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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세계사회포럼에 관한 호주 민주사회당(DSP) 전국위원회 보고서

세계사회포럼에 관한 호주 민주사회당(DSP) 전국위원회 보고서



진보평론  제9호                                 딕 니콜스(Dick Nichols)(호주 민주사회당 정치위원)



* 번역: 주일식(서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1. 서론

이 보고서는 제4차 인터내셔널 국제집행위원회가 2월 17-22일 모임에서 제출한 행사준비, 참여정치세력, 재정상태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또한 진행중인 반세계화 운동에 관한 평가를 포함하고 있다.

2.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WSF)의 기원

매년 1월말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열리는 부자와 권력자의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 대항하려는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구상은 수많은 브라질 비정부기구(NGO)에 유래한다. 그들은 1998년에 프랑스인들의 다자간투자협정(MAI)에 대한 반대시위가 프랑스 정부로 하여금 그 협정에 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밀회의에서 철수하도록 강제하고, 이후 연속적인 협상결렬을 이끌어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또한 유럽의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미 반(反)다보스(anti-Davos)모임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대중시위와 시애틀, 워싱턴, 프라하의 시위를 넘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대안들을 논의할 수 있는 긍정적 제안의 국면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이러한 비정부기구의 두 회원인 브라질의 ‘시민을 위한 기업가연합’(CIVES)의 대표 오데드 그라주(Oded Grajew)와, ‘지구정의센터’(CJG)의 프란시스코 휘태커(Francisco Whittaker)는 프랑스 ‘금융과세연합’(ATTAC)의 의장이자 르몽드 디플로마티끄(Le Monde Diplomatique)의 편집자인 베르나르 까쌍(Bernard Cassen)에게 이 생각을 전하였다. 까쌍은 그러한 생각에 열정을 가지게 되었고, 포럼을 브라질 노동당 좌파중심의 연합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참여예산제의 채택으로 유명하게 된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egre)에서 열 것을 제안하였다.

다음 단계는 2000년 2월 상파울로에서 8개 브라질 조직들 - 브라질 ‘비정부조직연합’(ABONG), 브라질 ATTAC, 브라질 ‘정의와 평화를 위한 모임’(CBJP), ‘시민을 위한 기업가연합’(CIVES), 브라질 ‘노동조합센터’(CUT: Central Unica dos Trabalhadores), 브라질 ‘사회경제분석연구소’(IBASE), 지구정의센터(CJG) 및 ‘땅 없는 자들의 행진’(MST) - 간의 협조협정에 사인하는 것이었다. 이 조직들은 포르토 알레그레 시장 라울 퐁(Raul Pont)과, 포르토 알레그레가 수도인 리오그란데 두 술의 주지사 올리비오 두트라(Olivio Dutra)에게 이 포럼을 제안하였다. 두 사람이 동의하자 브라질의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광범한 지지위원회가 설립되었다.

6월말에 이 위원회에서 파견한 인물이 제네바에 가서 UN의 코펜하겐 +5모임(사회개발정상회의)에 대한 대안적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조직들에게 이러한 견해를 표명하였다. 브라질 노동자당(PT) 내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제4 인터내셔널) 성향의 리오그란데 두 술 부지사 미구엘 로세토(Miguel Rossetto)는 대표단의 일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포럼에 대한 지지를 약속하였다. 이 시점에 광범위한 NGO와 사회운동단체들로 구성된 국제지지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ATTAC과 월든 벨로(Walden Bello)의 ‘포커스 지구남반구’(Focus on the Global South)가 이 사업을 주도했다.
포럼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또 다른 추진력은 토빈세(tobin tax) 도입을 위한 유럽 의원모임과 프랑스 공산당 의원 프란시스 부르쯔(Francis Wurtz)에 의해 지도되는 통일유럽좌파(GUE) 의원모임과 같은 단체들로부터 비롯되었지만, 프랑스 혁명공산주의동맹당(LCR)의 유럽연합의원인 알라인 크리바인(Alain Krivine) 및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

세계사회포럼 네트워크 내부에는 두 개의 주요 축이 존재했다:
급진적 반자본주의적 진영, 세계금융 및 무역제도 폐지론자, 제3세계 채무 말소론자, 반세계화운 동 이전에 있었던 쟁점들(토지개혁, 환경문제 등)에 대한 급진적 관점의 대변자들. 제4 인터내셔널이 급진적 진영 내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혁명공산주의동맹당(LCR) 의원모임과 삐에르 루세(Pierre Rousset)가 의장인 그 의원모임의 사무국이 핵심적인 연락사업을 맡았고, 미구엘 로세토(Miguel Rossetto)가 리오그란데 두 술의 행정부 내에서 조정업무를 맡았으며, 사회민주당 당원들이 조직사업과 관련되는 중요한 많은 직책들을 맡았다. 그리고 프랑스 ATTAC의 크리스토프 아기통(Christophe Aguiton)이 국제지지위원회에서, 구스타보 아리시스(Gustavo Aricis)가 CUT의 국제사무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 외 비아 캄페지나(Via Campesina)를 통해 국제적으로 연결된 MST 역시 급진진영에 속했고, ‘포커스 지구남반구’ 역시 이 진영의 중요한 단체에 속한다.

현실주의적 진영은 기본적으로 지역적-지구적 수준에서 케인즈주의적 합의를 재생산하기를 바라는 세력간에 존재하는 매우 상이한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진영은 브라질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베르나르 까쌍(Bernard Cassen)과, (상파울로 그룹으로도 알려져 있는) 다수 기업협정서명자들에게 걸쳐 있다. 또한 룰라(Lula)를 포함한 브라질 노동자당 우파와, 까쌍 및 까쌍과 정치적으로 가까운 전 수상 장 피에르 슈벤느망(Jean Pierre Chevénement)을 둘러싼 프랑스 사회당 일부가 이 진영에 속한다.

3. 세계사회포럼 의제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세계사회포럼의 주요한 목표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적극적 대안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라는 데에는 참여자들간에 일반적인 합의가 존재하였다. 따라서 세계사회포럼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주요한 테마를 가지고 있었다. 부의 생산 및 사회적 재생산; 부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접근;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의 강화;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력. 매일 오전 네 개의 회의는 이 네 가지 테마와 관련된 특정한 논제를 발표했다. 오후에는 워크샵이 진행되었고, 저녁에는 저명한 활동가, 정치적 인물, 저자들에 의한 연설이 있었다.

또 다른 합의 지점은 전체 행사가 시민사회조직의 모임으로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세계사회포럼이 어떤 정당들에게도 포럼에서 정당을 대표하여 발언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세계의원포럼이라는 그들 자신의 포럼을 열 수 있었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의 대표들간의 모임도 있었다.

