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출근하기가 괴롭다. 빗물에 신발은 축축, 바지도 축축, 온몸이 축축해진 채 지옥철에 몸을 싣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인 채 출근길에 오른다.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에너지는 벌써 바닥을 치는 기분이다. 이놈의 장마는 언제쯤 끝나려나. 애꿎은 하늘만 원망한다.
이 모든 게 전경수 오피스튜터 대표에겐 낯설다. 그에겐 장마철 출근도, 지옥철도 남의 얘기다. 집 근처 커피숍에서 근무하고, 창가에서 커피향을 맡으며 비 오는 모습을 구경한다. 컨버터블 노트북을 꺼내 사내 메신저와 e메일로 직원들과 소통한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볼 수 있는 ‘스마트워크’를 도입해 회사를 운영한 덕이다.
“지난 7월4일 오피스튜터는 삼성동 사무실을 정리하고 완벽한 가상 사무실 환경으로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서함 주소는 광화문으로 옮기고, 직원들 모두 재택근무를 합니다. 정해진 근무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그러나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근무할 수 있습니다.”
2003년부터 스마트워킹 준비 시작
오피스튜터는 오피스 관련 프로그램 콘텐츠 개발과 교육,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전경수 대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정한 오피스 전문가(MVP)로, 사용자가 좀 더 원활하게 오피스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게 돕고자 1999년 회사를 세웠다. 오피스튜터가 운영하는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오피스 제품 무료 강좌 보거나 마이크로소프트 국제 자격증(MOUS) 취득 과정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전경수 대표는 직접 오피스 솔루션을 사용한 뒤 그 경험을 사용자와 나눈다. 다른 사람에게 사용법을 알려주려면, 자신이 직접 그 솔루션을 사용해 배우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오피스 솔루션으로 스마트워킹을 시작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오피스튜터가 지금과 같은 스마트워킹 환경을 도입하기까지 약 3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03년 쉐어포인트 같은 오피스 솔루션을 도입해 활용한 시기까지 따지면, 10년 가까이 스마트워킹을 준비했다.
사업 초창기엔 전경수 대표도 여느 사무실처럼 회사를 꾸렸다.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고 중간에 일이 생기면 외근을 나가는, 그런 보통 회사였다. 모여서 회의를 하고 일정을 공유했다. 중요한 회사 자료는 파일 서버에 올렸다. 그러다가 2003년 쉐어포인트가 나오면서 회사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테크노마트 사무실 시절, 방화벽 서버, 익스체인지 서버, 쉐어포인트 서버 총 6대를 구축해 운영했습니다. 이때부터 모든 직원이 웹으로 자신의 일정과 데이터를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쉐어포인트는 간단히 말해 다음이나 네이버 카페 같은 걸 만들 수 있는 솔루션이다. 게시판, 문서관리, 일정공유, 연락처가 모두 들어 있는 서버용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된다. 쉐어포인트 도입 이전까지만 해도 오피스튜터는 파일 서버에 따로 파일을 올려 공유하고, 아웃룩을 통해 서로 e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는 정도였다. 웹으로 일정을 공유하는 문화가 절정을 맞이한 건 2010년 ‘오피스365′를 도입하면서부터다. 서로의 일정과 업무를 모두 웹으로 소화하기 시작했다.
“2008년엔 BPOS를, 2010년엔 오피스365를 도입했습니다. 클라우드 오피스 개념이 나오면서 스마트워킹이란 얘기도 많이 나오더군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스마트워킹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내 출산을 앞둔 직원, 육아 중인 여직원을 보듬기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피스튜터는 직원이 총 4명, 이 중 여직원이 3명이다. 육아휴직 시 직원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실했다.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가야 하거나,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융통성 있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아이를 낳겠다고 회사를 그만두면, 회사 입장에선 손해입니다. 그 경험을 어디 가서 돈을 주고 사올 순 없잖아요. 스마트워킹을 도입한 뒤 구성원들이 제일 반긴 건 탄력적인 근무 시간이었어요. 출근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까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아이도 안정적으로 돌볼 수 있게 됐지요.”
현재 오피스튜터 직원은 아웃룩을 통해 일정을 공유하고 있다. 일주일에 단 한 번, 월요일 오전에 모여 점심을 함께하면서 오프라인 회의를 한다. 쉐어포인트 온라인 문서 라이브러리에 올려놓은 MS 원노트 문서를 동기화해 서로 사업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다이나믹 고객관계관리(CRM)에 올려둔 자료로는 영업 매출과 실적을 살핀다. 회의 시간이 끝나면 각자의 업무로 돌아간다. 회의 때 나누지 못한 이야기는 페이스북을 통해 주고받는다. 그 외에도 전화와 메신저를 활용하면서 서로 활발하게 의사소통한다.
