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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팍스 아메리카나의 재발견] 미국의 탄생, 그리고 비상(1)

최근 글로벌 경제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ICT 기술의 혁명적 등장으로 우리의 고정관념이 거칠게 흔들리는 상황이다. 여기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관이 급속도로 흔들리며 중국 및 인도,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대두가 모두의 이목을 끌고 있다. ‘중국을 알아야 한다’와 ‘동남아시아를 주목하라’라는 주문이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2016년 병신년을 시작하며 냉정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미국의 시대는 끝났는가? 이견의 여지가 있는 의문이다. 하지만 막강한 에너지 권력과 정치력, 군사력, 여기에 바탕을 둔 경제력이 여전히 전 세계에 팍스 아메리카나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을 예찬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경쟁적으로 중국의 가능성과 인도의 잠재력 등에 집중하지 말고, 여전한 강자인 미국도 의식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는가? 끝없는 자문을 거듭해야 한다.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미국의 탄생

미국, 즉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의 역사는 짧지만 아메리카의 역사는 길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인들이 건너오기 전부터 인디언(옳은 표현은 아니지만)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미국을 논하려면 유럽인들의 진출부터 시작해야 한다.

1492년 스페인에서 인도를 찾아 항해를 시작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그곳이 인도의 일부라고 결론지었고, 이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인디언으로 통칭되었다. 다만 유럽의 아메리카 개척이 콜럼버스의 진출을 기점으로 빠르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유럽의 질병이 아메리카를 덮치며 질병이라는 재앙이 신대륙을 휘감아 인디언들이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근 100년간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지배층과의 밀월에 바탕을 둔 노예무역이 활성화되며 상황이 일변했다. 이제 신대륙으로 끌어갈 노예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를 주도하며 속속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17세기 유럽의 다른 열강들도 합류하며 더욱 달구어졌다. 그 과정에서 인디언들의 피해는 심각했다. 백미는 영국이었다. 활발한 대외교역으로 대영제국의 기틀을 세운 영국은 현재의 버지니아주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개척활동에 나서며 야만적인 인디언 살육도 병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1620년 한 척의 배가 아메리카로 향했다. 100명의 청교도인들이 탄 메이플라워가 종교의 자유를 위해 미지의 신대륙으로 항해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620년 11월, 메이플라워는 천신만고 끝에 메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이후 18세기에 이르면 미국 동쪽 대서양 연안에는 영국의 식민지 13개가 건설된다.
           


다양성으로 꿈틀거린 창조경제

미국으로 넘어온 유럽인들은 대부분 구대륙을 휘감고 있던 전제정치를 피해 자신의 운명을 대서양 너머로 걸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국적도, 나이도, 종교도, 인종도 달랐으며 자유분방한 아웃사이더였다. 물론 영국 식민지에 거주하던 이들은 영국의 통치를 인정했으나, 그들은 구대륙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자신들의 매력을 신대륙에서 가감 없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본국인 영국이 영토를 중심으로 하는 지배를 펼치기보다, 사실상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중요한 이유로 작동했다.

이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대한민국은 창조경제를 국정철학으로 삼아 다양하고 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전국에 흩어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연계해 상생의 경영을 시도하는 한편, 다양한 정책으로 ‘붐업’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비단 스타트업을 떠나 대한민국 전체 경제에는 아직도 ‘정부 주도의 발전’이라는 환상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과도한 규제로 귀결되어 오히려 창조경제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창조경제의 선봉인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의전 전문 거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생기발랄한 스타트업은 존재하지만 이들의 열정을 표출시킬 ‘통로’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 법적인 이유로 실제 서비스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버스판 우버, 콜버스가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기존 규제에 가로막혀 난관에 부딪친 대목을 의미심장하게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신대륙의 스타트업은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영국은 지리상의 이유로 자치권을 부여했으며, 결과야 어떻든 새로운 권력의 시작을 알렸다.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독립해 세계의 권력이 되기 위해서는 그 다양성을, 강점을 가감 없이 걷어내야 한다는 결론이다. 스타트업 독립? 당시의 영국과는 다르게 한국은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그냥 중동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 문제가 아니다.
           


위기의 연속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며 영국은 말 그대로 ‘제국’을 건설했다. 이 지점에서 신대륙 판 창조경제는 자연스럽게 독립의 열망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역사책에는 과도한 세금이 원인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당시 식민지는 본국과 비교해 매우 적은 세금을 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립에 대한 열망은 영국이 식민지 출신 의회 대표 한 명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편협함에서 탄생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후 잦은 전쟁으로 국고를 탕진한 영국과, 자유로운 독립을 원한 식민지 사람들은 보스턴 차 사건을 기점으로 갈등이 폭발하게 된다. 결국 1775년 4월 렉싱턴에서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의 전투가 시작되며 독립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열강의 개입과 민병대의 눈부신 활약으로 승리는 민병대의 몫으로 끝난다. 1776년 7월 4일 식민지 대표들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미합중국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시련은 이제 시작이었다.(계속)



[출처 :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7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