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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estaurant

[정동현·한끼서울]용산구 ‘옛촌숯불갈비’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36) 용산구 ‘옛촌숯불갈비’


휴일 점심이었다. 늦잠을 자 헝클어진 머리로 소파에 누워 있으니 배는 허전하고, 입안은 까슬까슬, 몸은 찌뿌둥, 머릿속은 뿌옇게 흐렸다. 맵고 짜며 달달한 맛이 그리웠다. 차를 몰고 용산으로 향했다.


새로 올라간 아모레 퍼시픽 사옥 뒤편, 대로변에 ‘옛촌숯불갈비’라는 간판을 단 식당이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좁은 실내와 분주한 종업원이 보였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돼지갈비를 구우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불판 옆에는 빈 소주병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익어가는 고기 냄새와 사람들이 고기를 씹는 소리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숯불에서 올라온 연기를 타고 나에게 다가왔다. 배가 더욱 고파왔다. 자연스레 벽에 붙은 메뉴를 노려봤다. 소갈비와 돼지갈비, 김치찌개, 된장찌개, 거기에 칡냉면까지 파는 곳이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폼을 잡으며 소갈비를 시킬 이유는 없어보였다.


“초벌을 해서 드릴까요?”


종업원 답에 올커니 하고 초벌을 해달라고 청을 넣었다. 뒤로 굽든 앞으로 굽든 돼지갈비는 돼지갈비다. 하지만 은근히 굽기가 까다로운 것이 돼지갈비다. 돼지갈비 양념의 기본이 되는 설탕과 간장이 쉽게 불에 타기 때문이다. 태우지 않으려면 쉴 새 없이 고기를 뒤집는 수밖에 없다. 값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초벌을 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벌 했다는 모양새를 보니 불에 직접 초벌을 한 것이 아니라 찌듯이 익힌 듯싶었다. 어찌됐든 속까지 익힌다는 목적에는 부합한 셈이었다. 뼈가 붙은 돼지갈비를 넓게 펴서 불판에 올렸다. 어차피 익혀 있으니 내가 할 일은 겉에 곱게 색깔을 내는 것 밖에 없었다.


타기 직전, 짙은 갈색으로 고기를 익혀야 맛도 그만큼 진해진다. 그러려면 성급히 고기를 뒤집기보다 느긋하게 고기를 불판 위에 놔두고 열이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 밑반찬에 두어 번 손을 대고 휴대폰에 올라온 뉴스 몇 개를 보니 고기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왔다. 이때다 싶어 고기를 뒤집었다. 군데군데 그을린 곳이 있었지만 괜찮아 보였다.


다시 몇 분 후 고기를 뒤집고 가위를 들었다. 오와 열을 맞춰 고기를 자르고 불판 위에 정렬했다. 혹자는 돼지갈비에서 제일 맛있는 부분은 뼈에 붙은 고기라지만 그 이야기는 먹을 것이 없어 뼈에 붙은 고기라도 악착같이 먹어야 했던 시절에서 비롯된다. 계급장 때고 따지자면 아무래도 살코기와 지방이 반반 섞인 쪽이 식감과 맛에서는 한수 위다. 특히 갈비에서 삼겹살 쪽으로 내려올수록 지방의 양이 많아진다.


시중의 돼지갈비 집들은 대부분 갈비와 삼겹살을 길게 이어 돼지갈비라고 칭해 내놓는다. 갈비 부분만 쓰기에는 양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집의 고기도 그랬다. 하지만 양과 값을 보면 섭섭한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달지도 짜지도 않은 설탕과 간장의 맛이 조화로워 만족스러웠다. 그 맛에 불판을 비우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달달하다 싶으면 매운맛이 올라오고 좀 맵다 싶으면 고소한 맛이 슬그머니 혀에 닿는 칡냉면

한 번 더 같은 양을 주문했다. 상추에 쌈장을 올리고 반찬으로 나온 상큼한 무채를 곁들였다. 무채 덕분에 고기 먹는 일이 더 쉬워졌다. 고기를 더 먹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식사를 시키는 편이 더 나을 듯싶었다. 평범한 된장찌개로는 성이 안 찰 것 같아 칡냉면을 시켰다. 잠시 후 검은 면발에 빨간 양념이 가득 올라간 냉면 한 그릇이 상 위에 올라왔다. 생김새만 보면 짜고 달아서 한 입 욱여넣고 연신 물을 찾을 것만 같았다. 기대와 각오가 반반 섞인 마음으로 힘차게 젓가락질을 했다. 맛은 예상과 달랐다.


찌르고 벨 듯 기세등등한 대신 조심스레 바느질을 하고 수를 놓듯 야무진 느낌이 났다. 달달하다 싶으면 매운맛이 올라왔고 좀 맵다 싶으면 고소한 맛이 슬그머니 혀에 닿았다. 젓가락질 속도가 늦춰지지 않았다. 한 그릇은 비우는 일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만큼 수월했다.


그 쉬운 일들을 마쳤을 때 내 몸속에는 기름지고 맵고 짠 것들이 가득 찼다. 장이 불편하거나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에 감춘 것 없는 친구와 짓궂은 농담을 하고 껄껄거리며 한바탕 웃은 듯 속이 시원했다.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59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