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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카페라테의 유체역학



영미권 국가에서는 카페라테를 일반적으로 라테라 부른다. 이탈리아어로 카페라테는 말 그대로 ‘커피와 우유’가 혼합된 음료라는 뜻이다... 카페라테는 카푸치노, 에스프레소와 함께 오늘날 국제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커피 음료이다.


- 로잔느 산토스 & 다르시 리마, ‘커피가 죄가 되지 않는 101가지 이유’에서


 

 


황금개띠라는 2018년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아침 뉴스를 보니 동해안 일출이 장관이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려고 동해안을 찾은 사람이 70만 명이라는데 맑은 날씨 덕에 멋진 장면을 봤으니 행운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과학카페 첫 주제는 코너 이름에 맞게 커피의 과학을 다뤄볼까 한다.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의 양대산맥 (표현이 너무 거창한가?)은 카푸치노와 라테인데 둘은 우유와 우유거품의 양이 꽤 다르다. 즉 카푸치노는 우유가 적고 거품이 많은 반면 라테는 우유가 많고 거품이 적거나 없다. 필자는 진한 커피맛과 함께 풍성하지만 덧없는 거품 때문에 카푸치노를 즐겨 마시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라테다.


 

 


● 레이어드 라테를 아시나요?


 


보통 라테는 핫이냐 아이스냐에 따라 만드는 순서가 다르다. 뜨거운 라테는 잔에 먼저 에스프레소를 넣고 스팀으로 데운 우유를 붓는다. 적은 양을 먼저 넣고 많은 양을 나중에 넣어야 잘 섞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스라테는 잔에 얼음을 채운 뒤 먼저 찬 우유를 붓고 다음에 에스프레소를 넣는다.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먼저 넣을 경우 얼음이 녹기 때문이다.


 


이렇게 순서를 바꾸면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잘 안 섞이기 마련인데(따라서 아이스라테도 뜨거운 라테 순서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상태가 오히려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에스프레소는 우유보다 밀도가 약간 낮기 때문에 빨대로 젓지 않는 한 덜 섞인 상태가 꽤 오래 가는데 중간에 있는 얼음조각들의 교란 때문에 아지랑이 같은 효과도 난다.


 


그런데 뜨거운 라테의 경우도 잔에 우유를 먼저 넣은 뒤 에스프레소를 넣은 게 있다. 바로 라테 마키아또다. 마키아또(macchiato)는 ‘얼룩’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라테 마키아또는 ‘얼룩진 우유’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전통적인 라테 마키아또는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1/2샷 정도 넣는데 에스프레소가 아래로 퍼져나가며 얼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카페 메뉴에서 아직 이 이름을 본 적이 없는데 에스프레소 원샷이 들어간 라테도 커피 맛이 약하다는 사람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신 카라멜 시럽을 얹은 라테 마키아또인 카라멜 마키아또는 인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영미권에서는 라테 마키아또 대신 ‘레이어드 라테(layered latte)’라는 용어도 쓰이는 것 같다. 라테 마키아또는 시간이 지나면 경계가 흐릿한 두 층으로 분리되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얼룩이 우유와 분리되면서 위층을 이루고 (물론 우유와 꽤 섞인 상태다) 우유가 (에스프레소가 약간 섞여 있다) 아래층을 이룬다.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밀도가 약간 다르기 때문이다. 레이어드 라테는 정통 라테 마키아또와는 달리 에스프레소 양을 제한하지 않는 것 같은데 원샷은 돼야 층이 진 게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 자세히 보니 두 층이 아냐


 


지난해 12월 12일자 ‘뉴욕타임스’ 과학란의 한 기사는 포틀랜드에 사는 밥 프랭크하우저라는 은퇴한 엔지니어가 집에서 레이어드 라테를 만들다 흥미로운 발견을 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어느 날 프랭크하우저는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붓고 난 뒤 잠시 딴 일을 봤는데 그 사이 에스프레소와 우유 사이가 여러 층으로 이뤄진 레이어드 라테가 나온 것이다.


 


유체역학에 따르면 서로 섞이는, 밀도가 다른 두 액체는 시간이 지나면 확산이 일어나 경계가 흐릿해져야 하는데 반대로 오히려 여러 층이 생긴 현상이 이해가 안 된 프랭크하우저는 유체역학 전문가인 프린스턴대 기계항공공학과 하워드 스톤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답을 구했다. 사실 구글에서 ‘layered latte’로 검색해보면 프랭크하우저가 발견한 멀티 레이어드 라테 이미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카페라테의 일종인 카페마키아또. 거품을 낸 우유에 에스프레소 1/2샷을 얹은 라떼로 제조 직후의 에스프레소 얼룩(마끼아또)이 사라지면서 두 층이 생기는 레이어드라테가 된다. - wikipdia 제공


아무튼 이런 현상에 대해 금시초문이었던 스톤 교수는 의아하게 여겨 실험을 해봤고 정말 그런 것으로 확인되자 이를 규명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자들은 실험과 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레이어드 라테 생성 메커니즘을 규명하는데 성공했고 그 내용을 논문으로 정리해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12월 12일자)에 발표했다.


