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일시적 누진제 완화에 이어 18일 개편논의가 발표됐다. 다만 전기요금과 관련된 수익과 비용의 구조가 매우 복잡하고 한국전력공사의 투자계획과 재무구조 또한 고려해야 하는만큼 단기간에 해결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한전 흑자, 누진제 아닌 원가비용 하락 때문...2분기 매출은 작년보다 감소
누진제가 논란이 되자 독점 전력공급 업체인 한전의 흑자행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3년간 한국전력공사의 영업이익은 2014년 5조8000억원, 2015년 11조3000억원, 2016년 상반기에만 6조3000억원을 기록했다.그러나 한전은 누진제를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다. 또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누진제로 인한 매출증가로 이익이 증가한 게 아닌 비용감소가 원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의 이익이 좋아지려면 매출이 증가되거나 비용이 감소되어야 한다. 한전의 경우는 후자에 의하여 이익이 개선된 사례다. 같은 기간 동안 매출은 거의 정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전자공시 시스템에 공시된 한국전력공사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매출액 57조원 대비 원재료 사용 및 전력구입비는 33조원으로 매출액의 57% 수준이다. 그런데 2015년에는 매출액 59조원 대비 원재료 사용 및 전력구입비는 26조원으로 매출액의 44% 수준으로 떨어졌다.
매출액이 2조원 증가하는데, 발전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재료와 전력구입비는 오히려 7조원이나 감소했으니 당연히 이익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원재료는 원전연료, 원유, 무연탄 등 발전에 필요한 원자재를 의미하며 전력구입비는 외부에서 전력을 사올 때 지불한 금액이다. 보고서에 명시된 주요 원재료의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 외부에서 사오는 전력구입비 또한 감소 추세로 나온다. 즉 한국전력공사의 원가절감 노력보다는 우호적인 영업환경에 따라 이익이 급증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올해는 5월부터 무더위가 시작되었고 일찍 폭염주의보가 내렸을 정도로 덥고 누진제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에 전 국민의 불만이 큰 상황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전의 2분기 매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 감소한 것으로 공시됐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처럼 한전이 누진제로 인한 폭리를 취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저소득층 지원, 산업용 요금, 전력과소비 가구 등 고려해 전체 전기요금 체계 손봐야
이에 단순히 누진제 개편이나 폐지가 답이 아니라 전체 전기요금 체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 에너지정의행동은 누진제 논란과 관련해 11일 ‘한 철 더위에 좌지우지될 문제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에는▲저소득층·사회적 약자 지원과 산업용 요금 할인 철폐▲소수의 고소득층, 전력과소비 가구에 대한 지속적인 규제▲생활환경 변화와 1인 가구 증가 등을 반영한 누진제 개편▲전기요금 원가 공개▲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이들은 작년에도 산업부가 7~9월 여름철에 한시적으로 누진제 완화와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정책을 시행했을 때 ‘포플리즘적 땜빵 정책’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정책 시행은 정부가 스스로 이야기해 온 전력소비 억제와 무분별한 전기화 경향을 바로 잡겠다고 한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게다가 당시 수행되었던 정책은 누진제 체계상 전력소비 상위 28%만 혜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 출처=에너지정의행동
또한 현재의 전기요금 체계는 분명히 잘못되었으며 무분별한 발전소 건설로 인한 미세먼지, 핵폐기물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기요금 원가 공개, 요금체계 투명화해야
특히 에너지정의행동은 전기요금의 원가를 공개하고 요금 체계를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바꿀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공기업 한전이 모든 전기를 공급하고 있지만 전기요금 원가는 비공개 상태이다. 또한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한국전력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매년 여름철이면 ‘에어컨 대란’에 편승해 일시적으로 전기요금을 조정해 온 것이 우리나라 전력정책의 현 주소다.