그러나 정당에 공식적 목소리를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합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결코 지켜지지 않았다.
첫 째, 브라질 노동자당은 세계사회포럼을 자신의 국내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데에 이용하려고 하였으며, 세계사회포럼을 국내정치의 이슈로 만들려고 하였다. 브라질 노동자당이 세계사회포럼에서 발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사회포럼은 브라질 대통령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소(Fernando Henrique Cardoso)와 브라질 사회민주당의 신자유주의적 정치에 대한 브라질 노동자당의 대안으로서 제시되었다. 다른 브라질 정당들은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노동자당의 독점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였고, 카르도소는 리오그란데 두 술 주정부가 포럼에 대해 공공자금을 지출한 것에 대해 비난하였다. 룰라의 연설회는 단순한 선거집회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과시의 불합리성은 전 멕시코 시장이자 멕시코 민주혁명당의 지도자인 카르데나스(Cardenas)의 참석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민주적 대안과 논쟁을 위한 재단’(Foundation for Democratic Alternative and Debate)의 의장으로서 소개되었다. 그 모임은 리오그란데 두 술 주지사인 올리비오 두트로(Olivio Dutro)가 주재하였다.

둘째, 보수적 요소들이 지배적인 브라질 조직위원회는 여러 연단에 불청객이었던 프랑스 사회당 및 녹색당의 정치인들과 친분을 맺고자 하였다. 까쌍 주재로 어떤 종류의 국제무역체제를 수립해야 하는가에 관한 토론에서 프랑스 통상장관을 등장시키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것은 제3세계에 대한 프랑스의 무역정책에 정통한 한 아르헨티나 투사의 격분을 불러일으켰다.

셋째, 워크샵에 대한 어떠한 통제도 없었기 때문에, 소규모 브라질 좌파그룹들이 그들 자신만의 워크샵을 개최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모든 점들은 첫 날, ‘생명을 위한 대행진’(March for Life)이 룰라, 두트로, 로세토, 타르소 장로(Tarso Genro), 포르토 알레그레 시장, 슈벤느망에 의해 주도되었을 때부터 명백해졌다.

4. 세계사회포럼의 소득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그 자신의 토론을 위한 포럼을 가지게 된 것과, 남반구에 위치한 반다보스 거점으로서의 이 포럼이 지닌 상징성은 이 운동의 중요한 소득이다. 또한 이 운동의 조직화에 라틴아메리카가 최초의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며, 리오그란데 두 술 주정부, 포르토 알레그레, 브라질 좌파 - 주로 브라질 노동자당이 이익을 얻었지만 유일한 것은 아니다 - 에게 커다란 이익이 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특히 세계사회포럼의 대중적 인기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역 사법부의 지속적인 사보타지 시도에 직면해 있고 주 의회에서도 소수인 리오그란데 두 술 주정부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심지어 적대적인 지역언론조차 포르토 알레그레를 유명하게 만든 대중적 행사 ( 및 수백만 달러의 관광수입 효과) 앞에서 논조를 변화시켜야만 했다.

나는 세계사회포럼이 단순히 세계화에 관한 모임을 하나 더한 것이 아니라, 투쟁을 세계화하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사회포럼의 첫 경험 이후, 그와 같은 투쟁은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스페인의 많은 조직들이 세계사회포럼의 첫 모임을 자신들이 열지 못한 것에 대해 지금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호주의 운동조직들이 내년에 전환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1) 참가인원

세계사회포럼의 성공은 모든 사람의 기대를 넘어섰다. 2,500-3,000명이 예상되던 대표단 등록 인원은 5,000명이었고, 기껏해야 10,000명을 넘지 못할 것이라던 기타 참가인원은 18,000-20,000명이었다. 아르헨티나로부터 700명, 프랑스로부터 200명, 라틴아메리카 각 국으로부터 수백 명의 대표단원이 왔다. 세계사회포럼은 거의 5천명에 달하는 인원을 위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영어, 프랑스어로의 동시번역, 매일 100대의 임시버스 운행, 리오그란데 두 술 관광당국의 전력을 다한 행사지원 등 엄청난 노력을 동반한 행사였다. 브라질 전역, 유럽 대부분, 라틴아메리카의 일부에서 1700명의 기자단이 몰려들었다.

2) 범위

세계사회포럼은 상당히 대표성을 지닌 모임이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대표되지 않은 경향, 운동, 위원회 또는 주제들은 거의 없었다. 놀라운 것은 농민조직의 대거참여였는데, 여기에는 브라질 토착단체, 라틴아메리카 좌파 ‘빛나는 길’, 멕시코 지식인 및 연구자들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주류 노동조직이 별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대표단원의 약 절반은 아르헨티나 노동총동맹(CGT)에 가까운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페론주의적인 노동총동맹도 포럼에 참여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200명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세계의원포럼에, 250명의 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역정부모임에 참여하였다. 의원들의 최종선언문(‘부록 2’ 참조)은 잠재적인 유용성을 지니고 있다.

모두가 같은 장소에 모였다는 사실은 거대한 정도의 네트워킹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공식적인 과정은 비공식적 네트워킹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3) 분위기

