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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집권 4년차 징크스

‘87년 체제’ 이후 역대 정권을 들여다보면 말기에는 공통적인 패턴이 보인다. ‘집권 4년차시 대통령 측근 혹은 친인척 비리 의혹 대두→검찰 수사→집권세력에 도덕적·정치적 치명타→차기 권력 부상’이란 패턴 말이다. 이런 패턴 때문에 검찰과 같은 주요 사정기관은 정권 초엔 겉으로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하며 납작 엎드려도, 뒤로는 4년차 수사에 대비해 권력의 비위첩보를 몰래 수집하곤했다. 4년차 수사는 “정치 검찰”이란 오명을 만회하고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검찰이 민주화 이후 갖은 논란 속에서도 지금까지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집권 4년차 마다 권력에 칼을 겨눈 덕분이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와 박근혜검찰은 기존 패턴과 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4년차에 사정 드라이브를 걸면서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 되는 듯했으나 결국엔 비선실세 게이트로 헌정 사상 첫 ‘탄핵’이란 파국을 맞았다. 검찰 역시 초기에 우병우 민정수석관련 의혹과 비선실세 게이트를 대충 덮고 넘어가는데 성공하는 듯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몰락과 함께 ‘검찰 개혁’이란 시대적 과제와 마주하게됐다.


각 정권의 4년차 게이트를 복기해보면 노태우정부는 수서비리 사건, 김영삼정부는 최측근인 장학로씨 뇌물 수수 사건로 휘청거렸다. 김대중정부는 게이트의 백미라할 만하다. ‘이용호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가 정신없이 이어지는 와중에 결국 대통령의 아들 3형제(일명 ‘홍삼 트리오’)가 재판에 넘겨졌다. 노무현정부는 4년차 때 ‘바다 이야기’로 타격을 받았고, 이명박정부는 그간의 전례를 분석한 때문인지 집권 4년차에 공직사회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사정 정국을 조성했으나 저축은행 비리수사로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구속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박근혜정부는 이전 정권과 달리 ‘우병우’란 카드를 갖고 있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인품과 신망을 별론으로 한다면, ‘두뇌’ 측면에서는 이전의 민정수석들과 무게감을 달리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30%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등에 업고 있어 청와대 안팎에선 최초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검찰도 대기업 수사 드라이브를 걸며 정권의 기대에 호응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몰락을 맞았을까? 최태민 일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싼 수십년간의 비상식적인 관계를 제쳐두고, 정권유지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박근혜 정부가 4년차에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은 ‘잔인함’ 때문이라고 사정기관 사이에선 지적한다. 정권 유지용 사정 드라이브를 세게 걸었는데 반대세력에게 너무 잔인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우병우 콤비’는 성격에 닮은 데가 많았다. 반론을 허용하지 않고, 단순 이의제기조차 항명으로 받아들여 가차없이 보복한다는 점에서다.


일부에선 이와 관련해 만약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부동산 관련 의혹이 제기된 초기에 우 전 수석이 물러났다면 사건이 이렇게 눈덩이처럼 커지진 않았을 거라는 진단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당시 우 전 수석이 진위여부를 떠나 정권을 위해 청와대를 떠났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며 “우 전 수석은 검찰에 있을 때도 조직 보단 자신의 자리를 더 챙겼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정기관 관계자 역시 “우 전 수석이 없다고 해서 청와대가 망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걸 꼭 이겨야하는 게임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 와중에 ‘너무 잘 드는 칼’이었다. 박근혜정부 들어 검찰이 손 댄 수사에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다.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사건, 성완종 게이트, 롯데 수사 등등.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검찰이 너무 무리하게 윗선의 기획대로 사건을 처리하려든다”고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알게 모르게 박근혜정부 사방에 원한을 산 인물들이 쌓였지만 ‘잘 드는 칼’ 검찰은 꿈쩍 않았다. 우 전 수석이 검찰 인사를 손에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검사장이건, 부장검사건 우 전 수석 앞에선 벌벌 떨었다고 한다. 우 전 수석과 검사들의 자리에 동석한 적이 있다는 한 검찰 관계자는 “(검사들의 모습이) 한 마디로 가관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검찰 내에서는 항변의 말도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우리라고 정권말을 준비 안 했겠느냐. 그런데 게이트가 생각보다 너무 일찍 왔다”고 했다. 풀이 바람에 스러지듯 검찰도 스러졌지만, 마음 속으론 호시탐탐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내심의 뜻은 어떠했건 간에 박근혜정부는 사상 초유의 촛불시위와 탄핵으로 무너져내렸고, 수장인 박 전 대통령은 구속 위기에 처했다. 검찰 역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영장청구로 잠시나마 위기를 모면할 듯 보이지만 검찰 개혁이란 민심의 큰 흐름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흥미있는 건 검사들의 행동이다. 정권 교체가 불가피해 보이는 흐름 속에서 일부 검사들은 ‘각자 도생’의 길을 바삐 걷고있다. 새로운 줄을 찾아보려는 검사, 운 좋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에 관여해 ‘이력 세탁’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웃는 검사…. 물론, 우 전 수석 체제 이후 한직에 좌천되고서도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훌륭한 검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다만, 우 전 수석과 가까웠던 검사들 상당수는 최근 들어 한결같이 친분을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라고.



[출처 :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