전기요금 OECD 최저 수준...무조건 요금 낮추는 게 아니라 ‘맞춤형 제도’필요
요금 폭탄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전기 요금은 OECD 전체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주택용 요금의 경우, 누진제와 구매력평가지수(PPP)를 다 적용해도 메가와트시(MWh)당 130.6달러로 OECD 유럽 평균 256달러나 OECD 전체 평균 176.6달러 보다 싸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요금 원가와 정책 기조 등을 무시하고 무조건 전기요금을 낮춰야 한다는 건 적절치 않다.
주택용 누진제도는 전력 다소비 가구의 전력소비를 억제하고 전력 저소비, 저소득층 가구의 전기요금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즉 전력을 조금 쓰는 가구엔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을 매기고, 많이 쓰는 가구엔 많은 전기요금을 매겨 전력공급의 형평성과 수요 증가를 막는 장치다.
그러나 6단계, 최대 11.6배의 전력요금 차이가 있는 현재의 누진제도는 그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만들어진 현 제도는 그 사이 늘어난 1인 가구, 아파트 중심·고밀집형 주거환경 변화 등을 제대로 반영하고 못하고 있다. 누진제 1,2 단계에 있더라도 고소득자인 경우가 있고, 김치냉장고 등 새로운 전기기기 확대에 따라 가구당 전력수요는 계속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주택용 누진제도는 개편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여름철 전력수요의 0.4%에 불과한 600kWh 초과 가구(전기요금 약 22만원)에 대한 혜택으로 연결되서는 안 된다. 먼저 올해 폭염 같은 재난 상황에 저소득층과 노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더위 쉼터’ 제도 확대, 전기요금 감면 혜택 등은 지금보다 확대되어야 한다. 온열질환으로 1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현 상황을 재난상황으로 인식하고 휴업을 포함한 다각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전기요금 체계 논의는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전기요금 체계 개편의 핵심은 투명한 원가공개와 사회적 합의, 지속가능성
정부와 공기업 한전은 그간 영업상 비밀이라는 이유로 전기요금 원가와 가격 구조를 공개한 적이 없다. 이번 누진제 논란의 한쪽 측면엔 전기 요금 책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무시한 정부의 책임도 있다. 그간 정부는 연료비 연동제를 비롯 전기요금 제도 개선을 통해 ‘가격 정상화’를 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바 있다. 또한 그간 환경·에너지 단체를 비롯해서 산업계, 소비자, 정치권 등 다양한 이들로부터 전기요금 개편 요구를 받아왔지만 단 한 번도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토론과 공론화 절차를 밟지 않았다. 매번 깜짝 쇼와 같은 일방적인 발표와 뒷수습하기에 급급했던 것이 정부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가운데 역대급 폭염이 계속되자 정부는 작년과 같이 여름철 누진제 완화 같은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전기요금 체계 전반 재검토해야
전기요금 개편은 주택용 누진제로 국한되지 않고 산업용와 교육용, 농사용 등 전기요금 체계 전반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정부는 그간 전기요금을 낮춰달라는 산업계의 요구를 계속 수용해서 주말과 심야시간 경부하 요금제를 계속 확대해왔다. 교육용과 농사용의 경우, 원가 이하로 전력이 공급되고 있음에도 별도의 예산 확보 없이 사실상 다른 전력소비자에게 요금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지원이 계속되어 왔다. 특히 대규모 농장이나 사업체 등도 농사용 전기를 사용하여 영세 농가 지원이라는 원래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간 전기요금 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다시 살펴보고 어떤 방식이 합리적인 에너지 소비에 적합한 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장 문제가 되는 주택용 누진제 완화가 아니라, 요금제도 전체를 재검토하는 작업이다.
전기는 우리 생활 및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필수재다. 따라서 전기 요금 개편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은 무엇보다 크다. 이런 측면에서 전기요금 제도에 대한 즉자적인 대응은 오히려 문제를 왜곡하고 또다른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무더운 여름철 폭염은 며칠 뒤에 끝나겠지만 잘못된 정책 수립으로 인한 파장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출처 :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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