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이나 해장국 정도라고 할까, 이 라멘이라는 것은 일본인들에게는 삶에 가장 가까이 있는 소울푸드 중 하나이다. 하루의 시작을 朝ラー(아사라-, 아침과 라멘의 합성어)라고 해 라멘과 함께 시작하기도 하고 점심, 저녁시간이면 꼭 찾는 것 또한 이 라멘이다. 우리의 해장국처럼 姉妹(시마이)라고 해 술자리 후 전철 막차시간에 맞추느라 허겁지겁 먹는 것 또한 라멘이다. 그만큼 일본인에게 라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이 일본 라멘이 꽤나 인기다. SNS(Social Network Services)에서도 쉽게 라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도쿄맛집이란 태그로 일본 현지 라멘도 많이 포스팅되고 있다. 가장 많이 포스팅되는 곳은 一蘭(이치란)라멘. 나는
이치란라멘을 맛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추천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한국에서 순댓국을 먹고 싶다는 일본인 친구에게 놀○순댓국을 소개해 줄 순 없지 않나. 맛은 별도로 하고 일본인의 입맛에는 맛지 않을지언정 나는 반드시 로컬들이 가는 정겹고 구수한 냄새가 넘치는 국밥집을 추천하리라. 제대로 된 한국을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곳들 말이다.
이번에 라멘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하면서 내가 가장 고민한 것은 바로 이 맛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치란 보다는 맛있어야 할
텐데’, ’내 글을 보고 갔던 그곳이 맛없다고 하면 어쩌지?’하는 걱정들. 하지만, 나는 그런 염려는 접어 두고 맛보다는 재미와
로컬의 감성을 경험할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하기로 했다. 내가 일본인들에게 로컬 순대국밥집을 소개해 주듯이 나 또한 일본인들의 로컬
라멘을 소개하겠다.
그러므로 내가 소개한 라멘이 항상 맛이 있다는 말은 못하겠다. 다만, 나의 ‘라멘리스트’는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그 지역의 ‘맛집’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의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현지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로컬들의 스토리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처음 소개하는 라멘야는 二郎ラーメン(지로라멘)이다. 이 지로라멘은 내가 아는 종류의 라멘 중에 가장 재미있는 라멘야가 되겠다. 이 라멘가게가 어느 정도의 라멘인가 하면, 첫 문을 연도가 1968년, 약 50년, 반백년 되었으며, ジロリアン(지로리안, 지로라멘 마니아를 일컫는 신조어)이라는 신조어를 탄생 시켰을 정도로 매니아층이 두터운 라멘집이자, 2009년에는 영국 가디언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먹어야 할 요리 50’에 선정된 바도 있다. 이 라멘이 왜 재미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유가 있는데, 우선 ‘먹는 방법'부터 살펴보자.
첫번째, 食べ方(타베카타, 먹는 방법) 하늘과 땅의 반환 - 天地返し(텐치카에시)
이 라멘가게의 라멘을 먼저 살펴보자. 지로라멘이라 하는 라멘은 形(카타치, 형태)가 정해져있는데, 돼지 살코기, 돼지 비계, 돼지 족을 삶아 우려낸 육수를 베이스로 하고 거기에 아주 굵고 꼬불거리는 라멘발과 그 위에 야채를 수북하게 쌓아 올린 형태의 라멘을 모두 二郎系ラーメン(지로케라멘, 지로가의 라멘)라멘이라고 부른다. 이 형태의 라멘을 지로라멘에서 가장 먼저 시작해, 지로를 기점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후지산’처럼 야채가 수북이 쌓아올려진 무지막지한 라멘은 먹는 방법이 두 가지다. 단순하게 야채부터 먹는냐, 면 부터 먹느냐.
프로 지로리안들은 면부터 먹는다. 이 면부터 먹는 방법은 이름부터 재미있다. ‘天地返し’(텐치카에시, 천지반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하늘과 땅의 반환’이라고 부른다. 땅이라고 볼 수 있는 이 면발을 야채 위로 뒤집어 올려 야채를 국물 밑으로 가라앉히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먹는 것에는 지로리안들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
지로라멘은 다른 라멘야에 비해서 아주 굵은 면발을 사용한다. 이 면발은 국물을 빨아들이기 쉬운데, 야채부터 먹기 시작하면
면이 점점 붇게 되어 그 지로 특유의 굵고 꼬들꼬들한 면발을 제대로 즐길 수 없으며, 마지막에는 국물도 연해져서 국물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야채는 전혀 간이 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텐치카에시’를 하면 야채가 국물에 잠겨 면을 먹는 동안 자연스럽게 육수가 야채에 입혀지는 것이다. 지로라멘을 먹으러 가면 이 ‘텐치카에시’를 흔히 볼 수 있는데, YOUTUBE에서 ‘텐치카에시’를 먼저 찾아보는 것도 재밌는 여행 준비가 되겠다.
두번째, ‘주문방법’
지로라멘의 토핑은 이 집만의 용어로 주문한다. 우선, 야채 토핑은 모두 무료다. 양은 그람수로 정하는 것이 아니고 속어로 ‘マシ’(마시, 곱빼기) ‘マシマシ’(마시마시, 곱빼기의 곱빼기)로 그 양을 정한다. 지로라멘 초보자라면 보통 라멘을 시키고 ‘마시’를 추천한다. 여성분의 경우라면 면의 양을 반으로 할 것을 추천. (사진은 미타 본점의 보통 라멘 + 마시마시)
세번째, ’라멘맛이 매일 다르다.’
