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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estaurant

[정동현·한끼서울]잠원동 돈까스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23) 서초구 한성돈까스


강남 상권의 언저리, 기름 냄새로 골목을 뒤덮는 집 `한성돈까스`


강남대로는 마치 강이 바다로 흘러들 듯 경부고속도로와 만나며 사라진다. 그리고 강남 상권 역시 강남대로가 도산대로를 만나며 그 영향력의 종지부를 찍는다. 산에 골짜기가 생기듯 도로와 도로 사이에 상권이 형성 되고 큰 산맥을 만나면 그 골짜기가 끝나는 것과 같다.


강남 상권의 언저리, 사람들이 걷고 걷다가 해장을 하고 택시를 잡아타는 그 나루터 같은 곳에는 여럿 유명한 해장국집과 꽃게장집들이 산재해 있다. 그 골목에만 들어서도 취기가 오르고 어느 집을 들어가든 똑같은 냄새와 똑같은 광경을 볼 수 있다.


취한 사람들, 지옥처럼 펄펄 끓는 해장국, 그 뚝배기를 나르는 종업원들의 찌든 얼굴을 보고 있으면 도시의 맨얼굴이란 바로 이런 것 같다. 밝은 햇빛이 비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그 사이 너머에는 기름 냄새로 골목을 뒤덮는 집이 하나 있다. 이 도시의 옛 이름을 딴 ‘한성돈까스’다.



어릴 적 보았던 간판이 그대로. 이 도시의 옛 이름을 딴 돈까스집



돈까스가 일본 음식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에서 돈까스를 먹어본 많은 사람들은 그 맛이 한국과 많이 다르고, 그 수준 차이 역시 크다고 말한다. 돈까스의 종주국이 일본이니, 그 역사와 시장의 크기가 다르니 자존심 상해할 것은 아니다.


한국에 일식 돈까스가 들어온 것도 실상 얼마 되지 않았다. 특급호텔들을 제외하고 일반 거리에서 일식 돈까스를 먹을 수 있기 시작한 때를 기껏해봐야 1970년대 후반으로 잡으니 채 50년이 되지 않은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를 성형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돼지 등심에 기름기를 떼어내지 않는 반면 한국은 기름기를 다 없애고 튀겨 입에 남는 식감이나 맛에 차이가 생긴다. 일본에서는 기름지고 그만큼 육즙도 많은 반면 한국의 것은 담백하고 또 그만큼 건조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일본과 한국은 가까운 나라이지만 돈까스 하나만으로도 차이를 여럿 찾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난만큼 이제 한국식 돈까스라는 것이 생길만도 하다. 보통 ‘한국식’이란 이름이 붙는 것들은 작명의 진의와 그 품질에 대해 먼저 의심이 가지만 한성돈까스는 예외로 두어도 좋다.



튀김과 과자 그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종류의 음식 같다



어릴 적 보았던 간판 그대로, 낮은 단층 건물에 자리를 잡은 한성돈까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기름에 돼지고기를 튀기고 자르는 아낙들이 보인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이 그렇듯 하루종일 배고픈 병사처럼 가게에 밀어닥치는 수백 수천의 사람들을 먹이고 치우는 이들은 우리의 어머니이고 이모이며 고모인 중년 여성들이다.


기름솥 앞에서 기름에 데이고 뜨거운 튀김을 자르는 것도 그녀들이다. 나는 온종일 고된 노동에 허리가 꺾이고 머리가 하얗게 센 그녀들 앞에서 삶에 대한 존경과 애달픔을 동시에 느낀다.


그곳에서 내놓는 돈까스도 그녀들을 닮았다. 일본 긴자에서 보듯, 하얗게 차려입은 요리사가 집중을 해서 튀긴 작품은 아니다. 그보다는 전장(戰場)에서 먹는 전투식량의 모양새를 더욱 닮았다. 미디엄이니 웰던이니 구분 없이 바싹 튀겨 튀김옷은 짙은 갈색빛을 띈다.


기름은 갈아낼 틈조차 없으니 오래됐다 새것이다 구분할 여유도 없다. 끓이고 또 끓인 기름은 걸죽한 죽처럼 점도가 짙어지고 그곳에서 건져낸 돈까스는 튀김과 과자 그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종류의 음식 같다.



된장국에 깍두기 한입, 갈색 소스에 찍어먹는 돈까스가 주는 익숙함



된장국으로 속을 다스리고 새콤한 깍두기로 입을 정리하며 돈까스를 갈색 소스에 찍어 먹으면 순식간에 익숙한 편안함이 온 몸을 감돈다. 그 이후는 기계적이며 습관적이고 또 일상적이다. 여느날처럼 돈까스를 씹고 하얀 쌀밥에 소스를 묻혀가며 젓가락으로 입에 퍼 넣는다. 살짝 기름진 등심, 담백하고 연한 안심, 이 집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맛의 비후까스를 그때그때 기분과 동행에 따라 골라 먹는다.


다 먹고 나서 거리로 나오면 도시는 여전히 밝고 어둡다. 이 집의 기름때처럼 짙고 눅눅한 색을 품은 거리를 걸으며 거대한 기계장치인 이 도시를 지탱하는 기름과 그 기름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피로한 하루를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한다. 거대한 강 같은 도로를 만나 생각은 끊기고 나룻배처럼 도시를 부유하는 택시를 잡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멀리 멀리 흘러간다. 무수히 찬란한 빛,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콘크리트 밀림 속으로.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29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