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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자본주의, 진화와 변화의 변곡점에 서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선택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1991년 소련에서는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했고 중국에선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자본주의적 요소를 이미 상당히 도입됐다. 자본주의에 강·약점이 있지만 가장 뛰어난 강점은 바로 적응력에 있다. 20세기 냉전을 거치면서 결국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이 강한 것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사람에 따라 견해가 갈리지만 자본주의는 서구에서 1760년대에 시작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탈리아는 15세기 지중해를 중심으로,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는 16~17세기에 대서양과 인도양을 중심으로 무역 기반의 상업자본주의를 발달시켰다.

영국은 면직과 기계 중심의 공장을 가동하면서 제조 기반의 산업자본주의를 이끌었다. 새로운 에너지원인 석탄과 새로운 교통수단인 철도를 이용해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선두에 우뚝 섰다. 특히 워털루 전쟁에서 프랑스에 이기면서 영국의 세기가 시작된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불씨는 1830년대에 유럽 대륙과 미국으로 전파된다. 그러나 1870년대와 1880년대에 대불황 시기를 맞았다. 산업혁명에 의해 생산은 급증했지만 극심한 소득 불평등으로 수요가 이에 미치지 못해 전반적인 공급과잉과 과소소비로 경기가 침체에 빠졌던 것이다.



진화하는 자본주의의 역사

경기 침체가 심화되자 서구는 방향을 틀어 제국주의 마인드로 무장해 해외시장 개척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식민지로부터 원료와 인력을 확보하고 상품 판매 시장도 얻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서구 국가 내부적으로는 기업들이 제살을 깎아 먹는 경쟁을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기업 결합을 전개했다. 카르텔·신디케이트·트러스트·콘체른·합병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물론 각국 정부는 독과점을 막기 위해 여러 법적 조치를 취했지만 기업들은 이런 법망을 재빠르게 빠져 나가기 일쑤였다. 독일은 자국 기업들의 뒤처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기업 결합을 오히려 조장했다. 1873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1914년까지는 독점자본주의 시대로 서구 자본주의가 최전성기를 맞았다.

제국주의적 확장은 결국 두 번의 참혹한 세계대전과 1930년대의 대불황으로 이어졌고 서구는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봐야만 했다. 1914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은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 이 시기에 서구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자본주의에서 약간 후퇴해 정부가 정부 지출을 늘려 경제활동에 크게 개입하는 사회주의 요소를 많이 도입하는 수정자본주의 시대에 돌입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과 냉전을 치르면서도 혁혁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1980년대에 일본으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았지만 1990년대 디지털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면서 다시 선두에 섰다. 이 와중에 유럽은 복지를 크게 강화해 복지자본주의 시대에 진입했고 미국도 부족하나마 이를 일부 도입한다. 1990년대 초반을 정점으로 일본이 약해지자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서면서 이제 미국을 압박해 나가고 있다. 이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과연 언제 추월하느냐가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됐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수 세기에 걸쳐 상업자본주의·산업자본주의·독점자본주의·수정자본주의·복지자본주의 형태로 진화, 발전해 왔다. 상황에 맞게끔 자본주의는 자신의 틀을 탄력적으로 바꾸면서 성공적으로 적응해 온 것이다.

원래 19세기는 1800년에 시작되고 20세기는 1900년에, 21세기는 2000년에 시작된다. 하지만 어떤 역사가는 19세기는 워털루 전쟁에서 승리해 영국의 세기를 열었던 1815년에 비로소 시작됐고 20세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미국의 세기를 활짝 열었던 1914년에 개시됐다고 평가한다. 그러면 21세기는 정말 언제 본격적으로 전개될까. 혹시 중국의 세기가 시작되는 2015년이 아닐까.

그러면 현재 지구상에는 어떤 자본주의가 존재할까. 미국처럼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서구 자본주의를 ‘파란 자본주의(blue capitalism)’라고 부른다. 덩샤오핑의 집권 이후 1980년대부터의 공산주의 중국은 자본주의 요소를 상당히 도입해 대성공을 거뒀는데, 이러한 중국 체제는 ‘회색 자본주의(grey capitalism)’라고 부른다. 회색 자본주의는 정부 통제력이 강한 기존 중국식 정치체제 하에서 통제를 느슨하게 풀고 시장을 확대하는 자본주의를 뜻한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다양한 자본주의

