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발송 작업의 예로 배우는 프로세스 설계와 혁신 [1]

지금까지 학습한 제약이론(TOC), 셀 생산 방식 등의 프로세스 혁신의 기본 원리가 생산 외의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효과적으로 적용되어 생산성과 작업 효율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실제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이전에 고객에게 회원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회원으로 가입한 고객에게 고객 감동 서비스를 제공하고 회원과의 지속적인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었는데 이 때문에 고객관계관리(CRM :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가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마케팅팀에서는 회원 고객들을 위한 소식지를 만들어 발송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확보하고 있는 고객 리스트를 추출해 본 결과 3,500명 정도가 되었다. 마케팅팀은 소식지를 5,000부 제작하여 3,500여부는 회원 고객의 주소로 발송하고 나머지는 다른 마케팅 활동에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제반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식지를 3,500명에게 발송하는 작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소식지 한 부를 발송하기 위해서는 B5 사이즈의 소식지를 비닐로 만들어진 규격 봉투에 넣은 후 봉투 윗면 접착부위에 붙어 있는 기름 종이를 떼어내 봉투를 밀봉하고 봉투 앞면에 회사 주소와 고객 주소 라벨을 붙인 후 240원어치의 우표를 붙이는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이런 서비스를 대행하는 외주 업체에 맡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처음 소식지를 제작한 만큼 고객을 위해 모든 임직원이 한 마음으로 헌신한다는 의미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져 작업 날짜를 정하고 작업에 참여할 지원자를 모집하였다.

모든 작업 준비와 진행은 마케팅팀의 두 명의 사원에게 맡겨졌으며 다행히 여러 부서에서 소식지 발송 작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지원자가 많이 나와서 모든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나의 소식지가 발송되기 위해서는 소식지, 비닐 규격 봉투, 회사 주소 라벨, 고객 주소 라벨, 우표 등 5가지의 준비물(자재)가 필요했다. 소식지와 비닐 규격 봉투, 회사 주소 라벨은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였고 고객 주소 라벨은 전산담당자가 고객 Database에서 고객 명단과 주소를 추출하여 MS 엑셀로 다운로드 받아 프린트로 인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소식지를 봉투에 넣고 밀봉하는 작업이 끝나기 전에는 충분히 고객 주소 라벨의 준비가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당일 주소 라벨을 붙이는 작업까지를 완성하고 다음날 아침 우체국에 가서 우체국의 도움을 받아 발송하면 모든 작업이 완료되는 계획이었다.

 

소식지 발송 당일 지원자는 20명이 넘었으며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지원자들은 자신의 작업에 필요한 소식지, 봉투 등을 옆에 쌓아 놓고 잡담도 해 가면서 각자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힘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업 물량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들마다 작업방식이 달랐으며 작업 속도도 달랐다. 작업을 책임지고 있던 마케팅팀으로부터 제시된 작업 표준도 없었다. 일부 사람들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하여 공유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과 속도로 작업을 수행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발송 당일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서 붙이는 작업은 여러 가지 여건상 불가능하여 우표를 사 와서 모든 봉투에 240원어치의 우표를 일일이 다 붙인 후 우체국에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작업 당일에는 우표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다음날 아침 일찍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 와서 지원자들이 다시 모여 우표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하는 일정이 추가될 수 밖에 없었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된 작업이 8시가 되어서야 소식지를 봉투에 집어 넣고 밀봉하는 작업까지 간신히 마무리 되었다. 저녁으로 자장면을 시켜 먹고 조금 쉬었다가 9시부터 다시 작업을 재개하였다. 이번에는 봉투 좌측 상단에 회사 주소 라벨을, 우측 하단에 고객 주소 라벨을 붙이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 혼란이 일어났다. 전산 실무자가 고객 라벨 인쇄 작업을 하는 도중 고객 정보 Database에 오류가 생겨 전체 고객의 절반밖에는 라벨 인쇄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인쇄가 완료된 고객 주소는 이미 봉투 부착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였는데 주소 인쇄가 된 고객과 그렇지 않은 고객 구분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전산 담당자는 인쇄가 누락된 나머지 절반의 고객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인쇄하고 있었다.

