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산업적 체질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은 신대륙에 모인 자유분방한 사람들로 열정 하나에만 의지해 영국으로의 독립을 이뤄내고 빠르게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할 수 있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격렬했던 부흥
미국은 독립 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중심으로 13개주의 통합과 안정을 꾀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미국은 부흥의 역사를 맞이하게 됐다. 통일 미국은 하나의 시장, 하나의 제도를 바탕으로 영국에서 시작된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경제적인 부흥을 이뤄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은행이 탄생하고 영토도 비약적으로 넓어졌다. 유럽의 이민자들은 속속 국가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동원되었으며,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빠른 산업화도 일어났다. 먼저 독립전쟁이 끝나고 내부의 문제에 집중할 여지가 생겼다는 부분과 유럽에서의 노동력 유입, 풍부한 지하자원 등으로 그 발판이 마련된 상태에서 1807년 로버트 풀턴이 최초의 증기기관선, 클러먼트 호를 만들며 남부의 농산물과 북부의 공산품을 싼값에 대량으로 수송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유럽보다 수십년 늦었지만 빠르게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이다. 기존의 체제를 뒤엎지 않아도 된다는 부담도 물론 큰 역할을 차지했다.
여기에서 노동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초 미국의 산업화 속도는 매우 더뎠는데, 그 중요한 이유가 바로 노동력의 부재였다. 일을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공장의 규모는 커지지 않았으며, 지역별로 소규모의 가내수공업만 활성화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아일랜드 대기근을 기점으로 엄청나게 많은 유럽 이민자들이 도착하며 상황은 반전됐다. 1년에 수십만명에 달하는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자신의 기술력과 노동력을 미국의 발전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열악한 노동환경은 구대륙이나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신대륙은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이 존재했으며, 각각의 열망은 모두 일치했다. 부정적인 뉘앙스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대량생산의 기틀이 마련되는 법이다.
골드러시도 미국의 경제사를 논할 때 매우 중요한 포인트로 여겨진다. 1848년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다량의 금이 발견되자 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향했기 때문이다. 골드러시 이전 캘리포니아의 인구는 1만5000명에 불과했지만, 1852년에는 무려 25만명으로 불어날 지경이었다.
골드러시가 미국 경제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매우 많지만, 먼저 이를 바탕으로 서부개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869년 대륙횡단철도가 만들어진 배경을 살피면 명확하지만, 골드러시는 새로운 땅을 정복하려는 열망과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며 미국이라는 국가의 외연적 확장을 거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또 도전정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적용되는 계기였다는 부분도 중요하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가 골드러시가 시작된 새크라멘토 계곡 이름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미국처럼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대박’은 없어도 ICT 발전을 기치로 여전히 원대한 꿈을 꿀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금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라는 점이 새롭다. 미국의 도전정신을 현재의 한국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여기에 기업가 정신이라는 세련된 마인드가 접목되면, 나름의 창조적인 생태계 구축도 허황된 꿈은 아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당시 미국이 섬유와 철강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 대목도 극적이다.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몰려오는 이민자를 수용하는 상황에서 당시 세계 무역의 중심이던 섬유와 철강의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올라간 대목은 말 그대로 신의 축복이었다. 신생국 미국이 세계적인 열강의 반열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윌리엄 켈리가 압축 공기를 이용해 광석에서 철을 쉽게 분리해내는 방법을 발명하고 제련 단가가 크게 내려갔던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에서 빠른 산업화의 반작용으로 도시빈민의 증가, 노사대립 등의 폐단도 동시에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겪었던 성장통이다. 다만 미국의 경우 이러한 폐단이 불거지기 전, 패권국으로의 비상을 수십 년 미루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남북전쟁의 발발
영국과의 전쟁 후 독립을 성취한 미국은 ‘신의 도움’과 ‘인간의 노력’으로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해 나갔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힘은 아직 미약했으며 특히 남과 북은 따로 운영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 간극이 심했다. 북부는 공업과 상업이 발전하며 미국판 산업혁명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지만 남부에서는 농장주가 노예를 지배하며 경제를 운용하는 경제모델이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남부에서 성행했던 목화산업의 핵심은 ‘노예’였다. 최초 남부 농장주들은 담배사업을 벌였으나 그 한계가 뚜렷했고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면화로 그 영역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엘리 휘트니가 조면기를 발명해 목화산업에 불을 지폈으며, 이후 남부는 노예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사실상 면화왕국으로 발돋움했다. 면화는 곧 노예. 북부와 남부는 이렇게 달랐다.