그러면 최선의 정치체제는 어떤 것일까. 국민으로선 정책을 펴는 ‘선의의 독재자’가 지배하는 사회가 최선의 체제다. 하지만 선의의 독재자는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차선책으로 민주주의를 채택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민주주의는 잘못하면 민중의 인기에 영합해 중우정치로 변질되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중우정치는 최악인 악의적 독재자가 지배하는 사회보다 낫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이러한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소득수준이 급격히 상승하고 대중의 의식 수준도 개방화·다양화되는 추세에서 회색 자본주의가 과연 오랫동안 지속되겠느냐는 의구심도 있다. 하지만 공산당의 파워가 워낙 강하고 경탄할 만한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기 때문에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중국의 현 체제가 선의의 독재자가 지배하는 최선의 체제라고 치켜세우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개발독재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앞으로 20년 정도 지난 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3억 인구에 달하는 중국의 경제성장 못지않게 12억 인구를 가진 인도의 경제성장 역시 대단하다. 현대 자본주의 철학에 인도의 전통 철학을 접목한 새로운 기업 운영 방법론을 ‘카르마 자본주의(Karma Capitalism)’라고 부른다. 카르마는 업이나 인연을 말한다. 인도의 경영 철학은 힌두교 지도자인 스와미의 가르침에 따라 최고경영자들이 돈 이외에 더 큰 뭔가를 목표로 하라고 강조한다. 회사는 단지 주주 가치만이 아니라 종업원·소비자·사회·환경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인도 출신 C. K. 프라할라드 교수는 이를 ‘포용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미국의 파란 자본주의, 중국의 회색 자본주의, 인도의 카르마 자본주의도 좋지만 지구 전체적으로는 경제성장이 과도하게 이뤄져 환경 파괴, 기후변화라는 큰 도전을 받게 됐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자연자본주의’다. 자연자본주의는 미국 로키마운틴연구소(Rocky Mountain Lab)의 에이머리 로빈스와 폴 호켄, 헌터 로빈스가 새롭게 제창한 이상적 자본주의다. 지구상에 폐기물이 아예 생기지 않도록 하고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지구의 순환 생산 시스템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자연자본주의는 녹색 자본주의(green capitalism)라고도 부른다.

물론 파란 자본주의, 회색 자본주의, 카르마 자본주의, 자연자본주의 외에도 현대 자본주의를 표현하는 말은 많다. 러시아처럼 일부 권력층이 정치·경제 전반을 장악하는 패거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과도한 금융자본주의를 비꼰 카지노 자본주의,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즉 ‘탐욕이 선(greed is virtue)’을 모토로 삼아 사회의 품격이 떨어졌다는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도 있다. 또 2008년 금융 위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잘나가던 미국 호황을 일컫는 슈퍼 자본주의도 있다. 물론 슈퍼 자본주의는 더 이상 없다.

앞서 말한 대로 그동안 자본주의는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생존해 왔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요인들도 호사탐탐 그 자리를 노리고 있다. 우선 예상외로 길어지는 대불황을 들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첫째 불황은 1873년부터 1896년까지다. 둘째 불황은 1929년부터 1945년까지였다. 셋째 불황은 1973년 오일쇼크 이후 1982년까지였다. 넷째 불황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다. 물론 지금은 현재 진행형이다.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들

대불황이 지속되면 실업자 증가로 소득이 줄어들고 가계 부채가 늘어난다. 정부의 연금 지급도 늘어나 재정이 악화된다. 기업 역시 매출이 줄어들고 수익은 마이너스가 된다. 이처럼 경제 주체 모두 상황이 악화돼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커져 사회불안으로 나타나고 때로 폭동으로 번지기도 한다.

둘째, 대불황이 지속되면 각국 정부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쟁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1870년대 대불황 이후 고삐 풀린 제국주의 침략이 일어났고 1930년대 대불황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2010년대에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자국에서 발생하는 않는 전쟁일수록 좋다. 물적·인적 피해를 보지 않고 자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미국의 패권에 대해 중국이 조심스럽게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미국의 태평양 파트너인 일본이 영토를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고대 그리스처럼 기존 패권자와 신규 도전자 간에 전쟁이 발생하기 쉽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제기된다. 더구나 유대인이 입김을 많이 내고 있는 미국인 만큼 유대인과 중국인의 대결, 혹은 유대인과 이슬람인의 대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셋째, 과거 자본주의를 보면 기존 에너지원이 한계에 부닥쳤을 때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해 난국을 타개했다. 18세기 영국에서 나무가 지나치게 벌목되자 석탄을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개발했고 석탄이 심각한 도시공해를 유발하자 석유가 급부상한다. 이제 석유 사용이 지나치면서 지구 온도를 높여 심각한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현재 다양한 대체 에너지원이 개발되고 있지만 석유를 완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를 늘려야 하지만 이런 환경문제 때문에 기존 에너지원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자본주의는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넷째, 자연재해에 따른 대재앙 발생 가능성이 있다. 화산 대폭발로 소빙하기 돌입, 대지진과 쓰나미로 대형 재해, 기온 상승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저지대 수몰 등 대재앙 가능성은 상존한다.

다섯째, 자본주의 자체의 활력이 떨어지고 혁신 부족으로 지속적 성장이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 인간은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생산·소비·환경 등의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기면 바로 혁신이 된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 부족으로 혁신에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면 성장은 멈추고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사람들은 새로운 체제를 원하게 된다.

여섯째, 앞으로는 국가보다 다국적 거대 기업에 의해 세상이 지배될 가능성이 있다. 부르주아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그들에게 우호적인 근대 국가를 만들었듯이 현대 국가 역시 알게 모르게 거대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펴고 있다. 거대 기업은 국가 차원의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고용이나 소득 측면에서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추세가 어느 정도까지는 용인되지만 임계치를 넘어서면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새로운 체제가 등장해 자본주의에 도전한다면 역시 많은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생존하려면 예전에도 그랬듯이 변신이 불가피하다. 왕성한 기업가 정신으로 재무장한 기업이 혁신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거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해야 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소득과 부의 지나친 편중을 과감하게 시정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편중은 국민의 불만을 증폭시키고 전체 소비를 줄여 불황을 지속시킨다. 현명하고 혁신적인 정부가 바람직한 국민적 합의를 잘 도출해 제대로 된 정책을 용감하게 펼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50&aid=0000036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