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⑭ 동대문 연탄 돼지갈비
양 볼에 시원한 바람이 스친다. 계절이 없는 회색 빌딩 안, 속절없이 의자에 앉아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자유를 꿈꾸다 저녁 6시가 넘으면 광복절 특사라도 받은 것처럼 거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 눈에도 밝은 얼굴. 그들을 가둬 놓았던 것은 본인 자유 의지일테지만, 그럼에도 받아들이기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어려움은 화나 괴로움으로 변하여 안으로 쌓이고 이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떨쳐버리지 않으면 제대로 살기 힘들다. 마광수 교수는 그래서 사람은 두 가지 얼굴로 살아야 한다. 퇴근 후에는 또 다른 인격으로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어버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나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또 다른 건물 속이 아닌 동대문 뒷골목 길거리다.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말은 그 각각 편차가 매우 크다는 말이고, 특히 여름과 겨울에는 야외 활동이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안보다 밖이 쾌적한 가을
찰나는 소중하다. 이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바람이 불고 풀벌레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곳으로 간다. 동대문 ‘경상도집’이다.
동대문 국립의료원 뒷길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동대문운동장에서 동대문역사문화박물관이라는 긴
이름으로 바뀐 역을 나와 골목과 골목을 빙 돌아가야 경상도집이 나온다. ‘도대체 어디야’라고 투덜거리며 발 길을 옮기다보면 ‘아!
여기구나’라고 깨닫는 유레카의 순간이 온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에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경상도집이라는 간판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말자. 그 옛
간판은 바람에 날렸는지 온데간데 없다. 단지 ‘국산 돼지갈비 1인분 12,000원’이란 작은 종이 한장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주의사항 한 가지. 이곳은 현금 결제만 받는다. 카드 결제 안 되는 것에 서운해 하지 말고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아 보자. 혹여 눈에 보이는 자리가 없더라고 좌절은 금물. 사람이 올수록 난장은 무한히 확장된다. 그저 한편에 놓인
테이블을 가져도 옮기기만 하면 될 뿐이다.
메뉴는 오직 돼지갈비 하나, 이곳 정책에 따라 주문은 2인분부터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고기가 나오는
것은 금방이다. 좁은 가게 구석에는 연탄불에 석쇠를 올리고 고기만 굽는 이가 한 명 있다. 고향이 경상도인 할머니일 때도 있고,
저녁이 되면 퇴근을 하고 일을 돕는다는 중년의 아들일 때도 있다. 그들이 서로 돌아가며 불판을 맡고 한 명은 구운 고기의 탄
부분을 일일이 가위로 잘라낸다.
섭씨 700~800도까지 올라가는 연탄불에 고기를 구우면 흔히 ‘불맛’이라고 하는 특유의 풍미가 생긴다. 숯불에 구웠을 때와 비슷한 맛이다. 그 맛은 꼭 숯과 연탄이어서가 아니라 온 몸을 뜨겁게 달구는 열에서 나온다.
그리고 파김치, 김치, 상추, 김치국 사발이 어우러져 한 상을 이룬다. 고기맛을 보면 단맛은 크지 않다.
그런데 씹을수록 묘하게 달달한 맛이 흘러나온다. 당이 열기에 녹아 캐러멜이 되고 그 맛이 고기에 녹아든다. 고기 단백질과 지방도
열에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간간한 간장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기를 씹고 또 씹는다. 시원한 김치국 사발을 들이킨다. 소주 한 잔은
이 속에 녹아들어 모두 하나가 된다.
하늘을 천장 삼아 벗과 웃으며 이야기 한다. 그 소리는 하얀 재처럼 밤하늘 속으로 뿌옇게 흩어지고 짧은 가을 하루가 간다.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1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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