분위기는, 까쌍-슈벤느망-브라질노동자당 우파-NGO 우파축의 성향과는 구분되는, 현저히 반자본주의적인 것이었다. 이 점은 쿠바와 ‘콜롬비아혁명군’(FARC: 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의 지원을 요구한 강력한 표현들 속에서 나타났다(예를 들어, 크리바인은 유럽극좌파의 일반적 태도와는 달리 포럼의 친쿠바적 성향에 매우 놀랐다). 대다수의 참가자들에게는 세계화에 대항하는 투쟁이 반제국주의적 연대와 분리될 수 없음이 명백했는데, 언론이 좋은 반세계화론자와 구시대의 공산주의자를 분리하려고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이러한 급진적 반자본주의적 분위기는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원래의 지지자들이 의도한 것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부여하였다. 그들은 케인즈주의적 국제단체들에서 행해지고 있는 국제적 규모의 논쟁을 조직하면서 그 내용으로 토빈세 부과, 채무 삭감 등에 관한 토론을 생각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포럼의 중요한 목적은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태도를 변경하도록 압력을 가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반다보스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었다. 다보스의 목적과 포르토 알레그레의 목적이 양립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 프랑스 녹색당 출신 사회경제장관인 기이 하스코(Guy Hascoet)의 발언이 가장 우파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났다. 첫째, 4-5명의 발언자가 하나의 문제를 발표하는 본회의의 구조는 어떤 것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게 하였다. 둘째, 초대된 발언자는 종종 자신이 관심을 지닌 부분적 사안이나 전문적 분야만을 다룸으로써 제기된 문제에 관한 충분한 토론을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발언자들이 광범위한 맑스주의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이런 저런 측면들에 대항하는 조치들을 지지할 때 자본주의적 현 상태의 체계적 근원을 설명하는데 보다 더 관심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의 맑스주의 경제학자인 요르게 바인스타인(Jorge Beinstein)이 그 근원이 잠정적으로 우리가 통상 제국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의 발언은 놀랍게도 (구좌파 청중들을 제외한) 다수 청중들로부터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런데 16번의 본회의에서의 전반적인 결과는 어떤 긍정적 제안에 대한 합의의 창출보다는 세계체제에 대한 폭로와 비난이었다. 그 회의는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비전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덤핑반대와 같은 특정한 세계무역기구(WTO) 정책에 대항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농업 및 통상정책 연구소’ 소장, 마크 리치(Mark Litchie)의 입장보다는 다음 WTO라운드를 좌절시키기 위한 총력 캠페인을 요청한 월든 벨로의 주장이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가장 잘된 본회의는 아마도 에릭 투쌍(Eric Toussaint)이 채무탕감 이외의 어떤 것도 제3세계 경제를 세계이자율 흐름의 볼모로 만들며, IMF에 크게 빚을 지고 있는 나라의 고통을 경감시킬 수 없다는 점을 훌륭하게 제시한, 제3세계 채무에 관한 회의였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입장은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한 국제화폐제도의 보복이 협상을 통한 채무의 유예보다 발전가능성에 더 큰 손상을 입힌다고 주장한 루치아노 코티노(Luciano Coutinho) 브라질 경제학교수의 입장과는 대조적이었다.
국제시민사회에 대한 모드 발로우스(Maude Barlowes)의 입장은 갈채를 받았지만, ‘민중권력총회’(National Assembly of Peoples Power) 의장인 리카르도 알라콘(Ricardo Alarcon)의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비난이 받은 갈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나의 인상 깊은 지표는 세계경제포럼과 세계사회포럼 사이의 TV 논쟁이후 가장 침울했던 베르나르 까쌍의 심정이었다. 까쌍은 포르토 알레그레로부터의 기고문들이 대부분 격렬한 비난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놀라 세계사회포럼 팀이 3-4명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로서 그는 전문가들이 평정심을 잃은 12명의 분노한 활동가들보다 조지 소로스와 그 일당을 더욱 효과적으로 폭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세계사회포럼이 아무런 최종선언을 채택하지 않았던 것은 일정하게는 이러한 분위기의 균형의 결과에 기인한다. 어떠한 선언도 없어야 한다는 데에 일반적인 이해가 있었던 반면, 우파는 그들 견해대로 할 수만 있었다면 당연히 선언을 채택하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견해가 분명해지자 그들은 최종선언을 채택하는데 결사 반대하였다.

4) 행동

분위기는 세계사회포럼이 진행되는 동안에 일어난 일련의 항의 행동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행동들은 아르헨티나 정치범들에 관한 항의집회에서부터 브라질의 억압적 낙태금지법에 항의하는 시위행진과, 미국의 플랜 콜롬비아에 반대하여 성조기를 불태우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포르토 알레그레 근처의 몬산토(Montsanto) 실험농장에서 유전자조작 농산물에 대항하는 기습시위를 조직한 ‘땅 없는 자들의 행진’(MST)이 취한 행동이었다. 「주간녹색좌파(Green Left Weekly)」에 보도된 것처럼, 이 결과 프랑스 농민지도자 호세 보브(Josè Bové)가 브라질에서 추방되었다. 세계사회포럼 참석자들은 ‘우리 모두가 보브(Bové)다’라는 스티커를 부착하였다.
MST에 의해 조직된 리오그란데 두 술 주의 몇몇 주거지역 방문 또한 전투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5. 세계사회포럼의 약점

1차 세계사회포럼이 많은 문제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가피했지만, 문제들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포르토 알레그레-리오그란데 두 술 공동조직팀의 실로 엄청난 조직적 노력에 어느 정도 힘입은 것이었다. 내년 이후에 세계사회포럼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때 이 임무를 다른 센터가 어떻게 처리해 낼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주요한 약점은 다음과 같다.
참 석한 사람들의 불균등한 지리적 분포이다. 대부분의 대표단은 라틴아메리카로부터 왔으며, 특히 프랑스-브라질 축으로부터 왔다. 가장 과소대표된 지역은 아시아, 아랍, 미국이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공백은 사파티스타(Zapatistas)였다.
인 물소개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갈망하는 거물들에게 주어졌고, 의제에 관련하여서도 이들에게 너무 많은 시간이 할당되었다. 이것이 대개 세계사회포럼이 지역언론에 보도된 방식이다. 의제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어떠한 논쟁도 가능하지 않은 거물들의 발표와, 오전 회의와 거의 관련 없는 토론이 진행되는 워크샵. 그리고 난 후 저녁에는 때로는 마음을 사로잡은 강연이 있었지만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의 경우 -, 때로는 일반적인 반세계화의 수사만 반복한 일반적인 강연들이 있었다.

그런 결과로 세계사회포럼이 요청한 쟁점들에 관한 토론의 질은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문제가 된 것은 쟁점들이 제기되는 방식, 즉 구체적 정책의 관점에서 대답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문제는 오히려 플로어의 모든 다른 견해들을 취합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 무엇인가였다. 약간의 경우를 빼면, 오전 본모임은 토론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플로어로부터 질문만 받았다. 오후의 워크샵 일정이 참가조직들이 제시한 바에 따라 결정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즉, 워크샵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전 세션의 테마를 보다 심도 깊게 논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선의 워크샵 세션은 지구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에 관해 발표한 ‘지구의 벗’(Friends of Earth)처럼 여러 날 동안 특정한 주제를 다룬 세션들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동시통역이 모든 워크샵에서 제공될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본회의에서 정치인들에게 발표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결정은 수많은 핵심주제에 관하여 의미 있는 토론이 될 수 없게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콜롬비아혁명군’의 한 대표와 ‘민중권력총회’(National Assembly of Peoples Power) 의장 리카르도 알라콘의 참석 및 이들이 행한 역할은 일반적으로 정치가와 정치조직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본회의장에서 흑인, 지역토착운동, 청년뿐만 아니라 여성 발표자가 너무 적었다. 주회의장에서 먼 거리에 있는 청년 및 지역민을 위한 캠프의 위치는 아마 일정한 소외감을 주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노동조합이 과소대표되었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관료패들이 상대적으로 적게 참석한 것은 애석하게 여길 일이 못되며, ‘이탈리아 노동조합총연맹’(CGIL: Confederazione Generale Italiana del Lavoro)과 같은, 참석한 노조단체들의 대부분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확실히 국제적 마인드를 지닌 노동조합주의자들이 더 많이 참가했더라면 훨씬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분석에서 이러한 약점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위원회를 구성하는 두 개의 주요한 축 간의 정치적 긴장에 기인했다. 이런 긴장은 연사들의 쟁점에 관한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 「동원을 위한 요청」(Call for Mobilsation)을 기안한 7개 사회운동단체가 그것을 논의하기 위해 주요 홀 중의 하나에 대한 출입허가를 요청하였을 때, 조직위원회는 어떤 선언의 발표도 두려워 한 상파울로 그룹으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이를 거절하였다.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고함과 외침이 그 뒤를 뒤따랐다.