신뢰가 바탕이 돼야 성공한다
지금이야 결과가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피스튜터 직원들이 처음부터 모두 순조롭게 스마트워킹을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전경수 대표조차도 초창기 스마트워킹을 사내 도입할 땐 우왕좌왕했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중간에 직원들과 일대일로 상담하는 시간도 자주 가졌다.
“처음엔 최신 스마트폰과 PC를 나눠줬지요. 당시만 해도 월 10만원 정도 요금을 내면, 데이터와 음성통화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었거든요. 이렇게 사무실 전화를 착신전환해서 외부에서 근무하는 식으로 스마트워킹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근무 환경을 직원 모두가 반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경수 대표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직원이 보이지 않자, 답답함을 느꼈다고 할까. 업무시간인 9~6시를 지켜서 근무를 하고 있는 건지,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직원들도 나름대로 부담이 늘었다. 예전엔 9시부터 6시까지 자리를 지키면 ‘일을 마쳤다’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재택근무가 시작되자 개인 시간과 근무 시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온종일 일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서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스마트워킹 과도기 때 가장 많이 든 생각입니다. 사무실로 출퇴근하지 않는다고 해서 직원들이 일을 안 하는 게 아닌데, 처음엔 믿음이 부족했지요. 메신저를 보면서 온라인으로 뜨지 않으면 ‘왜 대체 안 들어오나’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은 믿습니다. 제가 믿지 않으면, 스마트워킹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전경수 대표는 스마트워킹의 조건으로 무엇보다 믿음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실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로선 스마트워킹을 방해하는 요소가 참 많다. 매출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거나 실적이 좋지 않으면 직원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다. 회사에 출근해 얘기를 나누거나 사무실에 모여앉아 회의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아 위기를 타개할 것만 같다. 이 기분에 대부분 대표가 스마트워킹 도입 후 다시 기존 업무 환경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경수 대표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오히려 직원들과 일대일 상담을 통해 어떻게 하면 스마트워킹을 사내 더 잘 도입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매니저가 감시하고 구속하는 환경에선 제대로 된 스마트환경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피스튜터는 직원 개인이 달성해야 할 성과 목표가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간도 개인이 자율적으로 활용한다. 그 결과 업무 몰입도가 높아져 생산성이 과거보다 향상됐다.
“게을리 일하면서 월급만 받으려고 회사에 출근하는 직원은 없다고 믿습니다. 다들 열심히 일하고, 그만큼 대가를 받으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되니, 눈앞에 직원이 보이지 않아도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군요.”
근무 시간과 개인 시간 구분하는 적응기 필요해
오피스튜터 직원 반응은 어떨까. 아이 엄마인 이희진 오피스튜터 이사는 육아를 하면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최적의 근무 환경이 스마트워크인 듯 해요. 시간 조정만 잘하면 원활하게 업무를 하면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거든요. 혼자 일하다 보니 해이해질 때가 오기도 하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자기 관리를 하면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권은정 오피스튜터 팀장은 집에서 스마트워킹 적응 기간을 거쳤다. 아무래도 집에서 일한다고 하면 산만해지기 쉽다. 조금만 걸어가면 보이는 침대, 냉장고, TV가 곧 유혹 대상이다. 권 팀장은 가족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 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철저하게 혼자서 일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24시간 일만 하는 것 같았지요. 회사에 있으면 6시 퇴근하면 끝이잖아요.” 권은정 팀장은 자신이 그날 끝내야 할 일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일하면서 스마트워킹에 적응했다. “제가 일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는, 성과로 제가 일하고 있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말과 같아요.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스스로를 바싹 죄며 일하게 되더군요. 결국 스마트워킹도 적응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이하영 오피스튜터 팀장은 협업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지금은 각자의 업무가 명확해지고, 어떤 업무를 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서 괜찮지요. 처음엔 같이 일하는 데 굉장히 더디게 진행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의사소통하는 것과 글이나 전화로만 의사소통하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다. e메일이나 정형화된 형식의 문서로 얘기하는 과정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작은 조직이면 빨리 스마트워킹이 될지 몰라요. 그런데 대기업 같은 큰 조직이면 스마트워킹을 도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출처 : http://www.bloter.net/archives/158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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