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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estaurant

[정동현·한끼서울]성수동 감자탕


소문난 성수 감자탕(이 사진은 가스불을 사용했을 때 촬영한 것. 지금은 인덕션으로 바뀌었음)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⑥ 성동구 소문난 성수 감자탕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듯 낮은 공장 건물이 넓게 깔린 성수동에 감자탕 집이란 당연한 것이다. 가죽을 오리고 이어붙이는 가죽공방과 사람 발 모양에 따라 신을 짜고 징을 박는 구두 공방, 그리고 톤(ton)에 가까운 차를 들어올려 하부를 뜯고 전기 배선을 이어 붙이는 차 수리소가 군락을 이룬 성수동에 사람 팔뚝만한 돼지 등뼈와 야구공만한 감자, 그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넣은 것 같은 시래기를 끓인 감자탕집은 홍콩 누아르 영화 속 도박장 만큼이나 필수불가결한 요소 같다.


성수역 1번 출구를 나와 햇볕 한 점 가릴 곳 없는 황량한 공단 거리를 조금만 걸으면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는 집 하나가 나온다. 본래 유명했으나 방송에 나오며 아예 불이 난 듯 사람들이 몰리는 ’소문난 성수 감자탕’이다.


줄을 서지 않으려면 점심시간 보다 살짝 일찍 가는 것이 좋은 선택. 공부를 잘 하려면 예습·복습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조언처럼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전쟁터 같은 점심시간을 겪어 보고 나면 이는 무심히 더하는 말참견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언임을 알 수 있다. 이 집 점심시간은 호떡집에 불난 규모가 아니다.



외관이 흔히 연상되는 노포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소문날 만한` 맛을 경험하게 한다



1983년에 문을 연 이 집 메뉴가 감자탕인 것을 잊지 말자. 냉면집처럼 손에 쥐기 쉬운 차가운 그릇을 옮기는 것이 아니다. 국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돼지 통뼈가 든 벌건 탕을 쟁반에 이고 지고 테이블 사이를 움직이는 식모들을 보면 이곳은 ‘먹고사니즘’의 철학적 현장이 아니라 먹고 먹히는 전쟁터 한 가운데라는 사실이 몸으로 다가온다.


땀을 흘리고 근육을 쓰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백질과 탄수화물, 그 모두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감자탕 식사 한 끼는 7000원, 만약 혼밥을 한다면 이보다 나은 선택이 없다. 1시간으로 못 박힌 점심 시간, 빠르게 한 그릇 비어내고 영혼 없이 쓰기만 한 커피까지 한 잔 하려면 주문하자마자 나오는 감자탕 한 그릇이 좋다.


서울시내 빌딩가에서 8,000원대 직장인 점심 메뉴가 많아진 요즘, 아직 7,000원에 먹을 수 있는 이 감자탕은 고기와 감자, 시래기의 양이 두루 야박하지 않다. 오히려 만 원 한 장 안 되는 값이 미안해지기까지 할 정도로 알차다.


그러나 시간에 여유가 있고 무언가 보상 받고 싶다면, 내가 흘린 땀과 쏟아낸 에너지가 만만치 않다면 식사가 아니라 따로 감자탕을 시켜보자. 2~3인이라면 소, 그 이상이라면 중과 대로 적당히 양을 맞춘다. 돼지뼈를 쌓고 그 사이에 큰 감자를 박은 다음 시래기를 올린 감자탕 면면에 벌써부터 땀이 흐르는 것 같다.


이제 가스불은 없다. 대신 자성(磁性)을 이용해 열을 만드는 인덕션을 테이블마다 설치한 탓에 가스불 열기를 맞을 필요는 없다. 껍질을 살짝 벗겨낸 큰 오이를 쌈장에 찍어 입맛을 다시는 것을 시작으로 냄비가 끓기 시작하면 사이 좋게 돼지뼈부터 나눠 가진다. 그래야만 끓으면서 국물이 사방으로 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처음 나온 냄비에서 뼈와 시래기를 먹은 후, 다시 라면 사리를 추가해 투입한다. 소문난 성수 감자탕



국내산 80%, 덴마크산 20%를 섞어 쓴다는 돼지 등뼈에는 살이 넉넉하다 못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붙어 있다. 등뼈 사이에 붙은 살을 발라 먹다가 빈정상할 일은 없다. 된장 국물에 오래 끓여 뼈에서 자연히 떨어져 나오는 고기를 한 점, 그리고 감칠맛이 농후한 시래기를 ‘이것이 섬유질이다’라는 기세로 우적거리면 소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대로 끝나면 아니 된다. 시래기와 돼지 뼈를 추가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 앞에서 직접 뜯어주는 수제비는 명물이며, 보글보글 끓이는 라면 사리는 단골들 특식이다. 국물을 졸이고 졸여 밥을 볶으면 버터를 넣어 비빈 것처럼 기름기가 돈다. 남겨놓은 감자탕 국물에 살짝 살짝 적셔가며 볶음밥을 먹으면 몸에 흐르는 땀줄기도 잊을 지경이 된다.


이 모든 의식을 치르고 나면 성수동은 여전히 회색빛이고 여름 하늘은 자비를 베풀 기색이 없다. 그러나 몸에 품은 뜨거운 힘에 무서울 것은 없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이 집은 소문날 만 하다고.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098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