이 지점에서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북부가 관세를 높게 매기자고 주장한 반면, 남부는 이에 반대했다. 노동력에 대한 이견도 컸다. 북부는 양질의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노예제도를 폐지하자는 입장이었지만 남부 입장에서는 절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논쟁에 ‘휴머니즘’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체제경쟁에 돌입한 1950년대 냉전과 닮았다. 냉정한 경제의 법칙을 또 한 번 느끼는 대목이다.
물론 그 사이에 타협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820년대 이후 서부개척과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노예제도를 둘러싼 갈등이 수면 아래로 내려간 일도 있었으며, 헨리 클레이 상원의원이 탈출 노예법 개정을 통해 연방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주와, 기존 주의 갈등을 봉합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1856년 5월 로렌스에서 노예주의자와 반노예주의자들의 충돌이 벌어졌고, 흑인 노예 드레드 르콧 사태는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이후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18개 자유주의 압도적인 지지로 한 남자가 선출된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등장이다. 남방주는 연방 탈퇴를 선언했고 링컨은 이를 내란으로 규정했다. 1861년 4월 12일 새벽 4시 30분, 남부 연합군이 섬터 요새를 공격하며 남북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의 끝과 링컨의 재발견
미국의 세계무대 데뷔를 늦춘 남북전쟁은 1863년 게티스버그 전쟁을 기점으로 북군이 승리한다. 전쟁 초기에는 노련한 장군을 내세운 남부가 유리했으나 막강한 공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흑인들의 지지까지 얻어낸 북군이 판세를 뒤집었다. 이후 전쟁은 4년 만에 끝났고, 링컨은 노예제도를 폐지하게 된다. 역사는 남북전쟁을 노예제도를 둘러싼 선악의 대립으로 증언하지만, 여기에는 냉정한 ‘게임의 법칙’만 있었다. 흑인 노예가 사라진 곳에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으며,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 처했던 것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흑인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도 먼 훗날의 일이었다.
여기에서 링컨은 매우 중요한 법을 발표하게 된다. 바로 홈스테드 법(Homestead Act), 또는 자영 농지법이다. 1862년 제정됐으며 미국 서부의 미개발 토지 160에이커를 5년간 경작하면 그 땅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21세 이상의 성인 중 흑인 노예를 포함해 미국에 적대적인 행위를 취하지 않은 자가 대상이었다.
쉽게 말하면 ‘아무나 서부로 가서 땅을 경작하면 그 땅의 소유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사실상 미국의 서부개척은 이때가 전환점이었다. 제도는 1998년까지 이어졌다. 당시 알래스카 주 남서부의 스토니 강가를 경작한 케나스 디아도어가 그 주인공이다.
홈스테드 법은 미국의 도전정신이 보여주는 절정의 가치다. 그리고 이는 현재의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의 통 큰 결단과 이에 맞물리는 창조적인 생태계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성과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링컨의 진짜 업적은 다소 부족했던 노예해방이 아니라, 현재의 미국이 존재하도록 한 도전정신의 확립이 아닐까? 현재의 대한민국이, 바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대목이다.(계속)
[출처 :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76025]
'Academy III > Thin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총통선거 결과로 보는 대만 정치의 지형도 (0) | 2016.01.20 |
---|---|
기후변화·인구대이동, 가장 큰 세계 위험 요인 (0) | 2016.01.19 |
[홍성민의 지피지기 관상학] 관상에서 말하는 ‘좋은 궁합’이란 (0) | 2016.01.18 |
[팍스 아메리카나의 재발견] 본격적으로 열린 ‘왕’의 시대(3) (0) | 2016.01.14 |
[팍스 아메리카나의 재발견] 미국의 탄생, 그리고 비상(1) (0) | 2016.01.14 |
어플루엔자(Affluenza) (0) | 2016.01.14 |
한국은행 '동전없는 사회' 검토중 (0) | 2016.01.13 |
중동 종파분쟁 (0) | 2016.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