재생에너지 투자를 촉진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왜 OPEC은 감산을 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이다. 또한 비 OPEC 국가들도 ‘감산’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따라서 향후 국제 에너지 시장은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량 증대 및 석유수출 확대와 함께 신재생에너지의 경쟁이 동반될 확률이 높아진다.
미국과 OPEC의 ‘원유 치킨게임’에서 분명 유리한 쪽은 미국이다. 셰일에너지를 앞세운 것뿐만 아니라 미국은 ‘에너지 소비 대국’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에너지 소비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변수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다. 중국 또한 ‘소비결정권’을 쥐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국제 에너지 시장의 판도 변화는 끝이 아닌 출발선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75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