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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estaurant

[정동현·한끼서울]충무로 ‘황평집’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37) 충무로 ‘황평집’


위태로운 형상들이 가득한 충무로. 인쇄공장 수는 매일 조금씩 줄어들고 일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그래도 갈 때마다 별 것 아닌 무심한 음식에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음식이 있다. 닭곰탕 명가 ‘황평집’이다.


물로 육수를 내는 것은 문명의 상징이다. 육수를 내기 위해서는 그릇이 있어야 하고 또 불이 있어야 한다.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높은 온도의 불을 다룰 수 있는 기술과 그 불을 이끌어내는 연료가 필요하다. 겨우 그 둘이 갖춰졌을 때 사람들은 고기를 물 속에 넣고 오래 끓여 육수를 우려냈다. 문명의 시작과 함께 육수도 그렇게 시작됐다.


불과 토기의 발명에서 시작됐을 단순하고 원시적인 조리법으로 탄생한 닭육수 한 그릇이 내 앞에 놓인다. 황평집의 국물은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다. 닭기름이 떠 있는 무거운 국물은 어두운 밤에도 힘을 잃지 않는다.


몇 십 년 닭을 삶고 삶아 도달한 경지는 무심한 닭육수 한 그릇이다. 그러나 그 한 그릇으로 밤을 지새우기엔 모자라다. 그쯤이면 국물 한 숟가락에 술 한 잔을 걸치고 무심히 걸어 다니는 종업원의 뒷모습을 바라볼 것이다. 아마 시끄럽게 떠드는 취객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메뉴판을 보면 모든 메뉴가 닭과 관련이 있다. 그중 제일 많이 팔리는 메뉴는 닭무침과 닭찜이다.



없던 입맛도 되살아나는 닭무침



만약 처음 이곳을 찾았다면 닭찜을 먹는 편이 좋다. 이 집의 뼈대와 같은 메뉴다. 닭의 크기는 1kg이 조금 안 되는 중닭이다. 제일 많이 팔리고 그래서 제일 싼 닭이다. 그 닭을 푹 삶아 육수를 내고 남은 살코기를 닭찜이라고 내놓는다. 오전 중에 닭을 한번 삶고 식혀서 살에 탄력을 더했다. 그 과정으로 제일 덕을 보는 부위는 껍질이다. 닭의 모든 부위 중에서 맛이 가장 진한 것은 껍질이다.


기름이 제일 많이 껴있기에 맛도 그만큼 진하다. 젤라틴이 엉겨 붙은 껍질을 입에 넣으면 먼저 이에 엉기는 식감이 느껴진다. 다음 차례는 체온으로 닭기름을 서서히 녹이는 과정이다. 조금씩 맛이 기름을 타고 흘러나온다. 고소하고 단 지방의 맛이다. 부위별로 소금에 찍어 먹다보면 이 담백한 살코기에 베인 맛이 위장에 쌓여간다.


닭무침은 닭찜 다음에 청하면 좋다. 자극적인 양념에 없던 입맛도 되살아난다. 양념은 과한 듯 보이지만 또 먹어보면 그런 느낌이 없다. 겨자가 섞인 양념은 매운 감각과 다른 청량감을 지녔다. 오이와 당근, 양파 같은 채소를 아삭아삭 씹고 닭고기를 푹하고 베어 먹으면 웃음기 없는 식모들이 주물주물 거리며 내놓는 이 단순한 음식이 새삼 놀랍다.


후루룩 곰탕 한 그릇을 비우고 가게를 나오는 길, 48년 동안 가게를 일구고 넓힌 이 가게는 가로등 드문 충무로를 늦도록 비추고 있었다.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62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