 


먼저 프랭크하우저의 발견을 재현한 실험을 보자. 연구자들은 50도로 데운 따뜻한 우유 150㎖가 담긴 유리잔에 역시 50도로 맞춘 에스프레소 원샷(30㎖)을 부었다. 예상대로 붓는 순간은 에스프레소가 우유에 뒤섞이면서 위쪽에 얼룩 (마키아또)을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경계가 번진 두 층으로 분리됐다. 여기까지는 기존 유체역학 이론에 충실한 현상이다.


 


그런데 2분쯤 지나 혼합물(레이어드 라테)의 온도가 주위 온도인 22도에 가깝게 식으면서 프랭크하우저가 발견한 그 현상이 재현됐다. 즉 맨 위 짙은 갈색에서 아래로 갈수록 연속적으로 갈색이 옅어지며 거의 흰색이 된 상태에서 불연속적으로 여러 단계를 거쳐 옅어지는 상태로 바뀐 것이다. 워드프로세서의 글자색 버튼을 클릭할 때 나타나는 단계별 색상표가 연상되는 현상이다. 이렇게 형성된 다층구조는 20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아래의 단계별 이미지를 보고도 의심스러운 독자는 아래 동영상을 보기 바란다. 물론 조작된 건 아니고 연구자들이 논문에 첨부한 파일이다.


 

레이어드라떼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유리잔에 50도로 데운 우유 150ml가 담긴 유리잔에 에스프레소 원샷(30ml)을 부으면(a) 위쪽에 에스프레소 마키아또가 형성된 뒤(b) 아래로 갈수록 에스프레소 비율이 연속적으로 줄어드는 층이 생긴다. 그런데 약 2분쯤 지나면 경계 부분이 여러 층으로 나뉘고(c) 이 상태가 20분이 지난 뒤에도 유지된다(d). -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


아래는 레이어드라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으로 5배속이다. (출처: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우유와 에스프레소 대신 소금물과 색소를 탄 물로 실험해 보기로 했다. 즉 밀도가 높은 소금물에 파란 색소를 탄 밀도가 낮은 맹물을 부어 레이어드 라테를 재현한 것이다. 이때 용기 측면에서 빛의 흡수 스펙트럼을 찍으면 높이에 따른 혼합비율 (파란색 맹물과 무색 소금물)을 알 수 있으므로 형성되는 층의 구조를 명쾌히 분석할 수 있다.


 


변수를 바꿔가며 무색 소금물에 파란색 맹물을 붓는 실험을 한 결과 연구자들은 여러 층의 레이어드 라테가 나오는 조건을 찾는데 성공했다. 즉 물의 온도가 주위 공기 온도와 달라야 하고 파란색 맹물을 어느 속도 이상으로 부어야만 다층구조가 형성됐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이 ‘이중 확산 대류(double diffusive convection)’의 일종이라고 해석했고 이 이론에 따른 수학모형을 만들어 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현상을 재현하는데도 성공했다.


 

 


● 무질서에서 질서 나와


 


대류란 액체나 기체, 즉 유체에 밀도차가 생겼을 때 중력의 영향으로 유체가 움직이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냄비에 물을 끓이면 불에 가까운 아래쪽 물이 먼저 데워져 밀도가 낮아지면서 위로 올라가고 위의 온도가 낮은, 밀도가 큰 물이 내려오는 대류가 생기며 물이 골고루 데워진다.


 


이중 확산 대류란 이런 밀도차를 유발하는 원인이 두 가지일 때 일어나는 대류다. 즉 물을 끓일 때처럼 온도차가 밀도차를 유발할 수도 있지만 맹물과 소금물처럼 유체의 조성 차이가 밀도차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떤 시스템에 온도차와 밀도차가 함께 작용해 대류가 일어날 때 이를 이중 확산 대류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예로는 해양을 들 수 있는데, 수온의 차이와 염분의 차이로 이중 확산 대류가 일어나면서 복잡한 해류가 발생한다.


