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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돈이라는 우상을 다루는 법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돈의 속성을 이렇게 말했다.
“모든 재화는 한 가지 목적을 만족시킨다. 돈은 한 가지 욕구만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욕구를 추상적으로 만족시킨다.”
 
빵은 먹고 싶다는, 옷은 따뜻해지고 싶다는 구체적인 욕구를 각각 만족시킨다. 그런데 ‘돈’은 그렇지 않다. 돈이 있으면 빵을 사 먹을 수 있고, 옷을 사 입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모든 필요를 추상적으로 만족시키는 돈은 마치 신처럼, 우상처럼 존재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 강의할 때 가끔 청중에게 질문해 본다. 몇 가지 공통적인 대답이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 답이 시간·사랑·건강이다. 정말 그런 건지 이렇게 풀어 생각해보자.
"돈이 있으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 있습니다. 시간을 사는 것과 같죠."
 
"돈이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계속 사 주거나 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마음을 열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랑을 바로 살 수는 없겠지만 사랑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돈으로 건강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돈이 있으면 좋은 것 먹고 건강검진 제때 받고, 돈에 대한 스트레스가 낮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실 수도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없는 시대다. 과거 어떤 시대보다 돈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커져 인생 최고의 목적이 됐다. 우상은 삶 전체를 요구한다. 그래서 수많은 우리의 이웃이 무엇이든 해결해 주는 강력한 우상인 ‘돈’을 섬긴다. 그리고 그 우상이 요구하는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안 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돈이란 놈을 수단으로 삼으려면



‘돈이 목적인가? 수단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수단'이다. 하지만 말처럼 돈을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돈이란 놈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 강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삶의 목적이 되고 우상이 된 놈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모든 강력한 것은 ‘나누고, 쪼개고, 구분할 때’ 약해진다. 무엇으로 구분하면 될까? 시간(Time), 역할(Role), 목적(Gaol) 세 가지 기준을 갖고 돈을 구체화해보자.
 
시간(Time). 돈을 오늘의 돈과 내일의 돈으로 나눠보자. 오늘만 생각하는 삶은 돈의 위험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오늘을 포기하고 내일만 준비하는 삶은 돈을 우상화하거나 두려워한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스타일과 스크루지 두 극단을 ‘돈의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돈을 지나치게 무시해 최근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욜로 스타일은 결핍을 구조화한다. 태도 자체를 문제 삼기 힘들지만 재무행동은 늘 통장잔고와 연결된다. 욜로를 외치는 사람은 멋진 오늘을 위해 내일을 위한 준비를 포기하고 내일을 위해 남겨둬야 할 돈을 오늘 써 버린다. 위험하다. 이들의 위험은 내일 수입이 단절되거나 줄 수 있다는 사실이고, 그 위험이 현실화하면 견디기 힘들다.
 
 
욜로 스타일과 다르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을 풍자한 푸어체인(Poor Chain)도 균형을 잃은 것은 비슷하다. 형편과 상관없이 치르는 결혼식 비용 때문에 가난해지는 웨딩 푸어(Wedding Poor), 아이가 생기면서 외벌이가 되고 지출은 늘면서 가난해지는 베이비 푸어(Baby Poor), 과도한 사교육비로 휘청거리는 에듀 푸어(Edu Poor), 그래서 결국 가난한 노후를 살게 되는 실버 푸어(Silver Poor)라는 푸어 체인은 돈 관리에 실패한 라이프 사이클을 보여준다. 천천히 라이프 사이클을 그려보고, 오늘과 내일 필요한 돈을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돈이 구체화하고 다룰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다른 극단을 살펴보자.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는 부자다. 하지만 그는 가난하다.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는 직원은 물론 하나 밖에 없는 조카를 위해 쓸 돈이 없는 가난한 마음이다. 그 마음속 깊은 곳에는 돈이 없는 것에 대한 큰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두려움은 돈을 못 쓰게 만든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수많은 스크루지가 있다.
 
모으기만 하는 사람들, 주위 사람들은 고사하고 자신을 위해서도 잘 쓰지 않는 사람들,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돈은 쓰지 않는 것이다’는 말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소비를 즐기기 힘들다.
 
오늘 쓸 돈과 내일 쓸 돈을 구분하는 것이 행복한 돈 관리의 출발이다. 내 수입 중 어느 정도는 오늘의 삶을 위해 사용하고 일부는 내일을 위해, 10년 20년 후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 행복한 오늘을 위해, 준비된 내일을 위해 싫든 좋든 우리는 자신의 라이프 사이클을 그려봐야 한다. 어떤 인생이 앞으로 펼쳐지고, 그 속에서 어떤 '돈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는지 계획해야 한다. 그래야 막연한 돈의 압박에서 벗어나 돈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오늘의 돈과 내일의 돈을 나누고 나면, 오늘의 돈은 예산을 수립해 역할(Role)에 따라 구분하자. 먹고 마시고 즐기는 돈이 있고, 자기 계발이나 문화생활을 위한 돈이 있다. 살고 싶은 인생을 그려보고 예산을 수립하면 돈은 구체화한다. 그러면 그 돈이 잘 사용되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생각하게 되고 돈은 구체적인 수단이 된다.


 
돈에 대한 우상 버려야 지혜로운 사용 가능


내일의 돈은 목적(Goal)에 따라 적합한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그 금융상품에 적절한 금액을 투자하면 자신에게 맞는 포트폴리오가 구성되고 돈은 구체화한다. 100만원을 하나의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적합한 금융상품을 선택해 10만원씩 투자하는 방식이다.
 
라이프 사이클을 그려보고 예산을 수립한 뒤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일은 전문적인 영역이다. 혼자 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은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틀을 잡는 것이 좋다. 상담할 때 좋은 전문가를 만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충분히 질문해야 한다. 자산관리 시스템을 만들 때 잘 만들어 놓으면 그다음에는 훨씬 쉬워진다.
 
돈은 점점 다루기 힘든 놈이 될 것 같다. ‘쉽고 편하게’를 외치는 간편 송금과 간편결제 기술은 돈이 들어오기보다 떠나기 쉽게 만들고 돈에 대한 추상성을 강화한다.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지 않으면 돈은 점점 추상화되고 우상이 되고 다루기 힘들어진다. 돈은 구체화해야 한다. 시간에 따라 나누고, 역할에 따라 이름을 붙이고, 목적에 따라 상품을 분산해야 한다. 그래야 돈에 지지 않고, 돈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고, 돈을 지혜롭게 다룰 수 있다.
 



[출처 : 신성진 배나채 대표 truth6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