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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인간 통일성의 일곱 단계- 4. 부족

오늘날, 사람들은 나, 가족, 그리고 민족을 중요한 통일성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가족은 나와 유전자의 연관성, 또는 특별한 사회적 계약으로 묶인 존재이고, 민족은 나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중요하죠. 


하지만, 과거엔 가족과 민족 사이에 두 가지 단계가 더 있었는데, 나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 마을, 그리고 부족이 그것입니다. 지난번엔 마을을 살펴보았고, 이번엔 부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부족은 민족의 하위개념으로, 같은 민족이지만 특별히 나와 연관성이 있는 사람들의 무리입니다. 부족은 민족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데, 민족이 보통 천만 명 이상이라면 부족은 보통 백만 명 이하입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부족이라는 개념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지금도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민족보다 부족이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는 "왜 부족이라는 개념이 필요한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교통, 통신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엔 민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나와 완벽하게 언어적, 문화적으로 같은 사람들의 모임인 부족이 훨씬 중요한 단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봐도 삼국시대 전까지 한반도 남쪽의 마한, 진한, 변한, 동쪽의 동예, 북쪽의 옥저 등 다양한 부족국가가 존재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부족국가는 교통, 통신, 행정의 발달과 더불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으로 정리되었고, 결국은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민족국가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처럼 부족국가가 민족국가로 발전하는 상황은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로마제국이 무너진 후, 중세 유럽엔 수많은 부족국가가 존재하였지만, 근대에 이르러 부족국가가 통합되고 민족국가가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파리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왕국은 동쪽의 부르공디, 남쪽의 나바르의 일부 등을 흡수해서 통일국가를 건설합니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색슨족, 반달족, 고트족 등 수 많은 부족으로 나누어진 민족이고, 이러한 부족주의 전통은 바이에른, 슈바벤, 프로이센 등 지역별로 다양한 문화와 사투리가 발달하는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독일에도 근대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면서 결국 비스마르크의 주도로 통일국가를 건설하게 됩니다. 베를린에서 뮌헨까지 여행하려면 일곱 번 국경을 통과해야 했던 시대가 끝나고, 독일을 하나의 정부가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부족주의 전통은 뿌리가 워낙 깊고, 오늘날에도 정치체제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정부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연방정부"(Bundesregierung)입니다. 즉, 권력을 가진 각 지역이 연합한 국가라는 개념이죠. 실제로 일부 국제회의에는 독일 각 지역 정부가 마치 독립국인 양 대표단을 파견하는 일도 있습니다(이는 스코틀랜드가 국제 축구 대회에 별도로 팀을 내 보내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이탈리아는 상황이 더 복잡해서, 중세시대엔 남쪽의 두 시칠리아 왕국(Regno delle Due Sicilie), 중부엔 교황이 통치하는 교황령, 나머지 지역엔 피렌체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밀라노 공국 등 다양한 정치세력이 존재했고, 이는 각 지역이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지니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도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면서 가리발디의 주도로 불가능할 것 같던 민족국가 건설이 실현됩니다. 이처럼 힘겹게 이룬 통일국가지만, 오늘날에도 이탈리아를 남부와 북부로 나누자는 북부 연합(Lega Nord)가 북부지역에서 인기를 끌 정도로 지역 간의 불화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처럼 근대에 들어오면서 대부분 유럽국가는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힘썼는데, 이러한 시도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통합은 60년 만에 실패로 돌아갔고, 지금도 두 나라는 두 정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8세기에 정치적 통합을 통해 Kingdom of Great Britain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러한 정치적 체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잉글랜드 사람들과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뚜렷한 정체성을 유지한 채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베리아 반도와 브리튼 섬에서 벌어진 통합의 노력이 실패한 것은 두 개의 민족을 하나로 묶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두 민족은 두 개의 언어와 문화를 지니기에 통합을 하려면 한 민족이 일방적으로 흡수당해 정체성을 잃어야 하는데(이는 바로 20세기 초에 일본이 조선에서 시도하던 일이죠), 언어와 문화를 잃는 쪽에선 당연히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비해 한 민족 안에 여러 부족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 통합이 훨씬 수월합니다. 또한, 부족은 인구가 적기 때문에 이질적인 민족에게 흡수당할 때 거세게 저항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큰 민족이 작은 부족을 흡수하는 경우는 많습니다(물론, 스페인의 바스크족처럼 작은 부족이 큰 민족에게 점령당한 후에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독립을 추구하는 예가 있긴 합니다).

한국은 민족국가의 전통이 오래되었기에 부족의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도 수면 밑으로 부족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지역감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알고 보면 부족주의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죠. 물론 민족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역이란 별 의미가 없는 개념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어느 지역 사람하고는 혼인하지 않는다." "어느 지역 사람은 상대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지역에 근거하여 사람을 차별합니다. 


이는 다른 지역 사람은 나와는 문화와 정체성이 다르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발견하는 부족주의의 또 다른 예로는 조선족, 탈북자 등에 대한 차별입니다. 


민족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와 같은 민족은 모두 나와 같은 공동체에 속한 귀중한 존재지만, 부족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와 민족이 같아도 나와 완전히 같은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나와 상관없는 타인일 뿐이죠. 이러한 타인에게 거리감을 두고, 차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따라서 한국인들은 이론적으론 민족을 가장 중요한 공동체로 받아들이지만, 현실에서는 부족이라는 개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한국에서 지역감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단계는 현실에서 거의 쓰지 않는 부족의 개념을 부활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 http://cimio.net/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