이미 인쇄된 고객 정보 라벨 부착 작업에 비해 나머지 고객의 라벨 인쇄 작업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어 모든 사람들이 라벨 부착 작업과 대기 상태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다가는 모두가 밤을 샐 판이었다. 밤 11시가 되어 어차피 다음날 우표를 붙이는 작업이 남아 있으므로 전산 담당자가 밤새 라벨 작업을 완료하기로 하고 모든 사람들은 철수한 후 다음날 10시에 다시 모이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10시가 되어 10여명의 지원자들이 다시 모였고 나머지 고객 주소 라벨과 우표도 준비가 되어 주소 라벨을 붙이는 작업과 우표를 부착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표는 봉투 하나당 240원어치를 붙여야만 했다. 그런데 우표의 수량이 많다 보니 한 가지 종류로 구매할 수가 없어 우표 종류가 100원, 200원, 20원, 40원의 네 가지나 되었다. 게다가 이 우표들을 체계적으로 통제하고 배분하는 사람이 없어 작업자들은 이 네 종류의 우표로 240원에 맞는 조합을 만들어 붙이기 위해 우왕좌왕 했다. 이 작업에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작업이 마무리 되어 가던 도중 아주 큰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주소 라벨이 잘못된 위치에 붙은 봉투를 여러 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고객 주소가 우측 하단이 아니라 거의 정 중앙이나 다름 없는 위치에 그것도 비뚤게 붙은 봉투가 엄청나게 많았다. 비슷한 작업 결과가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전날 작업한 지원자 중 몇 명이 성의 없이 작업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라벨 인쇄 자체도 불량이 다수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글씨 인쇄가 라벨 스티커 중앙에 되지 않아 글자 일부가 잘려 나간 것이었다.

결국 상당 수의 불량품이 발견된 것이다. 그 상태로 고객에 발송한다면 오히려 욕을 먹을 판이었다.

 

이 때문에 모든 불량품을 선별하여 재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정말로 힘들고 피곤한 일이었다. 붙어 있는 스티커를 떼어 내고 그 고객 주소 라벨을 다시 인쇄하여 붙여야만 했다. 스티커를 떼다가 실패하면 봉투가 상하게 되므로 봉투를 열고 소식지를 꺼내어 다시 처음부터 작업을 해야만 했다.

더욱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은 우표까지 떼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우표를 잘못 떼어내면 바로 그 우표 비용만큼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고 어려운 작업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오후 3시 가까이 되어서야 모든 작업이 끝났다. 전날 작업을 포함하면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도 모든 작업에 무려 10 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다음날 마케팅팀 전원을 소집하여 이틀간의 작업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리뷰하고 피드백과 학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효율이 발생했던 근본 원인을 파악하였으며 전체 작업을 분석하고 프로세스로 구성하여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도출한 결과 금번의 소식지 발송 작업은 모든 것들이 베스트 프랙티스대로 완벽하게 진행되었다면 최대 15명의 인원으로 2시간 이내에 모든 작업을 종료할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수선하게 수행했던 작업은 베스트 프랙티스에 비해 더 많은 인력을 가지고서도 생산성이 5분의 1도 안되었던 것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에서는 우리가 만들어낸 베스트 프랙티스와 그 설계에 적용했던 원리들을 설명하기로 하겠다.

 

구조화되고 표준화된 프로세스와 규칙이 없이 조직 구성원들이 각자 알아서 열심히 하는 경우와 프로세스가 잘 정의되고 구조화된 베스트 프랙티스 간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생산성의 격차가 발생한다.

조직 구성원들이 협력, 협업을 하는 프로세스를 올바르게 설계하고 단순화, 표준화함으로써 조직을 개인들이 모여있는 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성과 창출 시스템으로 만들 수 있다.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성과와 조직 시스템의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성과는 수 배에서 많게는 수 십, 수 백배의 차이가 발생한다.

 

 

[출처 : 착한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