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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질소를 두고 엇갈린 두 과학자의 운명

'검은 다빈치' 美 카버 박사, 면화 대신 땅콩 심어 土質 개선… 땅콩 이용한 200개 용품도 발명
獨 화학자 하버는 질소 비료로 굶주림 해결했지만 독가스 개발 참여로 戰犯 전락


역사를 보면 역경을 딛고 일어선 과학자가 많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장영실 선현(先賢)이 대표적이다. 그는 어린 시절 동래 관아의 노비였지만 나중에 조선 세종 시대 최고의 과학자가 됐다.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와 각종 천문 관측 기구를 만들었으며, 금속활자 개량 사업에도 공을 세웠다.

미국에도 비슷한 과학자가 있다. 1864년 미국 미주리주(州)에서 흑인 노예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나중에 타임지가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부를 만큼 위대한 과학자가 된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18일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가 친환경 미생물 공정을 개발한 공으로 카버 박사의 이름을 딴 상을 받았다.

카버 박사의 인생은 출발부터 기구했다. 생후 1주일 만에 엄마, 누나와 함께 노예 상인에게 납치당했다. 착한 주인 부부는 납치당한 노예들을 구하려 백방으로 애썼지만 어렵사리 갓난아기 조지만 되찾을 수 있었다. 아이가 없던 부부는 조지와 구사일생으로 납치를 모면했던 형 짐을 친자식처럼 길렀다. 그의 성 카버는 주인 부부의 성에서 땄다.

1865년 남북전쟁이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북부의 승리로 끝났지만 흑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카버 박사는 흑인이 갈 수 있는 학교가 집 근처에 없어 하루 왕복 32㎞를 걸어 통학했다고 한다. 그런 노력 끝에 결국 앨라배마주의 흑인 대학인 터스키기대 농학부 교수가 돼 47년간 재직했다.

카버 박사의 대표적 업적은 땅콩 농사 도입이었다. 당시 미국 남부의 주력 산업은 면화 농업이었다. 하지만 매년 같은 면화를 심다 보니 토질이 나빠져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식물의 단백질과 DNA를 만드는 땅속 핵심 성분인 질소가 고갈된 것이다. 카버 박사는 면화 대신 땅콩을 심으면 황폐해진 땅을 비옥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질소는 공기의 78%를 차지할 정도로 풍부하지만 분자를 이루는 두 원자가 워낙 강력하게 결합해 있어 식물이 바로 흡수할 수 없고 수소, 산소와 결합해 암모니아나 질산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땅콩과 같은 콩과(科) 식물의 뿌리에 사는 박테리아는 질소를 암모니아나 질산으로 만들 수 있다. 박테리아는 대신 식물에서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공생(共生)한다.

땅콩을 심기 시작하자 예상대로 토질이 빠르게 회복됐다. 하지만 농민들의 고민은 계속됐다. 이제는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땅콩을 팔 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카버 교수는 다시 농학자에서 발명가로 변신했다. 그는 땅콩을 이용해 마가린·비누·화장기름·잉크 등 100여 가지 식품과 200여 가지 생활용품을 발명했다. 미국 남부의 경제는 카버 박사의 노력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카버 박사가 생물학적 방법으로 질소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면 같은 시기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 박사는 인공 질소 고정법에 도전했다. 그는 고온·고압 상태에서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오스뮴 금속 촉매를 써서 질소 분자 하나와 수소 분자 세 개로 암모니아 분자 두 개를 얻는 공정을 개발했다. 하버는 이 공로로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하버가 만든 암모니아는 인류를 기아(饑餓)에서 구했다. 하버 공법으로 만든 질소비료가 도입된 이후 미국의 옥수수 생산량은 한 세기 전에 비해 단위 면적당 6배나 증가했다.

두 사람은 질소라는 같은 문제에 매달려 과학 연구로 인류에 헌신했다. 자연에서는 연간 1억9000만t의 질소가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상태로 고정된다. 이 중 90%는 카버 박사가 도입한 땅콩 같은 식물의 박테리아가 만든다. 100여 년 전 하버 박사가 개발한 암모니아 합성법으로 매년 1억2000만t의 질소가 추가로 고정되고 있다.

하지만 끝은 달랐다. 카버 박사는 노예의 아들에서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존경받는 과학자가 됐지만, 하버 박사는 위대한 과학자에서 전범(戰犯)으로 전락했다. 그가 만든 암모니아는 1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탄 제조에 쓰였다. 하버는 염소를 독가스로 쓰는 방법도 개발했다. 그는 "평화 시에는 과학자가 세계에 속하지만, 전쟁기에는 조국에 속한다"고 말하며 무기 연구를 정당화했다. 독가스가 연합군에 처음 쓰인 날 아내가 죄책감에 자살했다. 1차 대전 이후 집권한 나치는 모든 것을 바쳐 독일에 충성한 하버를 유대인이라고 추방했다. 어쩌면 목적이 옳다고 수단을 정당화한 과학자의 오만이 부른 비극이 아닐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3/20180723028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