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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estaurant

[정동현·한끼서울]서촌 이탈리안 파스타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⑪ 종로구 갈리나데이지



다양한 풍미의 파스타를 맛보는 갈리나데이지 시그니처 파스타



갈리나데이지-지도에서 보기


통인시장에 기름 떡볶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촌에 해물라면에 소주를 파는 계단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왕산 아랫자락은 층수가 높지 않은 건물이 대부분이고, 골목이 모세혈관처럼 가늘고 넓게 깔려 있다. 그 가운데는 몇몇 유명하고 저렴한 곳들 외에도 작게 빛나는 집이 있다.


본래 양반들이 모여 살았다는 서촌 터줏대감 격인 삼계탕집 토속촌을 지나 조금 더 올라오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중 하나인 추어탕집 용금옥이 있고, 그 다음 마주하는 골목에서 좌편으로 방향을 바꾸면 낮게 달린 간판 하나가 있다. 식당 이름은 ‘갈리나데이지’. 암탉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갈리나’에, 셰프 예명을 붙여 지었다. 이름처럼 이곳을 책임지는 셰프는 여자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간판을 지나면 작은 정원과 나무 벤치가 있다. 비밀의 화원을 지나듯 타임과 같은 허브가 자라는 정원을 지나 나무문을 열면 작은 홀이 펼쳐진다. 반기는 것은 하얀 셔츠에 키가 훤칠한 직원들과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꽃이다.



갈리나는 이탈리어로 `암탉`, 데이지는 셰프 예명이다.



잰 걸음으로 걷는 직원들 모습을 보면 몇 가지를 예측할 수 있다. 우선 맛이 수준 이하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사 시간이 불쾌해지는 일은 드물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갖춘 곳은 인구 천만 명이 모여 산다는 서울에서조차 꽤 드물다.


인력 운영 면에서 최저 임금이 낮기 때문에 노동 의욕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혹은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에 급료를 많이 쳐줄 수도, 식재료 원가를 높게 쓸 수도 없어 자연히 서비스와 음식 질이 떨어지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아니면 오로지 싼 식사만을 원하는 일반 대중 때문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일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우리 모두의 수준이 낮기 때문으로 귀결해본다.



갈리나데이지 시저샐러드(좌), 가지구이(우)



확실한 것은 갈리나데이지에서 치러야 하는 한 끼 식사 값이 그리 낮지 않다는 것이다. 파스타 하나에 최소 2만원 선. 2인이 시킬 수 있는 갈리나데이지 시그니처 파스타 모둠 세트는 8만원에 달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근래 음식을 평가하는 척도로 가장 선호되는 가성비는 어떨까? 파스타 한 그릇에 만원이 겨우 넘는 시중 프랜차이즈를 생각하면 아마 이곳은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될 곳이다. 흔히 비난하듯 폭리를 취하는 곳일지도 모른다. 아마 누군가는 계산기를 가지고 와서 밀가루와 계란 함량을 그램 단위로 쪼개어 단가를 곱할지도 모른다.



근사한 레스토랑은 요리뿐 아니라 흡족한 와인리스트를 함께 내놓는다



그러나 “여기요!”라고 고함치지 않고 손만 들어도 테이블로 다가오는 직원, 족히 하루는 잡고 끓여야 하는 소스,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트러플을 아끼지 않고 갈아주는 여름 특선 메뉴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이런 분위기와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곳이 서울에 몇 군데나 되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성비라는 날선 단어 대신 기쁨, 감사, 행복과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미트 소스를 위에 올리고 구운 가지와 모짜렐라 치즈, 지리산 흑돼지로 만든 관찰레(돼지 볼살을 염장한 이탈리아 햄)를 볶아 올리고 안초비를 갈아넣은 마요네즈 소스를 버무린 시저샐러드, 시그니처 어란파스타와 시금치 뇨끼, 라구 소스 스파게티, 여기에 고르곤졸라 치즈를 갈아 풍미를 더한 크림 소스 파스타, 코코아 파우더가 아닌 초콜릿과 스폰지 케이크를 켜켜이 쌓은 티라미수, 구운 과자 사이에 크림을 넣은 카놀리까지. 여기에 산도가 끝까지 치솟는 이탈리아산 화이트 와인 소아베(Soave classico)를 곁들였다.



갈리나데이지 수제 디저트



단단한 체구를 지녔지만 연신 미소를 지으며 직원들을 격려하던 데이지 셰프는 홀과 주방을 누비며 이 집 주인이 누구인지, 이곳을 이룩한 이가 누구인지 깨닫게 해줬다. 음식도 그녀를 닮았을까?


요리에는 작은 꽃, 튀긴 프로슈토 등이 올라가 눈이 즐거우면서도 그 맛을 보면 염도와 산도가 단단히 기반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잔망스럽게 가벼운 기교가 아닌 묵직한 뉘앙스를 가진 심지였다. 이런 음식을 내놓는 곳이라면 충분히 오래 사랑받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그 옛 서촌답게 기품을 가진 그런 집으로.



*편집자주: 갈리나데이지는 2017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선정됐다.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06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