다른 갈등도 있었다. 포르토 알레그레-리오그란데 두 술 당국과 MST 간에 긴장관계가 있었다. 포르토 알레그레-리오그란데 두 술 당국은 세계사회포럼을 참여예산제를 위한 무대로 만들기를 원하였던 반면, MST는 브라질의 주요현안테마를 지방투쟁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포럼이 역할을 하기를 원하였다.

이러한 긴장은 다음에 세계사회포럼을 어디서 개최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할 때에 폭발하였다. MST는 세계사회포럼을 멕시코에서 열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렇게 주장 한 이유는 포럼이 멕시코에서 열리게 되면 MST가 더욱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 사파티스타와 MST의 핵심지도자인 호아 페드로 스테딜레(Joa Pedro Stédile) 간에 오랜 마오주의적 연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논쟁에서 MST는 온건주의자 일부와 견해를 같이 하였고, 까쌍은 포르토 알레그레를 지지하였다. 최종적으로 MST의 마음을 돌리게 한 것은 CUT의 압력이었다.

6. 동원을 위한 포르토 알레그레 요청에 관한 논쟁

「녹 색좌파」지의 사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떠한 공식적 선언도 없는 상태에서 제4 인터내셔널의 네트워크에 의해 조직된 7개 운동단체와 NGO들이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한 단체들이 채택해 주기를 바라며 동원호소문을 제출하였지만, 그 행사의 말미에 가서야 그 호소문을 다른 단체들이 인준할 수 있게 공개되었다. 이 요청의 승인을 둘러싼 과정은 세계사회포럼의 가장 정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호소문을 작성한 단체들은 MST, CUT, CGIL, ATTAC, ‘세계여성행진’(the World March of Women), ‘포커스 지구적 남반부’ 및 ‘쥬빌리 2000’(Jubilee 2000) 등이었다. 호소문에 대한 아이디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주요 쟁점들에 관한 매우 기본적인 입장을 도출하고, 동원이 필요한 앞으로의 사업목록들을 작성하자는 것이었다.

초안은 수정을 위해 네 개의 지역팀(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북아메리카)에게 배포되었는데, 수정과정에서 그 대부분이 초안에 포함되지 못했거나 짧게 언급된 특수한 지역적 관심들이 대거 표출되어 나왔다. 문서에 관한 최종토론에서 드러난 주요한 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국제적 행동을 조정할 필요성. 그 필요성은 특히 적(敵)이 카타르(Qatar)와 같은 장소에서 모임을 가질 때는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카타르가 제3세계의 채무 탕감을 요구하는 국제행동의 날을 위한 이상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이것은 홀에서는 상당한 지지를 받았지만, 크리스토프 아기통(Christophe Aguiton)은 G8에 반대하는 제네바 시위에 맞춰 7월 20일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제안이 텍스트의 마지막 부분이 되었다.

최초의 초안은 유엔의 쿠바 봉쇄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두 명의 쿠바 연사가 이에 항의하는 발언을 하였고, 모든 봉쇄에 대한 일반적인 비난과 그 영향에 대한 언급이 최종안에 포함되었다. 쿠바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을 포함하지 않은 (설득력이 약한) 이유는 쿠바에 대해 언급하면 리비아, 북한 및 미국의 봉쇄를 받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원칙은 그러나 제3세계 민중들에 대한 미국의 행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플랜 콜롬비아(Plan Colombia)를 비난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군사주의 반대에 관한 언급이 처음에는 약했지만, 나중에 강화되었다.
선언문의 최종안은 ‘부록1’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살펴보면 제1세계 농업생산자를 위한 농업보조금 같은 수많은 어려운 쟁점들이 다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7. 정치적 조직의 입장들

그러한 모든 것들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브라질 ‘통합사회주의노동당’(Partido Socialista dos Trabalhadores Unificado: PSTU)은 신자유주의적 계획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광범위한 기초 위에서 연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세계무역기구(WTO)의 회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유예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러한 투쟁의 조직화를 제안하지 않았다. 다른 트로츠키주의자 조직들은 세계사회포럼을 제국주의자들의 회유책 내지 견인책이라고 비난하는 기괴한 모습도 연출하였다. PSTU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는 데에 당황해 폐막식 때 조직적으로 자신들의 슬로건을 외치도록 하였다가 야유를 받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하나의 부분적 예외는 PSTU로부터 분리되어 나와 브라질 노동자당 내부의 새로운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주의좌파운동’(MES)이었는데, 이들은 새로운 노동자당 내부 회보를 공개적으로 판매하였다. 회보의 주요한 주장은 세계사회포럼이 세 명의 프랑스 장관의 참여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4인터내셔널의 참여는 3개 언어로 된 저항에 관한 하나의 선언문과, 다니엘 벤 사이드(Daniel Ben Said)와 미셸 뢰비(Michael Löwy)의 에세이 모음집의 포르투칼어 번역본 및 라울 퐁(Raul Pont)의 신간서적을 포르토 알레그레 노동자당의 진열대에서 판매하는 것에 제한되었다. PSTU는 공식적인 서적 진열대를 가지고 유인물을 판매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세력으로서 보다 큰 규모로 참여하였다.

제4인터내셔널은 세계사회포럼 이후 공식회합을 열었다. 이 회합은 거의 선전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약 200명 정도를 끌어 모았다. 거기서 크리스토프 아기통, 크리바인, 로세토 및 필리핀 혁명노동자당의 동지가 연설하였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세계사회포럼의 주요한 정치적 수혜자는 브라질 노동자당, 특히 리오그란데 두 술의 노동자당 정부였다. 세계사회포럼의 성공은 지역의 모든 비난여론을 잠재웠다.

