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이후로 유럽에서 민족의식이 높아지고, 이러한 흐름이 나폴레옹 전쟁을 기점으로 민족주의로 발전하면서 민족은 인간 통일성의 매우 중요한 단위로 자리 잡습니다.
이처럼 민족개념이 발전하면서 부족과 문명의 통일성은 약화하였습니다. 민족주의가 자라기 이전, 서유럽인들은 자신이 속한 부족과 함께 유럽이라는 단위를 중요시했습니다.
중세의 서유럽은 로마 제국의 문화적 유산을 공유하고, 기독교를 믿고, 라틴어를 공식적인 언어로 쓰는(실생활은 다른 언어를 썼지만) 지역이었습니다. 이러한 공통된 문화의 중요성에 비하자면, 민족의 문화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죠.
하지만,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민족주의가 싹트자 각 민족이 고유의 언어를 학문과 행정의 언어로 쓰게 되었고, 기독교도 지역에 따라 다양한 교단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렇게 서유럽 문명은 민족의 개념에 밀려나면서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고, 이는 결국 민족과 민족이 명예와 실리를 놓고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는 세계대전으로 이어집니다.
최근에 유럽이 유럽 연합을 통해 민족의 개념을 억누르고 문명의 개념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민족주의가 지나치게 발전하면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과거의 교훈 때문입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역사를 연구할 때 더 나눌 수 없는 단위"로서 사회(society)라는 개념을 내놓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탈리아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이탈리아만 이해해서는 안 되고 다른 유럽국의 역사도 이해해야 합니다. 중세 때 이탈리아 남부는 스페인에 점령당했으니 이러한 과정은 스페인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고, 19세기에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점령한 것은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권력을 쥐게 된 과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150년 전에 이탈리아가 통일된 것은 그 당시 유럽에 불던 민족주의의 물결을 이해해야겠죠. 이처럼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국가나 민족이라는 단위로는 부족하고, 역사의 무대가 되는 더 커다란 단위가 필요하다고 토인비는 주장했습니다.
그 단위가 바로 사회이고, 우리가 많이 쓰는 표현으로 바꾸자면 문명(civilization)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한국 역사에 적용해 보자면, 한국의 역사도 동아시아 역사라는 배경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바뀌는 시기와 당나라가 송나라로 바뀌는 시기와 비슷하고,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는 시기가 원나라가 명나라고 바뀌는 시기와 비슷하다는 사실만 놓고 봐도 한 나라의 정치적 흐름을 뛰어넘는 지역적 변화의 흐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각 지역을 묶는 역사의 단위인 문명은 민족주의가 강하던 시절엔 거의 잊힌 개념이었습니다.
특히 이념 대결의 시대이던 냉전기엔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라 할지라도 이념이 다르면 아주 다른 세계인 양 인식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한국의 옆 나라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중국은 죽의 장막에 가려진 알 수 없고 갈 수 없는 나라였을 뿐입니다.
그에 비해 미국은 지리적으로 상당히 멀지만, 심리적으론 매우 가까운 나라였죠. 그러다가 90년대에 들어 이념의 차이라는 장벽이 사라진 후, 사람들은 점차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 과거에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고받았던 나라들을 묶는 "문명"이라는 개념을 다시 주목하게 됩니다.
특히, 미국에서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가 발생하면서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 이론은 이념의 지배가 사라진 세계를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로 떠오르게 됩니다.
헌팅턴 교수는 이제 세계가 문명을 중심으로 한 여러 세력으로 재편되고, 이러한 세력 간의 갈등이 앞으로 국제관계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리라고 예견했습니다. 이렇게 보자면 9/11 사태는 앞으로 다가올 갈등의 시작에 불과하겠죠.
문명 중심의 국제관계는 문명 간의 갈등을 낳을 뿐 아니라, 문명 내에서 인기 있는 문화가 주변 국가로 쉽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의 대중문화는 지금 일본과 중국 등에서 큰 인기를 얻는 중입니다. 이는 나이지리아의 영화가 아프리카에서 인기를 끌거나, 이집트의 영화가 아랍권에서 인기를 끄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가 문명 내에서 대중문화의 주도권을 쥐는 현상의 일부분입니다. 같은 문명권에 사는 사람은 서로의 문화를 즐기기가 훨씬 쉽습니다.
그에 비하면 다른 문명권에서 온 문화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미국의 대중음악이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높고, 중국의 음식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는 하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고, 대부분 문화는 자국이나 주변국까지만 전파될 수 있을 뿐, 문명의 벽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이탈리아의 음식인 스파게티만 해도 서양에선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았지만, 비서양국가에선 여전히 특별한 때만 먹는 음식일 뿐입니다.
지금 한국엔 "우리 문화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퍼져야 한다." 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데, 물론 한국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문화상품을 만들지 말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러한 예가 전세계적으로 흔치 않다는 사실을 볼 때 이루기 어려운 목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아시아 문명에 뿌리를 둔 한국 문화가 동아시아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좋은 일입니다. 문명이 중요한 단위라는 사실을 깨닫는사람은 같은 문명권에서 거두는 성공을 귀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P.S. 요즘 글이 많이 늦어서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살다가 이탈리아로 옮겨오게 되는 바람에 좀 바빴고, 게다가 중간에 다시 독일을 방문하는 일까지 생겨서 좀 정신이 없었네요. 이탈리아는 얼마전 통일 150주년을 맞아 곳곳에 국기가 보이는 좀 들뜬 분위기입니다. 저는 6월에 독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출처 : http://cimio.net/7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