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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팍스 아메리카나의 재발견] 본격적으로 열린 ‘왕’의 시대(3)

남북전쟁을 마친 미국은 잠시 늦췄던 눈부신 성장을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광활한 대륙과 도전정신, 여기에 부합되는 대내외적인 요인들이 겹치며 본격적인 고성장 시대를 만끽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19세기 말 시장경제체제의 강화로 독점자본현상이 고착화되며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시작했다. 왕의 시대였다.
           


왕의 시대

19세기 후반 2차 산업혁명이 미국경제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후 특허권의 등장으로 아이디어가 곧 돈으로 여겨지며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유럽에서 이식된 합리주의와 실용과학이 신대륙의 정서와 맞아떨어지며 폭주열차에 올라탄 셈이다. 거칠 것이 없었다.

여기에 20세기 초까지 미국 정부는 독과점 현상을 시장의 순리로 여기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는’ 경제정책은 대기업들의 득세를 인정하고 자본이 독점화되는 현상을 빠르게 불러왔으며, 결국 세상은 ‘왕’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발명‘왕’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다. 축음기와 전구를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유럽보다 강화된 특허권을 인정하는 미국에서 소위 날개를 달았다. 1879년 11월 4일 미국 특허청에 백열전구에 관한 특허권을 제출하며 “나는 나 이전의 마지막 사람이 멈추고 남겨 놓은것에서 출발한다”는 명언을 남긴 그는, 어쩌면 발명가라기보다 사업가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에디슨은 미국의 산업체질을 바꿔버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전구, 영사기, 축음기, 냉장고 등 현존하는 산업의 근간을 모조리 변신시켰다. 이후 굴지의 기업 GE를 설립하고 말 그대로 발명왕으로 군림했다. 다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전무후무한 발명가로 칭송받고 있지만 타인의 기술을 ‘훔쳤다’는 비판도 받는다. 다만 그의 등장으로 미국의 산업이, 경제가 변한 것은 분명하다.
           
에디슨을 논하며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J. P 모건(John Pierpont Morgan)이다. 금융업의 거부였던 주니어스 모건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과 미국에서 최초의 투자은행을 설립한 인물이다. 다만 그는 단순한 투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에디슨과 협력해 ‘리스크’를 감내하는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 경제사에 이름을 남긴다.

J. P 모건의 등장은 산업의 발전과 함께 태동한 금융세력이 점점 일반적인 경제 인프라에 녹아드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의 ‘왕’이다. 물론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에디슨과 J. P 모건의 앞에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이 흥미진진한 전쟁은 21세기 기존산업을 파괴하고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는 앨런 머스크의 등장으로 연결되는 ‘스타워즈’의 확장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철강‘왕’ 카네기(Andrew Carnegie)도 빼놓을 수 없다. 1875년 철강의 대량생산에 성공하며 미국을 세계 유례가 없는 빌딩의 숲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902년 뉴욕 맨하튼에만 65개의 고층건물이 들어설 정도였다. 동시에 높은 빌딩에 오르기 위한 엘리베이터 사업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철강왕의 명성은 높아져만 갔다.

J. P모건과도 묘하게 엮이는 인물이다.

석유‘왕’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도 있다. 에디슨과 카네기가 각각 전기와 철강으로 세상을 바꿀 무렵 그는 유전을 독점하고 유통망을 틀어쥐는 독점적 사업전개로 승부를 봤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경쟁사들을 적대적으로 인수합병했으며 그의 회사는 미국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록펠러는 “한 송이의 장미를 얻기 위해 잔가지를 잘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독점은 필연이었고, 당연한 사업의 방식이었다. 어떤 기독교인은 그의 재산을 두고 "아담이 낙원에서 추방된 직후부터 매일 500달러씩 저축을 해도 록펠러만큼 재산을 모으지 못할 것”이라는 명언 아닌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고속성장의 그림자

에디슨, J. P 모건, 카네기, 록펠러로 대표되는 ‘왕’들의 시대는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경제의 고속성장에 따른 정책적 완고함이다. 한국의 개발독재와 비슷하다. 국내 대기업들이 개발독재시절 전략적인 지원을 받아 몸집을 불렸던 것처럼, 당시의 ‘왕’들도 경제성장에만 방점을 찍은 정부의 의도적인 방임에 힘입어 해당 영역의 지배자로 통용됐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독점과 자본의 밀집은 심해졌다.

당연히 반발이 터져나왔다. 이들의 폐쇄적 생태계에 갇힌 도시 빈민들이 정치적 해법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혔기 때문이다. 1900년부터 시작된 진보운동이 대표적이다. 도시 빈민들은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낮은 임금, 기업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며, 정부의 자유방임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미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왕들이 지배하는 공포의 영지일 뿐이었다.

1901년 대통령에 취임한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독점기업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언론들은 앞다투어 ‘왕들의 야만’을 그려냈고, 경제제국은 빠르게 몰락했다.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무수한 회사로 분리되고 그의 이름을 딴 자선재단이 우후죽순 생겨난 이유다.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왕의 시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더불어 21세기에 맞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당시의 미국과 우리의 현재를 생각없이 동일하게 투영하는 것은 위험하다. 현재의 우리는 ‘왕의 시대’와 ‘새로운 권력의 시대’를 동시에 맛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상황은 비슷하지만 스타트업으로 대표되는 각개약진의 기회도 여전하다. 이를 바탕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O2O가 모바일 혁명을 기치로 시장의 진입장벽도 낮추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왕’들의 불법이 판을 치지만, 현재의 우리는 왕들의 이익과 각개약진의 새로운 세력이 꿈꾸는 비전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 2차 산업혁명 당시의 미국은 대외적인 식민지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자원을 강탈하는 식민지가 아니라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식민지의 등장이다.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키고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구입한 후 1898년 쿠바에서 메인호 사건을 일으켰다. 내침김에 필리핀과 괌까지 손에 넣었으며 아시아 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1871년 조선 강화도에 침범했던 신미양요(辛未洋擾)도 시기적으로는 다소 늦지만, 비슷한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당시의 미국은 현재의 우리와 달리 자신들의 상품을 유통시킬 수 있는 곳을 ‘야만적인 폭력’으로 빼앗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보는, 제국주의 시대의 주역들이 공동으로 연출한 전 세계적 파국의 서막이었다.




[출처 :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77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