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⑨ 종로구 공평동꼼장어
중간이 없는 나라다. 뭐든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전국에 폭염 경보가 떨어진 날, 멈출 줄 모르는
태양의 기세는 땅을 뜨겁게 달궜다.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은 본인 인격이란 가변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날 불판 앞에
앉겠다는 생각은 자학과 극기 둘 중 하나에 속한다.
하지만 뜨거운 날씨보다 더 필요했던 것은 뜨겁고 매콤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입 속에서 꿈틀댄다면 더욱 좋았다. 그리고 독주 한 잔을 목구멍으로 넘긴다면 더위 따위, 소리 한 번 크게 내지르면 끝나고 말 것 같았다.
종로로 향했다. 이제는 사라진 지번 주소인 공평동에 음식명이 붙으면 이곳 이름이 완성된다. ‘공평동 꼼장어’다.
오피스 빌딩들이 줄을 선 이 곳에 바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다. 날이 선선해지면 백이면 백 줄을 서야
간신히 드럼통 앞 낮은 의자에 엉덩이를 뉘일 수 있다. 그러나 날은 삼복더위, 숯불 앞에 앉아서 꼼장어를 굽겠다는 기백을 가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섰다.
그 계산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퇴근 하자마자 간 ‘공평동 꼼장어’에는 우리를 위한 단 하나 자리가 있었다.
우리 뒤로 온 사람들은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듯한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줄을 서야 했다.
사실 이 집에서 꼼장어를 굽는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모두 다 구워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모든 메뉴는 안쪽 주방에서 계량이 되어 식당 밖으로 향한다. 그곳에 이 생물을 굽는 사내들이 있다. 얼굴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고 온 몸에서는 땀이 흘렀다. 이 식당 성공 비결이란 이 사내들 땀에서 비롯된다.
저 메뉴들을 일일이 불판 앞에서 굽다보면 시간은 오래 걸리고 수고는 수고대로 들기 마련이다. 술잔을 앞에
두고 하염없이 집게를 들고 꼼장어를 뒤척이는 것도 일, 게다가 이런 무더위 속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앉아서 기다리면 다
익은 꼼장어가 대령되니 움직일 것은 손가락과 손목 뿐이다. 메뉴 구성도 다채롭다.
“꼼장어 못 먹는데…….”
이곳은 꼼장어의 고장 부산이 아니라 서울, 여럿이 모이면 꼼장어를 앞에 두고 망설일 사람이 꼭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상호는 꼼장어를 앞세웠으나 메뉴는 다양하다. 쭈꾸미, 돼지고기, 껍데기, 막창 등이 있는데 하나 같이 ‘불’자가
앞에 붙는다. 양념도 벌건 것이 입에 넣으면 ‘맵다, 매워’가 절로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이것들도 뜨겁게 맵기보다는 입맛을 돋울
정도로 살짝 혀를 덥히기만 한다.
식사 메뉴도 빠지지 않는다. ‘짬밥’이란 이름을 가진 무채비빔밥, 계란후라이가 들어있는 ‘벤또’는 테이블 마다 꼭 올라와 있는 인기메뉴이고 매운맛을 덜어주는 계란찜도 빠트릴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집 하이라이트는 뒤에서 지켜보듯 빠르게 찬과 소스를 채워넣는 직원들이다. 맛있다고 소문이 나
바쁘게 돌아가는 집이면 부르고 또 불러도 대답이 없는 직원과 덩달아 찾아오는 불친절에 아무리 맛있어도 ‘다시는 안 와’라고 여러
번 이를 악물게 된다. 이 집은 다르다. 아무리 바빠도 대답과 행동은 빠르고, 호쾌하기까지 한 서비스는 재즈 빅 밴드의 화려한
앙상블을 보는 것 같다.
뒷 주방 ‘이모’들은 드럼처럼 묵묵히 재료를 쓸어 담고 가게 밖 불꽃 앞 남자들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석쇠를 뒤집는다. 가혹하기까지 한 더위에도 종업원들 얼굴에는 짜증이 없었고 그 기운은 손님에게 쉽게 전염됐다.
꼼장어에 돼지고기, 막창까지 추가해 초록병 줄을 세우던 날, 목소리 큰 이 집 ‘왕언니’는 얼음이 가득 든 봉지를 손님 목에 걸어주며 “많이 더우시죠”라고 말을 건냈다. 취기는 찬찬히 오르고 배는 슬그머니 차올랐다.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빠르게 자리를 비켜주며 계산을 했다. 왕언니는 카드를 긁으며 힘있는 목소리로 “맛있게 드셨어요?”라고 물었다. 10여 년 전부터 그랬듯이 나의 대답은 똑같았다.
“그럼요. 잘 먹었습니다.”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02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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