대답되지 않은 주요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누가 이 모든 청년대중들을 모집하는 최고의 직무를 수행해 냈는가? 노동자당의 청년사무소는 보수를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된다. 사회민주당은 유능한 청년 평당원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조직이 없다. 때문에 일관성 있게 새로운 세대들을 동원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저런 분파 내지 준분파조직들이 청년캠프에서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으면서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8. 제4 인터내셔널 국제집행위원회 토론

피에르 로세는 2월 제4 인터내셔널 국제집행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세계사회포럼 내에서 앞으로 헤게모니를 둘러싼 격렬한 투쟁이 일어날 것이고 지적했다. 이러한 투쟁의 내용은 개량인가 혁명인가라는 낡은 테마가 될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련된 새로운 논쟁의 형태를 띨 것이다.


우리는 개량주의자들이 혁명의 필연적인 퇴조를 주장하고 있고, 국가권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닌 사파티스타와 동맹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포르토 알레그레의 모든 우파세력들은 사파티스타 대표단이 초코로에 도착했을 때 마르코스를 만나기 위해 멕시코 시티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지만, 반자본주의 진영은 자신들의 지위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이유는 그들이 다양한 제4 인터내셔널 네트워크 같은, 대항동원 작업을 지속시킬 보다 강력한 네트워크 체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노동조합 네트워크를 창출하자는 아기통의 제안은 그러한 움직임 중의 하나이다.


그러한 네트워크 조직은 내년에 세계사회포럼에 더 많은 급진적 노동조합활동가들을 참석시키고, 여러 영역에서 대거 출현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행위자들의 물신화를 상쇄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또 다른 제안은 NGO의 주요 특정흐름을 각광을 받게 할 것이 틀림없는 다보스를 보이코트하자는 캠페인에 착수하자는 것이다.

제4 인터내셔널 국제집행위원회의 토론에서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하지 않았던 페니 듀간(Penny Duggan)은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청년, 여성, 흑인들이 주변화되고, 세계사회포럼의 준비과정에 제4 인터내셔널의 여성의 참여가 전무하였던 것에 대해 크게 비난했다.

미셸 뢰비는 ‘세계여성행진’으로부터 온 동지들이 동원을 위한 이니시어티브를 기초하는 데에 관여하였고, MST의 여성들이 그러한 조직적 개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사회민주당 경향의 여성동지들이 세계사회포럼을 성공시키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실제로 사회민주당 여성동지들은 인상적이었다)고 지적하였다.


뢰비는 세계사회포럼에서 제4 인터내셔널이 행한 역할이 전례 없는 것이었지만, 그 전체적인 활동내용은 약간 불가사의한 것이었다고 말했다(어느 누구도 제4인터내셔널과 실제로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뢰비는 일반적인 급진적 분위기와, MST가 주도하여 몬산토(Monsanto) 실험농장에 대해 가한 공격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농민운동의 급진주의에 대해 올바로 지적하였다.


제4 인터내셔널의 주요한 임무는 이러한 세력들과 전략적 동맹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는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이들 세력들은 급진적 기독교, 마오주의, 무정부주의적 사상 등에 근거해 있기 때문이다. 세계사회포럼의 다음 개최지 문제를 둘러싸고 MST와 벌였던 충돌과 같은 것을 피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에릭 투쌍(Eric Toussaint)은 제4 인터내셔널 여성동지들에 의해 수행된 실제적 역할과 동원요청안에 페미니즘의 쟁점들을 삽입시킨 그들의 역할을 간과한 것을 예로 들며 듀간의 개입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투쌍은 상파울로 포럼과 비교하여 세계사회포럼이 급진적이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쥬빌리 2000’이 위기에 처해 있으며, ‘쥬빌리 남반부’(Jubilee South)는 제4 인터내셔널 주도하에서 제3세계에서 ‘쥬빌리 2000’ 집단의 좌파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바인은 포르토 알레그레가 반세계화 운동의 현 상태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의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가장 분명한 지표는 까쌍과 프랑스 녹색당이 행한 토빈세 부과라는 최소주의적 제안에 관한 두 가지 해석이었다. 동원호소문과 의원들의 최종선언문의 가치는 실질적 논쟁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의 약점은 활동가와 이런 저런 반세계화 집회에 몰려다니는 유명인사들 사이의 커다란 괴리, (인도네시아 노동자를 대표해 목타르 팍파한(Moktar Pakpahan)을 선출한) 대표단의 비대표성, 제4 인터내셔널 자체의 개입과 관련한 쟁점들이었다. 사회민주당의 실제 역할과 그 가시성 사이에 차이가 있었고, 반세계화 운동에서 제4 인터내셔널의 전문가들에 대한 정치적 통제의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크리바인이 지적한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운동의 실천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 다음의 세계사회포럼은 본회의에서 제기된 주요 문제들에 관한 토론을 실제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관한 논점을 제시해야 한다.
● 세계화에 반대하는 어떠한 국제적 노동조합 네트워크도 분명한 반제국주의적 노선을 가져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카타르에서의 WTO 회의에 반대하는 국제적 발의를 할 필요가 있다.
● 좌파정당들에게 포럼에서의 동동한 권리와 참석권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 사소한 이유로 반대 입장에 빠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상파울로 포럼에 대한 반대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이나,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노선에 대한 반대로서의 반다보스 시위처럼).

융 올리비에(Young Ollivier)는 세계사회포럼을 제4 인터내셔널이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 어떠한 종류의 인터내셔널인가에 관한 논쟁과 관련시켰다(세계사회포럼에서는, 제1차 인터내셔널의 재판(再版)에서부터 제4 인터내셔널의 세계사회포럼 이후 회의에서 크리바인이 제안한 추상적 프로젝트인 제5차 인터내셔널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인터내셔널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올리비에는 세계사회포럼이 정당의 정치적 참여와 논쟁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데에 동의하였다.

