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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일간계획보다 월간계획의 성취도가 높다고?

2017년 2월 22일 by 곽숙철

심리학자 대니얼 커센바움, 로라 험프리, 셸던 맬럿 연구팀은 공부 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10주 과정에 참여할 학부생들을 모집했다. 그들은 학생들을 무작위로 세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통제집단으로, 30~90분마다 5~10분 정도 휴식을 취하라는 것처럼 시간 관리에 관한 일반적인 팁만 제시했다. 나머지 두 그룹에게는 일반적인 시간 관리 팁을 주고 여기에 덧붙여 월간과 일간으로 시간을 계획하는 방식을 지정해주었다. ‘월간계획 그룹’은 한 달을 단위로, ‘일간계획 그룹’은 하루 단위로 목표를 세우고 확업활동 계획을 짜서 진행하도록 했다.

연구팀은 계획집단이 통제집단보다 훨씬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목표나 계획이 다소 불확실한 월간계획 그룹보다 목표와 계획이 짧고 정량화할 수 있는 일간계획 그룹이 훨씬 나은 성과를 얻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일간계획 그룹은 말 그대로 참담했다. 일간계획을 세운 학생들은 처음에는 매주 20시간씩 공부를 했지만 실험이 끝날 때는 매주 8시간 공부했다.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은 통제집단도 마찬가지였지만, 공부시간의 변동 폭은 일간계획 그룹만큼 크지 않았다. 처음에는 15시간을 공부했으며 실험이 끝날 때는 10시간을 공부했다.

하지만 월간계획 그룹의 성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매주 25시간씩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후반에 다가갈수록 더 열심히 공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 놀라운 결과였다. 월간계획이 일간계획에 비해 동기부여 효과가 2배 이상 높게 나타난 것이다.

연구팀은 실험이 끝나고 1년이 지난 뒤 이들의 학업성적을 추적 조사했는데, 이러한 공부방식은 계속 이어져 학생들의 성적이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월간계획을 세우는 학생들은 성적이 갈수록 좋아졌고, 일간계획을 세우는 학생들은 학업 성취도가 갈수록 떨어졌다. 계획을 세우지 않은 학생들은 제자리걸음을 겨우 유지했다.

원인은 무엇일까? 연구팀은 두 가지 이론을 제시했다. 우선 매일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학생들이 매일 계획을 세우는 일을 포기한다. 또 다른 가설로는,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매일 공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학습의욕이 떨어진다. 두 이론 모두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왜 일간계획을 따르지 못한 것일까?

그 해답은, 일간계획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감기에 걸릴 수도 있고, 집수리를 하는 사람이 와서 집을 지켜야 하는 경우도 있고, 친구가 불쑥 찾아올 수도 있다.

계획을 좀 길게 세우거나, 또는 전혀 세우지 않으면 이런 방해물 또는 기회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무계획의 장점을 활용하라

실제로 이런 무계획의 장점을 극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초창기 인터넷 신동 중 하나였던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은 1994년 넷스케이프를 공동 창업한 뒤 4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받고 매각했으며, 이후 벤처캐피털 회사를 설립해 스카이프, 트위터, 에어비앤비 같은 회사에 투자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행사와 회의에 쫓기던 안드레센은 어느 날 캘린더에 아무런 일정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중요한 일이라면 그 즉시 실행할 것이며, 나머지 일들은 그의 미래를 한 치도 양도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안드레센은 2007년에 이에 관해 이렇게 썼다.

그냥 실험 삼아 해보는 거예요. 그런데 훨씬 행복하군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요.

 

유연한 계획을 세워라

물론 억만장자 벤처캐피털리스트라면 세상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안드레센처럼 단칼에 약속을 거절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지 않다면, 언제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사건에 쉽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훨씬 유연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일정을 빡빡하게 몰아세워 상황을 경직되게 만드는 것은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너무 구체적인 계획표는 머지않아 누더기가 되고 만다. 일간계획은 깔끔해 보이지만, 세상은 무질서하기 때문이다.

원문: 곽숙철의 혁신이야기



[출처 : http://ppss.kr/archives/10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