지로리안들은 매일 이 같은 지로라멘을 먹으며 항상 다른 맛 리뷰를 남긴다.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매번 다른 리뷰가 웃기기도
하지만, 이 라멘은 정말 매일 맛이 다르다. 누구는 날씨와 야채의 수확 시기의 탓이라고 하던데 필자는 더 구체적인 답을 연구해
보았다. 그래서 찾은 답은 ‘손맛’.
지로라멘은 정말이지 손대중으로 음식을 만든다. 정확하게 무게를 재가며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그 사람의 그날의 감정에 따라서 맛이 달라 지는 것이다. 이 라멘의 맛 포인트 중에는
‘세아부라’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 돼지 비계를 말하는 것인데, 이 지방의 ‘이에케라멘’에서는 맛의 5할을 차지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맛의 요소이다. 보통의 라멘집은 이 것을 정확한 무게를 재고 끓이고 갈아서 아주 고운 분자로 만들어 일정한 비율을
맞춘다.
하지만, 지로라멘은 이것을 채에 뭉개어 라멘 위에 뿌리듯 첨가하기 때문에 그 양이 매번 달라 진다. 따라서 라멘 맛의 깊이가 그날 그날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손맛’에 따른 ‘세아부라’의 양에 있지 않을까 싶다. 꼭 정답이 아닐지라도 그 미묘한 맛의 차이를 느끼며 답을 찾는 과정 또한 참 재미있는 라멘이다.
네번째, ‘각 지점마다 맛이 다르다.’
지로라멘은 그 오랜 역사 동안 굉장히 많은 분점들이 생겨났다. 이 분점들은 우리나라의 체인점과는 좀 다른 형식으로, 본사와
지점의 계약 관계가 아니라, 본점과는 무관한 독립된 가게이다. 다만, 이런 형태의 가게를 분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분점들은
지로라멘에서 라멘을 수료한 수료자들, 그러니까 제자 격인 사람들이 창업한 라멘집들 이기때문이다.
이 분점들은 본점의 그 형식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오너 자신들만의 각색을 통해 라멘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 맛이 각 지점마다 다 다르다. 어느 지로는 매운맛을 내기도 하고, ’쇼유’가 아닌 ’みそ’(미소)를 베이스로 라멘을 내기도 한다. 물론, 이런 맛을 결정하는 것은 ’たれ’(타레, 소스)의 종류뿐만 아니라 자신의 육수스타일, 자신이 라멘을 반드는 순서에 따라 그 맛이 또 미묘하게 달라진다.
다섯번째, ’아무나 지로리안이 될 순 없다!’
이 지로리안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각 지점을 투어하듯 방문해 각 지점의 맛을 서로 공유한다. 그들이 쓰는 리뷰는 마치
<신의 물방울>의 그것을 보는 듯 한데, 예컨대, 湯切りの音(유키리노오토)라는 말로 ‘삶은 면발을 건져 올려 물기를
털어낼 때의 소리’를 리뷰 할 정도다.
드라마 <ラーメン大好きな小泉さん> (라멘 다이스키나 고이즈미상, 라멘 마니아인
고교생 고이즈미의 라멘 일기를 다룬 드라마)을 보면, 주인공 고이즈미상이 이 유키리노오토를 녹음해 듣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픽션이 아니라 실화다. 실제로 지로리안들 중에는 가게 점원에게 부탁해 각 지점들의 ‘유키리노오토’를 녹음해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이처럼 지로리안은 매일 같이 이 라멘을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라멘과의 혼연일체, 이 라멘을 진정으로 사랑해야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로리안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一度では理解できない三度通えばハマる食べ物ジロリアンへの道!誰でもジロリアンになれない!」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는 세 번은 다녀야 빠지는 음식, 지로리안의 길! 아무나 지로리안이 될 순 없다!
지로라멘 미타 본점
주소: 2 Chome-16-4 Mita, 港区 Tokyo 108-0073
영업시간 : 오전 8:30~오후 3:00, 오후 5:00~8:00 (일요일 휴무)
Kaeru 카에루
주소: 5 Chome-56-12 Nakano, Tokyo 164-0001
영업시간 : 오전 11:00~오후 3:00, 오후 6:00~11:00 (월요일 휴무)
▲ 지로라멘 전경.
▲ 야채와 돼지고기가 듬뿍 올라간 지로라멘의 라멘.
▲ 지로라멘 미타 본점의 보통 라멘 + 마시마시.
'News & Info > Restaura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신, ‘서울 맛집 베스트 50’ 공개 (0) | 2017.12.19 |
---|---|
[정동현·한끼서울]건대 양꼬치와 마파두부 (0) | 2017.12.19 |
칼바람 녹이는 이국적인 훠궈 맛집 5곳 (0) | 2017.12.12 |
[정동현·한끼서울]잠원동 돈까스 (1) | 2017.12.05 |
연트럴파크(연남동) 맛집 (0) | 2017.11.27 |
[정동현·한끼서울]여의도 징기스칸 요리 (0) | 2017.11.21 |
[정동현‧한끼서울]인사동 오코노미야키 (0) | 2017.11.17 |
단풍 구경 후 가기 좋은 ‘경복궁 맛집’ (0) | 2017.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