로랑(Laurent)은 세계사회포럼이 반제국주의적 급진주의 세력의 관점에서 볼 때 NGO의 지배와 로비논리로 말미암아 세계금융 및 통상조직들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제4 인터내셔널은 실업반대 유럽인행진을 조직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유익한가, 아니면 세계사회포럼을 조직할 것인가와 같은 실천적 문제에도 과감히 맞서야만 하였다. 프랑스 ‘혁명공산주의동맹당'(LCR)은 니스에서의 시위에 개입했었지만, 제4 인터내셔널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멕시코 동지 두 명간에 사파티스타의 포럼 불참석의 의미와 퀘백 주의 반대시위 조직 세력들의 과소대표성을 둘러싼 하위 논쟁이 있었다. 산체스(Sanchez)는 많은 멕시코 활동가들이 포르토 알레그레로 왔다는 사실과 쿠바와 콜롬비아혁명군 참석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브롤리오(Braulio)는 포르토 알레그레가 회의만 거듭하는 반세계화 과두조직들의 참석으로 특징지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사파티스타의 불참은 이러한 대표성의 결여라는 문제의 상징이었다. 산체스는 멕시코 출신의 원주민 여성들이 참석하였고,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 Zapatista National Liberation Army)에 멕시코 토착민을 대표하는 독점권을 자동적으로 부여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하였다.

세계정치적 상황에 관한 제4 인터내셔널의 논쟁에 있어서 세계사회포럼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반세계화 운동이 모든 운동들에 대해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준다는 우리의 입장에 가까운 것에서부터 노동자계급이 청년-학생이 압도적인 중요성을 차지하는 운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이르기까지 그 구성에 있어서 폭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다른 쟁점들은 LCR의 여성단과 같은, 제4 인터내셔널 여성그룹의 참여 부족과 ATTAC의 개입수준과 같은 문제들을 포함했다.



종합해서 로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운동에서 NGO적 요소들이 강했지만, 이 요소들은 좌파를 발전시키고 급진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 NGO의 지속적 참여에도 불구하고, 시애틀에서 유래하는, 좌파로의 분명한 운동상의 이동이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반세계화 회의 스타일과 여러 NGO들 자체의 관점상의 변화에 반영되었다. 쟁점은 NGO 그 자체가 아니라, NGO의 정치와 실천이다.
● 농민운동의 성장은 중요한데, 특히 남-북 간의 연대를 지속적으로 공고히 하는데 있어서 그러하다.
● 노조활동가들의 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들이 선봉에 서는 것이 긴급한 문제이다.
● 당장의 전망은 이데올로기적 전투를 확장시키는 것이고, 이를 위해 즉각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제4 인터내셔널 국제집행위원회에 관한 보고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논쟁은 단지 토론의 시작에 불과했다. 적어도 반세계화 운동에 대한 제4 인터내셔널의 포괄적 노선에 관해서는 어떠한 것도 표결되지 않았다.

9.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우리(호주민주사회당)의 개입

세계사회포럼은 규모가 커서 단 두 명의 동지만으로 효과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리의 거의 모든 인쇄물을 판매하려고 하였으며, 「녹색좌파」의 행사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미래의 동원을 위한 제안을 둘러싼 논쟁에 개입하였으며, 광범위한 유익한 접촉들을 하였다.


우루과이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것이 세계사회포럼에서 유일한 비브라질 정당의 인쇄물 테이블이었음은 주목할만하였다. 우리는 이미 공식적 칸막이 방을 사용하는 데에 드는 700달러를 지불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쓰레기더미가 쌓인 공원에 테이블을 차렸다.


내년에는 적절한 방을 얻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인쇄물 판매는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기에 유리한 기회가 제공될 것이다.

우리가 주장한 주요한 쟁점은 국제적 행동 제안을 하기 위해 포르토 알레그레를 이용할 필요성과, 정당들에 대한 차별을 중단할 필요성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반정당주의자들의 단호한 태도로 말미암아 상반된 반응을 받았다. 대다수의 분위기는 세계금융제도의 수정이 아니라 폐지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반자본주의적이고 급진적이었던 반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그 제도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전혀 일치를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대다수의 절반정도가 아마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우리는 메이데이 행동안을 다가올 안건 중에 포함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 안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그 행동이 지역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리플렛을 광범위하게 배포해, 주요 쟁점에 관한 우리의 기본적 입장을 밝히고 2002년 회의를 선전했다.
이를 위해 지불된 대가는 우리가 가야할 회의가 매우 많아 다 참석하지 못한 점, 토론, 특히 많은 워크샵에서의 토론에 관해 불충분한 설명만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점 등이다.

10. 몇몇 중요한 쟁점들

세계사회포럼의 경험은, 전체 반세계화 운동의 주요한 쟁점이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유일한 대답이 사회주의’라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에 있다는 나의 생각을 강화시켰다. 여기서 우리는 환경 및 여성운동의 많은 부분이 사회주의 앞에서 반복해서 주저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좋은 선전을 대량생산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실현을 가장 잘 촉발시킬 발의와 투쟁 및 논쟁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

내가 보기에,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적 비난을 지역과 공동체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기초로 유지하고 회복해야 한다는 수사와 연결시키는 사람들이 운동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 상태를 전투적으로 비난하면서도 별다른 탈세계화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월든 벨로(Walden Bello: 방콕에 있는 ‘포커스 지구남반부’의 실무책임자이며, 필리핀 대학의 사회학 및 공공행정학 교수임)는, 낡은 패러다임과 낡은 사회적 행위자들을 넘어서야 한다는 마르코스 부사령관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규모 저항이 고조되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주의와 스탈린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인간적 재앙의 경험이 여전히 우리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평가가 정확하다면, 이로부터 많은 전술적 함의를 끄집어 낼 수 있다.

첫째, 모든 사람이 관여할 수 있는 대중행동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둘 째, 허위 재화의 경직된 전달자들과, 처음으로 그들을 위해 임시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자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후자에 대해서는 끈질긴 설득이 필요하다. 이것은 전술 및 요구 면에서 급진적인 사람들과


- 설령 이들과 운동의 발의 등을 위해 협력해야 하지만

- 논쟁을 해야할 필요성이 있음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탈세계화의 대안으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모호한 전망을 내놓는 벨로를 적시에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운동의 핵심적인 원칙들이 실제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으며, 이것이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가를 질문하는 것이,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형태의 투쟁이 혁명적 조직의 필요성을 결코 대체하지는 않는다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새로운 헌장에 관하여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과도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은 많을 것이다.


