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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II/Thinking

'뇌 기억의 저장소' 70년 학설, 실험으로 확인

기억은 뇌 어디에 담겨 있는 걸까? 현재 학설이 말하듯이 신경세포(뉴런)들의 연결인 ‘시냅스’에 저장된다면, 어떤 기억이 생성되고 저장될 때 수많은 시냅스들 중에 실제로 어떤 시냅스들이 기억의 저장소로서 참여할까?


1947년 캐나다 신경심리학자 도널드 헤브(Donald Hebb: 1904~1985)가 제시해 지금까지 널리 받아들여지는 학설로는, 뉴런마다 수천 개씩 달려 뉴런들 간의 신호를 서로 연결해주는 무수한 시냅스들이 바로 기억이 저장되는 그곳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동안 신경과학자들은 시냅스에 생기는 구조적 변화가 곧 기억 현상임을 주로 분자 수준에서 규명해왔다. 하지만 뉴런과 전체 시냅스 수준에서 이런 학설을 직접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뉴런 하나만 해도 거기에서 뻗어 나오는 시냅스가 수천 개이니, 수많은 뉴런에 있는 무수한 시냅스들 중에 어떤 것들이 특정 기억의 형성과 저장에 참여하는지를 식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억의 형성 때에 ‘기억의 저장소’로서 기능하는 기억 저장 뉴런과 시냅스를 시각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강봉균 서울대 교수 연구진(기억연구단)은 26일 “형광유전자를 이용해 수많은 시냅스를 기능별로 식별해내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으며 이를 이용해 학습과 기억 중추인 해마에서 학습에 의해 구조와 기능 변화가 일어난 기억 저장 시냅스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렸다.


강 교수는 이날 설명회에서 “기억은 시냅스에 저장되며 학습에 의한 시냅스의 변화(시냅스 가소성)가 곧 기억의 물리적 실체라는 학설이 1949년에 제시된 이래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학설로 받아들여지지만 기술적 한계로 아직 실험으로 확인되진 않았다”면서 이번 연구가 70년 된 ‘기억 저장소’ 학설을 실험으로 직접 확인해주는 성과라고 강조했다.


시냅스가 기억 저장소임을 확인해주는 이번 연구결과는 연구진이 시냅스 관측을 위해 오랫동안 개발해온 ‘듀얼-이그래스프(dual-eGRASP)’라는 신기술 덕분이었다. 연구진은 녹색 빛을 내는 ‘녹색형광단백질(GFP)’의 유전자를 일부 변형한 것들을 뉴런에 집어넣음으로써 그 뉴런이 활성화할 때 뉴런의 시냅스 말단에서 노란색 형광이 나타나도록 했다.


이 분야에서 이미 알려진 그래스프(GRASP)라는 기존 기술을 개량하고 발전시켜, 형광 신호는 훨씬 강하게 발현하게 했으며 한 가지 색만을 이용하던 것을 청록색, 노란색 등으로 다양화했다. 이번 실험에 쓰인 노란색 형광은 기억 저장에 관여하는 뉴런이 활성화해 그 시냅스들에서 기억 형성 활동이 활발해짐을 보여주는 표지로 쓰였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이용해 공포 경험을 기억하는 실험용 쥐의 뇌 해마에서 수많은 시냅스들 중에 어떤 것들이 기억 형성과 저장에 관여했는지를 살폈다.


공포 기억을 저장한 쥐의 해마 부위를 새로운 기술로 살펴보니, 기억 저장에 관여하는 신경세포(엔그램 세포, engram cell)의 수상돌기 가시 말단에 있는 많은 시냅스들에서 노란색 형광이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보고했다. 기억 저장에 참여하는 시냅스들을 보여주는 표지였다. 청록색 형광은 이런 공포 기억의 저장에 관여하지 않은 시냅스들을 식별해주는 신호로 쓰였다.



[왼쪽] 기억 저장 신경세포와 일반 신경세포의 수상돌기 비교. 기억 저장 세포의 수상돌기에 있는 시냅스 중에서 노란색 형광표지를 띤 시냅스가 기억 저장 시냅스이다. [오른쪽] 이번에 개발된 시냅스 식별 기법(Dual-eGRASP)을 이용해 시냅스들을 구분하여 표지한 이미지. 빨간색 수상돌기 위의 노란색 형광표지가 있는 지점이 기억저장 시냅스들이 있는 곳이다. 강봉균 교수 연구진 제공



이번 실험에선 또한 공포 자극과 기억이 강할수록 기억 저장에 참여한 시냅스들에서 노란색 형광 빛이 밀집해 발현됐으며(연결 시냅스의 수가 늘어났음을 뜻한다), 시냅스 부위에 있는 수상돌기 가시들은 크기가 더욱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생쥐에게 약한 전류 자극으로 공포 기억을 학습시킬 때 그 자극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데, 자극의 세기가 커질수록, 즉 공포 기억의 세기가 커질수록 공포 기억에 의해 일어나는 기억 저장 시냅스의 구조적 변화도 커졌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는 공포 기억이 강할수록 시냅스의 ‘연결’이 강해짐을 시각적으로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공동연구가 잦아지는 요즘엔 보기 드물게 이번 연구는 서울대 기억연구단 소속 연구진(논문 공저자 11명)만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도 눈에 띈다. 강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기억 연구를 해온 게 30년인데, 어찌 보면 이번 연구는 그동안 연구결과를 집대성하는 것이기도 해서 뜻깊다”고 말했다.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인 엔그램 세포, 그리고 특히 그 시냅스들을 식별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도구(tool)가 개발되면서 해마는 물론이고 다른 뇌 부위에서도, 예컨대 수면이나 감정 등에 따른 시냅스 패턴 변화 같은 시냅스 연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시냅스 관측 도구가 기억과 관련한 뇌질환 연구나 치료법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기억이 저장된 분자, 세포, 연결망 수준을 포괄하는 기억 흔적, 또는 기억 장소를 일컬어 ‘엔그램’이라고 불러왔으며, 기억 저장에 관여하는 신경세포(뉴런)를 가리켜 ‘엔그램 세포’라 통칭하기도 한다.




[출처 : http://v.media.daum.net/v/20180427030604465?rcmd=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