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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규칙이나 규정에 따른 유연성

사건과 사고는 늘 우리 곁에 있다. 누군가의 예상치 못한 말에 하루 종일 가슴이 답답해 일이 평상시처럼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아침에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두고 출근을 하면 하루 스케줄이 뒤엉키기도 한다. 내가 걷는 보도 블록에 차량이 뛰어들지 말라는 법이 없고, 무심코 물어뜯은 손톱에 생살이 같이 뜯겨 나와 퉁퉁 붓는 바람에 평소 타자 실력의 60%밖에 발휘하지 못할 때도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을 때 우리는 임기응변을 발휘한다. 혹은 재치라고도 한다. 잘 될 때가 있고, 잘 안 될 때가 있다. 그런데 잘 되건 안 되건, 임기응변이란 게 갑자기 신의 계시처럼 하늘에서 아무런 맥락 없이 뚝 떨어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 재치란 것도 평소에 쌓아둔 것들에서 빌려 쓰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날카로운 말로 하루 종일 가슴 답답하게 만들었다면, ‘당한 만큼 갚아준다’라는 생각으로 살던 사람은 그 자리에서 맞받아치면서 상대 마음에도 ‘정당방위’ 생채기를 낸다. 실제로 어떤 말싸움 잘 하는 후배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늘 싸울거리를 적어놓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침에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두고 회사로 가는 아빠는 아내를 평소 깊이 신뢰하거나, 애들 아픈 거 병원가면 다 낫기 마련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금방 포기하는 경험이 쌓여온 사람일 수도 있다.

차가 갑자기 뛰어들 때 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운 좋게 그 순간에 뛰고 있던 사람일 수도 있지만 평소 반사 신경을 단련시켜온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손이 아파 타자가 평소보다 느려져도 마감이 목숨보다 중요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해낸다. 결국 평소의 생각과 사고방식, 혹은 지켜오던 규칙이 순간의 결정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당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매우 둔감하면서 현실 부정에 능숙하거나, 평소 최악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 행동지침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각자의 그런 방식이 삶의 규칙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어렵거나 공격성 넘치는 질문들로 찔러보면 구분이 가능하다.

상황 모면만을 위한 임기응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질문 몇 번 답하다가 자기모순에 당착한다. 그러다 벽에 부딪히면 ‘내 감정/입장을 존중해 줘’가 나온다. 이럴 땐 이래서 다른 것이고, 저럴 땐 저래서 다른 것이라는, 아무도 납득할 수 없는 변명에 자기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반대로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정한 ‘누구나 동의할 만한’ 규칙을 지켜온 사람이라면 일관적인 답을 낸다. 고집이 느껴질지언정 ‘지 편할 대로 말하고 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전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반드시 실패하고, 후자는 문제를 해결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평소 어떤 규칙을 어떤 태도로 지켜왔느냐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큰 힘을 발휘한다.


다시 말하면, 평소 지켜왔던 규칙에 근거하지 않은 해결책은 임시방편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내가 유독 고집스럽게 지키는 규칙이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 정체성으로부터 나온 답이 가장 내가 나답게, 편안히 유지할 수 있는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 봉착해보면 느끼지만, 흔히 말하는 ‘유연성’은 오히려 나를 가장 얽매이게 할 것 같은 ‘규칙 지키기’로부터 나온다.

누구나 규칙 아래 산다. 자기만의 나라를 건립하여 사는 사람이라도 자연의 법칙에 지배를 받고, 법 없이 살만한 사람들이라면 보통 자신만의 규칙을 정하여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며 산다. 규칙이나 규정은 누군가 혹은 뭔가를 옥죄는 느낌이지만, 그와 정확히 반대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련하게라도 뭔가를 잘 지켜내 본 사람들이 내면의 자유로움을 누릴 때를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목격한다. 예를 들면, 숙제나 할 일과 같은 ‘규칙’을 지킨 후에 놀기 시작하는 사람. 이들은 먼저 놀기부터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자기 시간을 즐기더라.



[출처 :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