셋째, 운동의 수정주의적 분파와 화해하려는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조합의 관료제적 성격이 점점 영향력을 발휘하고 지배적이 될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의 한 가지 단점은 광범위한 반세계화 운동 내에 존재하는 노선상의 쟁점들이 명확하게 제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수적-반동적 대응에 대해 모르는 체 하자는 암묵적 합의가 있는 것 같았다. 제4 인터내셔널 국제집행위원회에 관한 보고서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나는 세계사회포럼 이후에 사회민주당 간부학교에서 크리스토프 아기통과 함께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는 선진자본주의국가의 노조들을 무작정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에 적극 찬성하였으며, 프랑스 ‘노동총동맹’(Confederation Generale du Travail: CGT)의 우유부단성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제4 인터내셔널 내에서는 운동을 건설한다는 이유로 노선상의 차이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주의: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본적 경계선을 견지해야 하지만 더 많은 노조지도자들이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에 참여하면 할수록 그들 입장의 모순이 더 많이 드러날 것이고, 적어도 그들이 노동계급의 국제연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입장에 서도록 강제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화의 움직임과 그 요구 및 행동이 국내정치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분명히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각국 정부들이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및 세계은행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제자본주의 제도들에 대한 국내자본주의 정책과 같은 지구적 쟁점들이 다양한 형태의 자본주의적 주류정치에 대항하는 강력한 지렛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포르토 알레그레에서의 세계의원포럼은 하나의 입장선언을 낳았고, 이는 그 제안을 위해 실제로 투쟁할 의사가 없는 의원들에 의해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위선행위가 알려지면 질수록 반자본주의적 좌파에게는 더욱 이익이 된다.

11. 결론

첫 세계사회포럼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현재의 형태를 반복해서는 더 나아갈 수 없다. 토론은 더욱 현실적이고 집중적으로 되어야 하고, 노선의 차이는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구체적인 행동들이 계획되고 토론되어야 하며, 정당에게도 동등한 지위가 주어져야 한다. 이상의 것들이 가능한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투쟁에 의해서만 결정될 것이다.


우리 민주사회당(DSP)은 조직위원회에 분석 및 제안에 관한 공식서한을 보내야 하며, 또한 가능한 한 첫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했던 사람들 전체에게 그것을 배포해야 한다.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 지라도,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친구가 누구인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좌파정당의 참여를 보장하자는 쟁점에 관하여 우리는 동원호소문을 인준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연대회의에서 이와 유사한 선언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유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제안된 국제노동조합활동가 네트워크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 알아야 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

덧붙여 내년에는 우리 지역의 대표성이 보다 높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디타 사리(Dita Sari)가 저녁 행사에서 연설할 수 없었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그녀에게 하나의 세션 전체가 주어졌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다음 세계사회포럼에 적어도 세 명을 파견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브라질은 매력적인 장소이고, 사회민주당 동지들은 환영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제 브라질의 정치와 행위자들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휴가에 외국을 고려하고 있는 동지들 중에서 다음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나오도록 고무해야 한다.

부록 1: 포르토 알레그레 동원호소문

세계의 사회세력들은 여기 포르토 알레그레의 세계사회포럼에 모였다. 노동조합, 비정부기구(NGO), 운동단체와 조직, 지식인, 예술가들과 함께 우리는 자유시장과 돈이 유일한 가치척도로서 간주되는 지배적 논리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를 창출하기 위한 위대한 동맹을 건설하고 있다. 다보스는 부의 집중, 빈곤의 세계화, 지구의 파괴를 대표하고 있다. 포르토 알레그레는 인간과 자연이 관심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세계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대표하고 있다.

우리는 시애틀 이후 성장한 운동의 부분이다. 우리는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으로 상징되는 엘리트와 그들의 비민주적 과정에 도전한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를 형성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정책에 대한 완전한 반대를 보여주기 위해 여기에 모였다.

우리는 민중의 권리, 자유, 안전, 고용, 교육을 위한 투쟁에 헌신하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여성, 남성, 농민, 노동자, 실업자, 전문가, 학생, 흑인, 그리고 원주민이다. 우리는 다국적 기업과 반민주적 정책에 의한 금융세계화, 문화의 파괴, 지식․대중매체․통신의 독점, 자연파괴, 삶의 질 파괴 등에 반대하여 투쟁하고 있다. 포르토 알레그레와 같은 참여민주주의적 경험은 우리에게 구체적인 대안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금융가와 투자자의 요구보다 인간적, 생태적, 사회적 권리가 우월하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우리는 우리의 운동을 강화함과 동시에 전세계 엘리트에 저항하고, 모두를 위한 차별 없는 평등, 사회정의, 민주주의, 안전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의 방법론과 대안은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정책과 완전한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세계화는 성차별적, 가부장적 체제를 강화한다. 그것은 빈자의 궁핍화와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강화한다. 남녀평등은 우리 투쟁의 핵심이다. 이것이 없이는 또 다른 세계가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아프리카 흑인문명의 기초를 파괴한 수세기 동안의 노예제도와 식민주의의 인종학살을 지속시킨 인종주의를 강화한다. 우리는 모든 운동들이 전세계의 아프리카 민중들과 연대하여, 역사적 사회적 채무의 보상을 통한 토지, 시민권, 자유, 평화, 평등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방어할 것을 요청한다.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는 인간에 대한 범죄이다.

우리는 인종학살에 반대하고 그들의 권리, 자연자원, 문화, 자율권, 토지, 영토 등을 방어하기 위해 역사적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원주민들에 대한 우리의 특별한 관심과 더불어 연대의 뜻을 표명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환경, 건강, 민중의 삶의 환경을 파괴한다. 공기, 물, 토지, 그리고 민중들은 상품이 되었다. 삶과 건강은 경제정책에 종속되어서는 안 되는 근본적 권리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남반구 국가들의 대외채무는 수 차례에 걸쳐 지불되었다. 대외채무는 지배의 도구로서 기능하면서 증대되는 국제고리대금 자체의 목적에 따라 부정당하고 부정의하게, 그리고 기만적으로 민중들의 근본적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우리는 이 대외채무가 낳는 위기의 분명한 해결을 위한 즉각적 조치로서 채무의 무조건적인 탕감과 역사적, 사회적, 생태적 채무의 보상을 요구한다.

금융시장은 공동체와 민족들 및 종속국으로부터 자원과 부를 착취하고 있다. 우리는 조세도피처의 철폐와 금융거래에 대한 관세의 도입을 요구한다. 민영화는 공공복지와 자연자원을 사적 부문으로 이전시키는 메커니즘이다. 우리는 자연자원과 공공서비스에 대한 모든 형태의 민영화에 반대한다. 우리는 양질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과 공공재에 대한 접근의 보장을 요구한다.

다국적기업은 대규모 실업,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을 통해, 그리고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해 규정된 노동자의 기본권리를 부정함으로써 전세계적 생산을 조직한다. 우리는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협상할 권리, 세계화 전략에 대항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새로운 권리에 대한 진정한 인정을 요구한다. 재화와 화폐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하면서, 민중운동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것은 착취와 억압을 강화한다. 우리는 그러한 제한의 중단을 요구한다.

