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 & Info/Restaurant

[정동현·한끼서울]약수역 ‘금돼지식당’



삼겹살을 씹을 때 이에 감기는 탄성이 달랐다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32) 약수역 ‘금돼지식당’



소고기가 비싸서 먹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남이 사준다고 하면 소고기를 외쳤다. 회식 때 소고기를 먹는다고 하면 그 전날부터 설랬다. 남이 한 점 먹을 때 두 점 먹으려고 노력했고 다 익히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를 대며 핏물 떨어지는 고기를 낚아채듯 집어 먹었다. 그러나 내 돈 주고 먹을 고기라면 돼지고기가 좋았다.


만약 나의 마지막 날이 되어 ‘너는 어떤 고기를 좋아하느냐’라고 간증해야 하는 자리가 생긴다면 나는 몇 번이고 말할 수 있다. 저는 돼지고기가 좋습니다. 돼지고기는 싼 고기다. 삼겹살이 금겹살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도 지갑 가벼울 때 먹을 수 있는 고급 단백질은 돼지고기가 으뜸이다.


서양에서는 싼 부위라고 취급받는 삼겹살을 유난히 좋아하는 국민 성향 덕에 세계 삼겹살 최대 수입국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벨기에, 프랑스, 칠레, 캐나다 등등 싸게 먹자면 수입 삼겹살을 먹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그러나 굳이 기분을 내고 싶을 때가 있다. 삼겹살 그까짓 고기가 무슨 차이가 난다고 줄을 서는 집에 가서 국산, 그것도 특별히 종을 선별해 길렀다는 그 고기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돼지고기 집이 떠올랐다.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약수역 금돼지식당이요.”



금돼지식당



업데이트 한 지 꽤 되어 보였던 네비게이션에 ‘금돼지식당’이란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다. 적당히 약수역 근처에 내려 휴대폰 지도를 살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열 댓 명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집이 보였다. 느낌이 왔다. 금돼지식당이었다.


느낌 그대로 정문 앞에 가니 기다리는 사람들 이름이 가득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내 이름 앞에 11팀이 있었다. ‘되돌아갈까’ 생각이 들었지만 약수역까지 든 택시비가 아까웠다. 밤공기는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모기 하나 없는 봄 밤, 약수역 거리를 서성였다. 오래된 이북식 찜닭집 생각만 했던 약수역은 생각과 달랐다. 매듭을 조이듯 컨셉과 컨텐츠의 오와 열을 제대로 맞춘 식당들이 여럿이었다. 일본식 야키니쿠에 꼬치집, 소고기집 등을 한참 염탐했다. 그래도 내 앞의 줄이 줄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근처 카페에 가서 매일 응원하지만 매일 지고 있던 야구팀 경기를 봤다. 딱 한 시간이 흘렀다. 경기는 예상대로 졌고 그것을 신호 삼아 식당 앞에 달려갔다. 종업원의 눈이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나였다. 한 시간이 걸려 자리에 앉으니 상이라도 탄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 집 메뉴를 다 먹을 것이니 나를 기다리지 마시오’라고 외치고 싶었다.


이 집은 목이 짧은 ‘듀룩’ 돼지와 영국산 말돈(maldon) 소금을 쓴다고 했다. 말돈 소금이라 하면 한참 외국에서 요리사로 일할 때도 함부로 쓰지 못하던 고급품이었다. 쓴맛이 없고 단맛이 돌며 무엇보다 소금 결정이 다이아몬드를 깨어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이 소금을 돼지고기 찍어먹는데 쓰다니 미원 섞은 참기름장은 옛날이야기인 셈이다.


찬은 간촐했다. 갈치젓, 쌈장, 무 짱아치, 쌈 등이 깔렸다. 상 가운데 연탄불이 벌겋게 타올랐다. 유해물질은 뺀 특허받은 연탄이란 설명이 보였다. 온돌을 달구던 연탄불의 화력은 고급스러운 숯을 웃돈다. 높게는 섭씨 1,000도씨까지 올라가는 게 연탄불이다. 그 위로 쇠창살처럼 작게 틈이 난 무쇠판을 올렸다. 이제 한 시간을 기다려 고기를 구울 수 있게 됐다.


등과 목 사이 한 마리당 200g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등목살, 갈빗대 주변에 있다는 본삼겹, 마블링이 있는 눈꽃목살을 하나씩 시켰다. 더벅머리를 한 종업원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먼저 돼지비계로 철판을 닦듯 기름칠 했다. 그리고 찰흙덩이처럼 두꺼운 삼겹살을 철판 위에 놓았다. 고기 익는 냄새가 몸에 베이고 소리가 귀를 울렸다. 종업원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고기를 몇 번 뒤집더니 가위질을 했다. 두꺼운 고기가 잘려나갔다. 살이 갈색으로 변하고 밑으로 기름이 뚝뚝 떨어졌다. 의식을 치르듯 그 광경을 지켜봤다. 어느 순간 종업원이 고기를 한점 접시에 올려놨다.


“저희는 고기를 바싹 익히지 않습니다. 건조해지면 식감이 떨어지거든요. 목살은 살짝 핏기가 돌게 굽고요.”

종업원의 설명을 들으며 삼겹살과 목살을 한 점 씩 입에 넣었다. 삽겹살을 씹을 때마다 이에 감기는 탄성이 달랐다. 힘없이 쳐진 식감 대신 팽팽하고 탱탱하게 이에 저항하는 식감이 느껴졌다. 힘을 들여 씹으면 고소한 육즙이 혀에 닿았다. 목살은 그에 비해 찰진 식감이 덜한 대신 이에 살그머니 감기는 부드러운 고기의 질감과 피가 섞인 두터운 맛이 있었다. 한판을 비우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2시간 동안 끓였다는 김치찌개



다음 차례는 등목살이었다. 삼겹살의 식감과 목살의 맛이 섞여 있었다. 목이 짧은 듀록에서 특히 귀한 부위라고 했다. 비싼 값을 하는 맛이었다. 인분 수를 초과해 고기를 먹고도 아쉬워 2시간 동안 끓였다는 김치찌개도 시켰다. 돼지고기가 섭섭하지 않게 들어 있고 두터운 맛과 톡 쏘는 산미가 기본 이상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일이 고기를 썰고 굽고 반찬을 가져다주는 날랜 종업원들을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가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다 먹고 나니 밤 10시가 넘은 시각. 그때도 사람들은 줄을 서서 돼지고기 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47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