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 & Info/Trip

저가항공 '푸껫라인' 딜레마

'푸껫' 하면 무엇이 연상될까. 태국 최대의 섬, 한국인이 선호하는 최고의 인기 휴양지,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의 천국 등 수식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항공산업 측면에서 보면 푸껫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편도 6시간30분이 걸리는 푸껫은 바로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의 국제선 노선 중 가장 장거리 목적지다. 국내 LCC들이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라는 의미다.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이곳까지 나래를 편 국내 LCC들이 '푸껫 라인'을 넘어야 할지 말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이 선을 넘는다는 것은 곧 대형기를 도입해 본격적인 장거리 노선에 취항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LCC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는 셈이다.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2005년 8월 한성항공(티웨이항공의 전신)의 첫 취항 이후 8년 만에 국내 LCC 업계는 국내선 항공노선의 절반을 책임질 정도로 성장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1분기 5개 LCC들의 국내선 점유율은 47%에 달한다. 국제선 점유율도 9.4%로 올라서며 10% 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은 지난해 2000억~3000억원대의 매출액과 40억~14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스타항공과 티웨이항공도 흑자 전환을 노리고 있다.

미·유럽과 달리 쓸 만한 단거리 노선 적어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공업계 일각에서는 LCC 업계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평가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국내 LCC들은 그동안 철저하게 5시간 이내의 단거리 비행을 지향했다. 작은 비행기를 최대한 여러 번 운항하는 전략이다. 국내 LCC들의 보유 항공기도 이런 전략에 적합한 180석 안팎의 보잉737과 에어버스320·321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 항공기는 하루 평균 12시간 운용한다. 비행 시간이 편도 2시간 안팎인 일본 등의 경우 한 비행기를 하루에 왕복으로 세 번까지 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올 4월 이스타항공의 푸껫 취항 전까지 5개 LCC의 국제선 취항지는 모두 당일 왕복이 가능한 편도 5시간대를 넘지 않는 지역들이었다. 방콕·코타키나발루·괌 등이 한계선이었고 중국과 일본·홍콩 등 1~3시간대 노선이 가장 많았다.

 물론 단거리만으로 먹고살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표적 LCC인 미국 사우스웨스트는 대부분의 노선이 미국 국내선이다. 유럽의 이지젯이나 라이언에어의 취항지들도 유럽 대륙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사정이 좀 다르다. 미국이나 유럽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궁무진한 항공노선과 수요가 있지만 극동지역에 자리 잡은 국내 LCC에는 쓸 만한 단거리 노선이 많지가 않다. 일본이나 동남아 지역은 거의 포화 상태다. 중국 역시 많은 노선이 개척돼 있는 데다 항공자유화 지역이 아니라 진입 장벽도 높다.

설상가상으로 한정된 영역을 놓고 5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방콕·홍콩 등 인기 노선의 경우 몇 개 LCC가 중복 취항하고 있는 실정이다. 치열한 경쟁은 곧 경쟁적 가격 인하와 영업이익의 하락을 의미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장거리 노선 취항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겉보기에는 LCC 업황이 좋아 보여도 현재 구도가 계속 유지되면 성장의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며 "이르면 2년 내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저가항공, 싱가포르 등 '알짜' 선점

 외국계 LCC들이 '알짜 노선' 선점에 나섰다는 사실도 압박 요인이다. 아시아 최대 LCC인 에어아시아는 15일 부산에서 토니 에르난데스 회장과 박지성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부산~쿠알라룸푸르 노선 취항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이 항공사는 이미 2010년부터 인천~쿠알라룸푸르 노선 운항을 시작하면서 시장을 선점했다.

싱가포르항공의 자회사인 스쿠트항공은 지난달 12일부터 타이베이 경유 형식으로 인천~싱가로프 노선 운항을 시작했다.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 모두 새로운 황금노선이지만 6~7시간이 소요되는 '푸껫 라인' 밖의 지역이라 한국 LCC는 취항하지 못하고 있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 방문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해외 LCC들의 추가 취항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라이온항공의 루스디 키라나(50) 사장은 2011년에 일찌감치 "일본과 한국 등으로 운항을 늘릴 것"이라고 선포했다. 운항 시간이 최소 9시간 이상인 호주~일본 노선에 비행기를 띄우고 있는 호주 젯스타의 한국 진출 가능성도 충분하다.

 문제는 장거리 진출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멀리 가고, 많이 태울 수 있는 큰 비행기가 필요하다. 에어아시아와 스쿠트항공은 한국 노선에 중대형 항공기인 에어버스330과 보잉777을 투입하고 있다. 둘 다 300명 이상 태우고 1만㎞ 이상을 날아갈 수 있다.

하지만 '영세업자' 수준인 한국 LCC가 1대당 1000억원을 쉽게 넘어가는 중대형 항공기를 구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중고 구매나 리스의 경우에도 비용 부담은 엄청나다. 항공기를 하루에 한 번밖에 운용할 수 없고 연료비 등 각종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점도 부담이다.

장거리 진출 땐 밥·짐 유료화해야 경쟁력

물론 장기적으로 장거리 노선 진출이 필요하다는 데에 이견은 없다. 선두주자들은 내부적으로 이미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원(55) 진에어 대표는 4월 기자간담회에서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도 "중국 덕택에 당분간은 단거리에서도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장거리 진출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장거리 노선 진출 시 LCC로서의 정체성을 더 분명히 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목소리도 나온다. 외국 LCC들은 기내식은 물론, 물도 돈을 받고 판다. 짐 값도 받고 항공권의 공항 구매 시에도 수수료를 물린다. 반면 국내 LCC들은 다소 어중간한 상태다. 기내식을 무료 제공하는 곳이 많고 개인 수하물도 15~20㎏ 정도까지는 무료로 실어준다. 항공 승객들이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항공요금도 LCC라고 하기에는 다소 높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달 여행비교사이트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2%가 "항공요금이 낮아진다면 유료 기내식에 동의할 의사가 있다"고 대답하는 등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 LCC 관계자는 "국내외 LCC 이용 경험이 늘어나면서 승객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며 "여러 측면에서 장거리 노선 운용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 kailasjoongang.co.kr >



[출처 : http://media.daum.net/economic/newsview?newsid=20130717002805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