우리는 완전고용, 식량안보, 공정한 거래, 지역발전을 보장할 무역체제를 요구한다. 자유무역은 결코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지구적 무역의 규칙들은 다국적기업에 의한 부와 권력의 축적을 가속화하고 소농, 노동자, 지역기업의 주변화와 빈곤화를 촉진한다. 우리는 정부가 국제인권조약과 다자적 환경협정에 대한 의무를 존중하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전세계의 민중들이 라틴아메리카의 재식민화와 근본적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 인권의 파괴를 의미하는 아메리카의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반대하는 투쟁을 지지할 것을 요청한다.

IMF, 세계은행, 지역은행, WTO, NATO, 그리고 기타의 군사동맹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진행하는 행위자이다. 우리는 국가정책에 대한 그들의 개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제도들은 민중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떠한 정당성도 없으며, 우리는 그들의 조치에 반대하는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토지소유의 집중과 환경 및 사회적으로 파괴적인 기업적 농업시스템을 가져온다. 그것은 민중을 그들의 땅으로부터 몰아내고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댐과 같은 대규모 기간시설의 발전을 기반으로 한 수출주도형 성장에 근거하고 있다. 민중들이 빼앗긴 것들은 다시 원상복구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적 농업개혁을 요구한다. 토지, 물, 종자 등은 농민의 수중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농업과정을 추구한다. 종자와 유전학적인 것들은 인류의 유산이다. 유전자 변형과 생명체에 대한 특허권은 폐지되어야 한다.

군사주의와 기업의 세계화 양자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침식시킨다.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전쟁을 전적으로 반대하며, 무기경쟁과 무기거래를 반대한다. 우리는 사회적 항의시위에 대한 억압과 불법화의 중단을 요구한다. 우리는 국내문제에 대한 외국의 군사적 개입을 비난한다. 우리는 공격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무역금지와 제재의 철폐를 요구하며, 제재의 결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플랜 콜롬비아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러한 원칙들에 근거하여 동맹을 강화하고, 공동의 행동을 수행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다음 포럼까지 이것들에 근거한 결집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빈곤, 차별, 폭력이 없는 세계, 생명, 평등, 존중, 평화가 있는 세계를 위한 투쟁을 수행할 수 있는 더 나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결집하기 위한 모든 공동의 투쟁의제를 지지한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우리는 다음에 반대하여 힘을 결집시킬 것이다.

● 세계경제포럼(멕시코, 캔컨, 2월 26-27일)
● 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4월 6-7일, 캐나다, 퀘백, 4월 17-22일)
● 아시아개발은행(호놀룰루, 5월)
● G8 정상회담(제네바, 7월 15-22일)
● IMF와 세계은행 연례총회(미국, 워싱턴시티, 9월 28일-10월 4일)
● 세계무역기구(카타르, 11월 5-9일)

4월 17일에 우리는 경제적, 사회적 덤핑을 만들어 내는 값싼 농산물의 수입 반대를 위한 국제투쟁의 날과 제노바에서의 신자유주의 반대를 위한 여성운동단체의 결집을 지지할 것이다. 우리는 대외채무에 반대하는 세계행동의 날을 올해 7월 20일로 하자는 것을 지지하며, 인종주의, 인종차별, 외국인 차별 등에 반대하는 세계회의(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Durban), 20001년 8월 31일-9월 7일)를 위한 결집을 지지한다.


정식화된 제안들은 세계의 사회운동에 의해 마련되어야 할 대안들의 일부이다. 그것들은 인간과 생명체가 상품이 아니라는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세 계사회포럼에 대한 우리의 참여는 우리의 투쟁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이해를 풍부하게 하였다. 우리는 세계의 모든 민중들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포르토 알레그레의 세계사회포럼은 인민주권과 정의로운 세계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정이다.

부록 2: 세계의원포럼 선언문

세계의원포럼이 처음으로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2001년 1월 28-29일 수백 개의 노동조합 및 사회단체가 참여한 세계사회포럼 진행과정 중에 열렸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수천 명의 대표단이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 의해 대표되는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대한 대안적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모였다. 의원으로서 우리는 많은 진보적 투쟁의 상징인 브라질 리오그란데 두 술 주의 수도에 모인 사회적 민주적 운동단체와의 연대를 확인한다.

시애틀 시위가 있은 지 1년이 지난 현재,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시민들의 대중적 저항의 역동성을 측정하고 새로운 시각의 공동행동과 연대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였다. 동시에 우리는 국제금융제도들, 세계무역기구, 또는 G7 등이 취하는 정책들이 지구의 남반부와 동반부뿐만 아니라 북반부에서도 민주주의와 민중의 삶의 질을 파괴하고 있는 그 결과에 주목한다.

현재 우리들은 1992년 리오데자네이로에서의 국제회의 이후 우리 시대의 주요한 쟁점이 되었고, 전세계적 규모로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는 사회적, 환경적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국제협력을 강화함이 없이는 한편으로는 모든 나라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수행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인권, 성평등, 운동의 자유와 같은 주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은 금융자본에 의해 부과된 제한 아래서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보호 아래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경제적 재식민화의 시대에서,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우리의 지지는 계속되어야 한다. 국제협약의 협상 및 비준과 관련된 공적 논쟁의 투명성 제고와 시민사회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의원으로서의 우리의 역할이다.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대한 대안적 사회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노동조합, 사회단체, 민주단체, 환경단체의 행동을 지지하는 것이 의원으로서의 우리의 역할이다. 지속적으로 이러한 조직들과 연대하여 그들의 투쟁의 내용을 입법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특히 우리는 대외채무의 비도덕적인 구조에 반대하고 빈국의 채무탕감, 투기적 자본의 이동에 대한 과세, 조세도피처의 철폐, 세계무역기구와 국제금융제도의 근본적 개혁, 의제 21의 이행, 생명체와 관련한 특허권 반대,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면서 세계여성행진(World Womens March)이 추구하는 목적을 쟁취하기 위한 캠페인들과 연대하고자 한다.

우리는 사회적 권리와 생태적 선차성에 해로운 자유무역과 자본유통의 자유확대에 반대하며, 인간의 발전에 우선성을 부여하는, 인민적․민주적 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행동을 지지한다. 우리는 민중의 기본적 필요를 만족시키는데 필수적인 공적 자산과 공공서비스의 상업화 및 사유화에 반대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우리는 한편으로 사회적, 시민적 운동에 대한 효과적 지지를 보내면서 대안적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속한 각각의 의회에서 이미 언급된 쟁점들에 관한 우리의 발의를 조정할 지구적 의원네트워크를 건설할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2001년 1월 28일, 포르토 알레그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