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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estaurant

[정동현·한끼서울]을지로 골뱅이무침

맛있는 한끼, 서울⑱ 중구 영락골뱅이





을지로 영락골뱅이


밤이 되면 파 써는 소리가 들렸다. 시장에서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늦은 밤이었을까, 아니면 가끔 비가 와서 시장이 쉬는 날이었을까? 아버지 주문이 있었는지, 어머니가 짜놓은 메뉴 중 하나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작은 상에 올라가 있는 골뱅이 무침뿐이다.


그 골뱅이 무침은 간장으로 간이 되어 있었고 큼지막한 골뱅이와 북어채, 파채가 들어가 있었다. 고춧가루를 간간히 뿌린 그 골뱅이 무침에 아버지는 소주잔을 기울였다. 나와 동생은 그 곁에 앉아 골뱅이에 파채를 올려 먹었다.


맵고 알싸했다. 간장과 식초로 버무린 맛은 은근히 입맛을 돋우었고 그러다보면 아버지가 몫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그쯤 어머니가 또 북어채를 덜어와 그 간장에 다시 버무렸다. 바로 먹기에는 심이 살아 있어 입 안이 아팠다. 해결 방법은 골뱅이 국물과 간장이 자박이 고인 그릇 밑에 푹 담궈 먹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도 외진 영도로 온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와야 하는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 때문인지 혹은 원래 아버지 취향 때문인지, 밤마다 그렇게 소주와 골뱅이 무침을 곁들여 먹어야 되는 날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곁들이는 말이 있었다.


“니네 엄마가 해주는 게 영락골뱅이랑 맛이 똑같아.”





북어채 등을 취향에 따라 크기를 맞춰 잘라 즉석에서 버무려 먹는다. 양념간장과 마늘, 고춧가루가 버무려진 맛

그 영락골뱅이는 을지로에 있다고 했다. 부산 섬, 영도에서 나는 을지로가 어디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저 서울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소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늦은 밤이 되면 골뱅이 무침 따위를 시켜줬다. 그 골뱅이 무침은 내가 먹던 것과 달랐다. 간장이 아닌 초장 양념이었고 북어채도 없었다. 밤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새벽이 되어 소화가 되지 않은 골뱅이 무침을 토해내는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고향이 아닌 타지에 있는 것을 실감해야 했다. 그리고 서른이 넘어 나는 영락골뱅이를 찾았다.


영락골뱅이는 을지로3가 골뱅이 거리에 있다. 작은 사거리를 사이에 두고 여럿 골뱅이집이 있지만 영락골뱅이에는 가장 크고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그 거리에 있는 모든 골뱅이 집에 갈 여유도 이유도 없이 나는 무조건 영락골뱅이를 찾는다.



골뱅이무침 알싸함을 중화해주는 계란말이



여름이면 을지로 대로를 바라보며 바깥 자리를 잡고 바람이 차가워 양 볼이 얼얼해질 즈음에는 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시킬 수 있는 메뉴는 몇 되지 않는다. 인원수대로 골뱅이를 시키면 채 1분이 되지 않아 머리가 희끗한 종업원이 양푼 같이 큰 그릇올 놓고 간다. 그 안에는 애기 주먹만 한 골뱅이와 파채, 북어채가 들어가 있다. 밑에는 간장 양념이 잔잔히, 위로는 빨간 고춧가루와 한 숟가락 정도 되는 빻은 마늘이 올라가 있다.


빨간 손잡이가 달린 가위로 골뱅이와 파채를 자르는 것은 그 다음 순서다. 젓가락으로 요령 껏 버무리고 입에 집어넣으면 그 옛날 맛이 떠오른다. 어린 날 먹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하지만 그 결은 온전히 서울 것인 바로 그 맛이다.



영락골뱅이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스팸구이



강한 마늘 맛이 입 안을 때리지만 간장에 녹여내면 그 얼얼한 기운은 조금 사라진다. 더욱이 골뱅이 다음에 나오는 계란말이를 먹으면 쓰린 속을 달랠 수 있다. 계란 파동이 났을 때, 오히려 크게 말아 손님에게 공짜로 내어주는 것은 이 집 자존심이요, 역사다.


나는 계란말이로는 성에 안 차 스팸구이를 꼭 시키곤 하는데 이는 벗들에게 원성을 타는 나의 습관이다. 노릇하게 구워 나오는 스팸을 보면 나는 바람이 불면 온 집이 흔들리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나는 아버지가 그리워하던 골뱅이집에 와서 소주를 마시는 나이가 되었다. 나보다 더 젊었을 그 때 아버지는 이 집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느꼈을까? 그때 아버지는 무엇을 꿈꾸고 바랐을까? 이런 것들을 물어보고 싶지만 그쯤이면 밤 어둠은 깊고 나의 몸은 피로하다.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17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