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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estaurant

[정동현·한끼서울]거여동 ‘동촌’


‘동촌’의 돈까스, 처음엔 전통주점과 어울리지 않는 메뉴라 여겼으나 맛있는 돈까스였다.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34) – 거여동 ‘동촌’


경영학과의 오래된 논쟁은 다음과 같다. 경영학은 예술인가 과학인가? 사례를 연구하는 경영학은 과학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이가 여럿이다. 그 사례의 맥락은 우연에 기대고 있고 그리하여 개별 사례의 합이 하나의 법칙을 만들지 못하는데 어찌 과학이냐는 주장이다. 반대편에서는 각종 통계 수치와 유행하는 경영 기법들을 가지고 와서 이 수치와 기법의 범용성과 논리적 정연성을 무기로 과학이라고 외친다.


내가 생각한 경영학은 당연한 소리의 집합이었다. 경영학은 당연한 것들을 증명하는 학문이었다. 예를 들어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어떤 리더십’이냐 혹은 ‘어떤 성격의 사람이 리더십을 가지냐’는 등의 질문이 나온다. 어떤 책은 마초적이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책은 내성적인 이의 리더십이 오히려 유효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추적에 따르면 어떤 특정 성격이 더욱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 리더십이 발휘되었다는 증거 역시 주가총액 등의 수치인데 이 또한 무수한 요소의 합이기에 무엇 하나를 특정 짓는 것도 결국 거꾸로 가는 인과관계의 오류일 뿐이다. 그 끝에는 상투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고집을 부리지 말되 원칙을 지키자’, ‘노력하되 번아웃 하지 말자’, ‘유연하되 유유부단하지 말자’ 등등 모순된 단어들 합의 교묘한 절충점이 우수한 경영학도의 자질이 된다.


잘 팔리는 식당의 조건도 비슷하다. 맛이 있되 그 지점이 대중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개성이 있어야 한다. 고객이 돈을 낼 때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러나 적정 원가율을 지켜야 한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모순(矛盾)이다. 궁극적으로 편한 세상은 없다. 대중적이지만 개성을 지켜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요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래서 답은 쉽지만 방법이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곳에 사람들은 줄은 선다.


거여동의 오래된 전통주점을 인수했다는 말을 들었다. 식당의 이름은 ‘동촌’으로 옛 간판을 그대로 썼다. 메뉴도 얼핏 보면 전통주점이었다. 동동주와 감자전, 해물파전, 도토리묵만 보면 그랬다.


그런데 상 위에 올라간 돈까스를 보니 또 생각이 달라졌다. ‘전통주점에서 돈까스를 팔아도 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콘셉트가 맞지 않다는 전문적인 훈수도 두고 싶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보니 또 아니 시킬 수 없었다. 떼로 생활하는 유인원으로서, 이런 사회적 압력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종업원들은 거친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주문을 받고 주방에 알리는 모습은 스크럼을 짠 럭비팀 같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타원형의 럭비공을 뒤로 던지고 다시 러너에게 패스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패스는 매우 빨랐다.



감칠맛 나는 된장찌개(좌), 쫀득한 식감이 좋은 감자전(우)



주문이 들어가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열무비빔밥과 된장찌개가 가장 먼저 상 위에 올랐다. 이 정도 메뉴는 준비해놓은 재료를 한곳에 담거나 다시 끓이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2층 가득 들어찬 손님들 틈에서 빠르게 도착한 뚝배기를 보니 불평할 마음이 가셨다.


된장찌개는 별 게 없었다. 말 그대로 건더기라고 부를 만한 게 몇 개 없었다. 하지만 청국장과 된장을 섞어 쓴 듯한 국물의 맛이 남달랐다. 일행은 “뭐지?”라고 연거푸 말하며 된장찌개에 숟가락을 갖다 댔다. 굳이 설명하자면 간간한 염분기와 발효된 감칠맛의 균형이 아슬아슬했다. 그 미묘한 균형은 날이 잘 든 칼처럼 둔해진 미각을 자극했다.


잠시 뒤 돈까스와 생선까스, 모둠까스가 나왔다. 하나같이 크기가 컸다. 상 위에 다 올릴 수 있을까, 걱정부터 들었다. 숟가락통을 치우고 앞접시를 반납했다. 돈까스를 썰었다. 칼이 들어가는 깊이가 시중의 집들과 차이가 났다. 얇은 고기는 썰리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뉜다. 이 집은 고기의 살집이 살아 있어 썰리는 촉감이 전해졌다. 소스는 일반적인 우스터소스 베이스가 아니었다. 우스터소스의 신맛 대신 견과류의 고소한 맛이 더 강했다. 정통을 따지고 맛의 균형을 따지자면 튀김에는 신맛이 강한 우스터소스 류가 낫겠지만 이 집의 개성과 경쟁력을 생각한다면 고소한 맛이 나을 성 싶었다.


큼지막한 동태살로 만든 생선까스에 곁들인 타르타르 소스는 밋밋하지 않은 적당한 신맛과 짠맛의 맛의 얼개를 잡았다. 동태살도 오래 얼리지 않은 것인지 눅눅한 맛이 돌지 않아 먹기 부담스럽지 않았다.


가장 나중에 나온 감자전은 아예 예상을 뛰어넘었다. 쫀득한 식감에 ‘이렇게 만들기 쉽지 않다’는 감탄이 터졌다. 배가 부르다면서도 일행들은 감자전에서 젓가락을 떼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했다. 그들은 상 가득 나온 돈까스와 비빔밥, 도토리묵을 먹으며 그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메뉴는 럭비공처럼 그 조합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멀리 나갔고 무엇보다 효율적으로 목표를 공략했다. 대중성과 개성, 효율과 효과라는 모순도 보기 좋게 풀고 있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모든 게 모순이다. 그런데 모순을 풀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또 어른의 삶이다. 돈까스 한 장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만큼 좋은 돈까스였고 식당이었다.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54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