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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estaurant

[정동현·한끼서울]홍대 브런치 팬케이크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26) 마포구 버터밀크



홍대 버터밀크 팬케이크



한국은 브런치의 무덤이다. 외국에서는 흔해 빠진 브런치 집을 찾으려고 하면 강남까지 찾아들어가야 하는 것은 물론, 밀가루와 달걀 밖에 쓰지 않는 것 같은데도 값이 2만원을 훌쩍 넘긴다. 도대체 이런 걸 왜 찾아 먹어야 하나 회의를 품고 브런치 가게 앞에 서면 1분에 10장 씩 셀카를 찍어대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


몇 십분을 기다려 안에 들어가면 사방에 영어를 섞어 쓰며 시끄럽게 떠드는 족속 가운데 앉아 유기농이라고 라벨을 붙인 풀 죽은 푸성귀와 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홀랜데이즈 소스를 찍어 먹게 된다. 그리고 나는 끝없이 오르는 강남 지대와 형편없는 음식에서 만족을 찾는 감식안 없는 사람들에 대해 홀로 분노하고 체념하며 결국 슬퍼한다.


그 형국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브런치를 먹어야 하는 날이 있다. 늦잠, 느즈막한 오후, 향기로운 커피와 달콤한 팬케이크, 뒤이어 찾아오는 나른한 포만감을 대체할 것은 없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간다.



홍대 버터밀크 외관



그 목적지가 홍대 앞이 될 줄은 몰랐다. 대학가는 먹을 것이 없다. 대학생들 지갑 사정은 뻔하고, 그 때문에 싼 값에 음식을 식당만 남는다. 홍대에서 먹을 만한 것은 1만원이 안 되는 일본 라멘 뿐이다. 애초에 한국에서 라멘 붐이 일어났던 곳이 홍대였고 덕분에 지금도 유명한 라멘 집들은 홍대 근처에 다 몰려 있다. 그런데 라멘 말고도 홍대에서 먹을 만한 것이 있다고 했다.


한국 추위는 매일 기록을 갱신했고 지하철 안은 두꺼워진 외투만큼 불쾌해졌다. 이 겨울 날, 외출 할 때마다 약간의 각오가 필요했다. 그 각오 총량이 늘어난 만큼 홍대 거리는 인적이 뜸했다. 점심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이미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홍대 정문에서 소극장 쪽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줄을 선 곳이 있었다. 팬케이크 전문점 ‘버터 밀크’였다.


이 집 유명세는 입소문 범주를 넘어섰다. 한 시간 정도는 기본으로 기다린다고 했다. 가게 크기는 그 유명세에 비해 턱없이 작았다. 사람들이 줄을 서야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이미 선 줄이었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기온에서 사람들은 두껍고 긴 코트를 입고 떨었다. 가게 안에는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음식을 받은 사람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버터밀크 내부와 주방 모습



추위에 악이 받혔다.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털 모자를 뒤집어 썼다. 뒤에 선 연인은 세상 마지막 날이라도 된 양 서로를 껴안고 놓지 않았다. 문 밖에 서서 사람들이 음식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누구는 웃었고 누구는 사진을 찍었다.


주방은 쉬지 않았다. 반백 머리에 바싹 마른 여자는 달걀을 풀고 거품을 냈으며 팬케이크를 구웠다. 털모자를 쓰고 홀을 담당하는 중년 여자는 주문을 받고 그릇을 치웠다. 빠른 리듬은 아니었지만 느리지도 않았다.


잠시 후 사람들이 무더기로 일어났다. 가까스로 난 자리에 앉았다. 얼어버린 몸이 주방에서 흘러나온 달큰한 열기에 휩싸였다. 기다린 만큼 욕심이 났다. 버터밀크 팬케이크, 오리지널 팬케이크, 베이컨과 스크램블 에그가 든 샌드위치, 딸기와 부라타 치즈를 올린 샐러드를 시켰다.



버터밀크 베이컨과 스크램블 에그가 든 샌드위치



“다 드실 수 있겠어요? 저희 가게는 포장이 안 되는데요.”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종업원이 정중한 말투로 물었다. 또 이 가게 앞에서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괜찮다’고 답을 했다.


주방은 무언가를 탓할 것이 없었다. 깨끗했고 분주했으며 움직임에 낭비가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음식이 나왔다. 버터를 작게 잘라 올린 팬케이크 볼륨감에 안심이 됐다. 음식이 나오는 속도가 빠르고 그 모양새가 괜찮다면 그 음식 맛은 어느 정도 보장된다. 주방이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이고 효율은 곧 질의 바로미터다.



버터밀크 딸기와 부라타 치즈를 올린 샐러드



직접 만든 부라타 치즈는 우유의 고소한 풍미가 진하게 느껴졌다. 위에 올린 요거트와 꿀은 산미 있는 딸기와 이질감 없이 어울렸다. 팬케이크는 그 음식이 본래 가져야 할 성질, 부드럽고 폭신하며 달콤한 맛을 다 가지고 있었다. 버터밀크를 섞은 팬케이크는 발효된 산미를 지녔고 오리지널 팬케이크는 밀가루와 우유, 달걀의 온기가 느껴졌다.


아마 그날이 따스한 봄날이었다면, 바삭거리는 셔츠와 팔이 훤히 보이는 반팔 티, 여자들의 웃음소리, 밝은 태양이 있었다면 나는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허리를 뒤로 젖힌 채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대신 나는 주린 배를 채우려 급히 팬케이크를 찢어 입에 넣었고 배고픈 선원처럼 샌드위치를 씹어 넘겼다.


식당은 곧 ‘판매 종료’라는 입간판을 내걸었다. 밖은 추웠고 날은 어두워졌다. 색이 바란 아스팔트 길을 달렸다. 나는 팬케이크의 도톰한 속살이 떠오를 때마다 차 속력을 줄였다. 도시의 독한 냉기도 조금은 사그라든 것 같았다.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35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