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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인간 통일성의 일곱 단계- 3. 마을

교통이 발달하기 전, 사람들은 걸어서 하루에 다닐만한 지역을 생활 반경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이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를 폴리스(polis)라고 불렀는데,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인에게 중요한 삶의 단위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폴리스적인(politikos) 동물이다."라고 말한 것은 그만큼 폴리스가 인간 본성을 반영하는 중요한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매우 친밀했고 서로에 대해 잘 알았습니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났다." "이웃사촌이다."라는 말들은 지역 공동체가 중요하던 시절, 가까운 곳에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는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과거의 지역 공동체가 이처럼 가까웠던 원인은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운명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함께 농사를 지었고, 함께 종교활동을 했고, 함께 오락을 즐겼고, 결혼 관계로 함께 묶였습니다. 만약에 전쟁이 난다면 이들은 함께 전쟁터에 나가 싸우거나, 함께 피난을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서로 가족처럼 느낀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교통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하루에 수십km를 쉽게 이동하게 되었고, 생활 반경이 도시 범위로 넓어지면서 지역공동체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늘날 도시에 사는 사람은 그저 우연히 이웃과 한 동네에 모여 살게 되었지, 이웃과 생활을 같이 할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거나, 같은 조기 축구회에서 활동해서 알고 지내는 이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나와 연관된 이웃은 같은 단지에 사는 수천 명 중 극히 적은 숫자고, 아침마다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은 대부분 전혀 다른 곳으로 출근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방인일 뿐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행정적으로 "XX구" "XX동"으로 묶어 놓아봤자 이들이 지역 공동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지역 공동체의 해체는 교통, 통신의 발달 및 도시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따라서 지역 공동체가 없는 사회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던 시절에 대한 대단한 갈망이 숨어 있습니다. 


이는 페이스북 게임 FarmVille이나 아이폰용 게임 Smurf Village처럼 과거의 지역 공동체를 재현하는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현상에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한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지역 화폐(local currency)를 도입하거나, 차를 타고 먼 지역에서 온 상품이 아닌, 우리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도 지역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처럼 현실(특히 도시의 현실)에서 거의 사라진 지역 공동체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인은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라는 개념은 여전히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 세계 인구의 20%는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이고 1%는 굶어서 죽기 직전이다."라고 말하면 단순한 사실로 받아들이겠지만, "세계가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20명은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고, 한 명은 굶어서 죽기 직전이다."라고 말하면 마음에 와 닿는 말이 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지역 공동체의 수준에서 생각할 때 훨씬 더 절실하게 느끼는 법이죠. 그래서 예수님도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을 가르치며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표현은 "온 인류를 사랑하라."라는 표현과 같은 뜻이지만, 훨씬 호소력이 큽니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기 원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표현으로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역시 지역 공동체의 개념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지역 공동체에 대한 애착은 심리학적으로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선 인간이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를 던바의 숫자(Dunbar's number)라고 부릅니다. 이 숫자는 100명일 수도 있고 200명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150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150명이라면 대충 내가 작은 마을에 살면서 이웃사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의 숫자와 비슷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나와 친한 150명이 도시 곳곳, 또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기에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 사람들은 한 마을에 사는 소수의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놀며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지역 공동체, 즉 마을은 "내가 개인적으로 친한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단위"이자 "나와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고, 따라서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죠. 

이처럼 의미 있는 공동체가 사라진 도시에 사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통일성의 중요한 한 단위가 사라졌기에 사람들은 다른 단위인 개인이나 가족에게 집중하고, 이는 이기주의, 또는 가족 이기주의로 표현됩니다. 


어떤 사람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가상의 공동체, 또는 직접 만날 수 있는 동아리 모임 등을 통해 과거의 지역 공동체에서 느끼던 소속감을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존재하는 어떤 공동체도 과거의 지역 공동체와 같을 수는 없고, 따라서 지역 공동체의 완벽한 재생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지역 공동체는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이상이기에 그만큼 매력적이고, 잠깐이라도 이와 비슷한 모임을 만난다면 대단한 행운이라고 하겠습니다.

 

 

[출처 : http://cimio.net/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