 

색소를 탄 맹물(에스프레소 역할)과 소금물(우유 역할)로 다층구조가 나오는 조건을 찾은 결과 밀도가 낮은 액체를 튜입하는 속도가 어느 정도 이상이 돼 두 층의 밀도 기울기가 완만해야 다층구조가 나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는 초속 0.17m로 주입한 경우로 두 층으로 이뤄진 구조가 30분이 지나도 그대로다(a와 b). 가운데는 초속 0.37m로 주입한 경우로 일곱 층으로 이뤄진 다층구조가 됨을 알 수 있다(c와 d). 아래는 이중확산대류로 다층구조가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이미지 데이터로 순환단위 네 층이 표시돼 있다. -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 


연구자들은 층이 여러 개인 레이어드 라테도 이중 확산 대류가 일어난 결과라고 해석했다. 에스프레소를 우유에 부은 뒤 난류(얼룩)가 가라앉아 층이 형성되면서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우유 비율이 늘어나는, 즉 연속적으로 밀도가 커지는 밀도차가 생긴다. 그리고 액체가 식을 때까지 유리잔 안 액체와 밖 공기와의 온도차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레이어드 라테가 나올까?


 


잔에 담긴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넣으면 그 힘으로 우유를 뚫고 들어가다 어느 순간 밀도가 큰 우유의 부력을 받아 하강을 멈추고 출렁거리다 안정화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혼합도 일어나기 때문에 (서로 섞이는 액체이므로) 매끄럽게 분리된 두 층이 아니라 연속적인 농도차를 보이는 중간지대가 생긴다.


 


이 상태에서 유리잔에 가까운 액체는 열을 빼앗기며 온도가 낮아져 밀도가 높아진다. 그 결과 중력의 작용으로 아래로 내려가고 안쪽 액체가 바깥쪽으로 수평 이동해 빈자리를 채운다. 아래로 내려가는 액체는 어느 순간 아래쪽 밀도가 큰 액체의 부력에 막혀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안쪽으로 방향을 틀고 가운데에서 다시 올라간다. 즉 순환대류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대류가 일어나는 단위, 즉 순환단위(circulation cell) 내부에서는 액체가 확산되며 밀도가 균일해진다. 한편 중간지대에서 이런 순환단위(circulation cell)가 여러 개 생기고 그 결과 아래로 갈수록 밀도가 조금씩 증가하는 다층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액체와 주위 기체의 온도차가 없을 경우 애초에 이런 흐름이 시작되지 않으므로 여러 층인 레이어드 라테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편 온도차가 나더라도 에스프레소가 투입되는 속도가 너무 느릴 경우에는 여러 층인 레이어드 라테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직관적으로도 이해가 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물이 든 술잔에 위스키를 살살 따르면 두 액체가 섞이지 않고 두 층을 유지하는데 경계도 비교적 뚜렷하다. 즉 경계 영역의 밀도차가 가파르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조심스럽게 따를수록 경계 영역의 밀도차가 가파르게 된다. 이 경우 온도차로 유리잔에 가까운 액체가 식으며 밀도가 높아져 내려갈 때 얼마 못가 부력으로 막힌다. 그 결과 대류가 일어나지 못하면서 연속적인 밀도차가 비연속적으로 바뀌는 다층구조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에스프레소를 과격하게 부어도 액체가 너무 섞여버려 여러 층의 레이어드 라테가 나오지 못한다.


 


한 액체를 밀도가 더 큰 다른 액체에 그저 따르기만 했을 뿐인데 혼합물이 알아서 밀도가 계단식으로 차이가 나는 다층 구조를 형성했다는 건 그 자체로 놀라운 현상이면서도 이를 응용하면 지금까지 생각하기 어려웠던 물질구조를 쉽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물질을 크기에 따라 분리하기 위해 아가로스 젤을 만들 경우 지금까지는 구멍의 크기 (엄밀히는 아가로스 고분자의 성긴 정도)가 연속적으로 변화되는 유형뿐이었다.


 


그런데 레이어드 라테 현상을 이용하면 구멍 크기가 불연속적으로 바뀌는 계단식 아가로스 젤을 만들 수 있다. 연구자들은 아가로스를 4% 함유한 용액을 밀도가 높은 소금물에 부어 레이어드 액체를 만든 뒤 이를 식혀 굳힌 멀티레이어드 아가로스 젤을 얻었다. 연구자들은 이 기술이 식품이나 조직공학 등 다양한 연성물질(soft material) 분야에 응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TIP


집에 에스프레소머신이 없는 필자는 드립커피로 레이어드 라테 만들기에 도전해봤는데 세 번 만에 ‘어설프게’ 성공했다. 진하게 내렸다고 해도 에스프레소보다는 훨씬 옅기 때문에 층의 색 차이도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의 실패는 비커에서 우유 표면으로 바로 커피를 부어 전체적으로 너무 많이 섞여버린 게 원인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동영상처럼 숟가락을 잔 안쪽에 대고 여기에 살살 부어 흘러내리게 했다. 우유나 커피의 온도가 논문보다 좀 더 높아서인지 10분쯤 지나서야 층이 분명히 보였다. 길고 좁은 유리잔에 우유를 넣고 에스프레소를 쓴다면 어렵지 않게 필자가 만든 것보다 훨씬 그럴듯한 레이어드 라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0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