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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I/Tech Journalism

[Organic media]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나’의 정체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나’의 정체성 (User Identity in Social Network Service)


<이전 포스트: 소셜 미디어 서비스 구조 읽고 쓰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프로필 사진을 자주 바꾸기도 하고, 지금 있는 멋진 곳의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열심히 친구를 맺고, 다양한 사람들을 팔로우 한다. 어쩌면 정체성에 대한 욕구가 지금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하 SNS)의 확산 속도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을까? 정체성을 만드는 비법이 존재하기는 하는걸까?


이번 포스트에서는 우리 각자의 정체성이 어떤 레서피로 만들어지는지, 기본적 재료와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어떻게 하면 빠르고 똑똑하게 정체성을 만들수 있는지 답을 내려는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사용자 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정확히 짚어보고, 사람들이 ‘왜’ 반응하는지, 네트워크가 ‘왜’ 확산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사용자 정체성을 만드는 비밀의 레서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진화 속도와 영향력은 놀랍다. 끊임없이 콘텐츠가 공유되고 소통이 멈추지 않는다. 아니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의 가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SNS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도 단순히 인터넷 서비스 공간이 아니다. 사회관계, 시장구조, 교육 영역, 정치 판도 등 소셜 미디어와 연계된 모든 영역이 함께 들썩이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물어볼 것도 없이 이 모든 현상을 만드는 주인공은 ‘사용자’, 바로 우리 자신이다. 사용자 활동이 없으면 이 모든 현상은 있을 수 없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반대로 SNS가 없이 살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좋든 싫든 이제 인터넷 공간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존재’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물론 SNS 없이 사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 하지만 이 글을 읽게 될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들을 떠올리면 얘기가 좀 다르다. SNS 없이 살 수 없게 된 것은 인터넷이나 마크 주커버그, 트위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활동 없이 존재할 수 없고 그 대표적인 수단이 SNS가 된 것 뿐이다.



1. 주재료, 동일시(Identification)와 차별화(Differentiation)


인간의 모든 사회활동은 한마디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여정이다. 그런데 이 사회활동이 인터넷 공간에서는 오프라인보다 훨씬 더 빈번하고 동시다발적이며 중독적인 방식으로 요구된다. 여기서 정체성을 만드는 두 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서로 상반된, 그러나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두 가지의 욕구, 바로 ‘동일시(identification)’와 ‘차별화(differentiation)’이다. 이 두 요소는 서로 대립되지만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서로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이 메커니즘이 사용자 ‘정체성’을 만드는 비밀의 레서피가 된다.


우선 ‘동일시’란, 말 그대로 상대방과 나를 동일시 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누구를 닮고 싶다거나 어떤 그룹에 소속되고 싶다거나, 누구처럼 되고 싶다. 연예인이 입고 나온 옷이나 가방을 매고 그녀처럼 보이고 싶다. 보수적 성향의 정당이나 지구를 구하는 녹색당에 소속되고 싶다. 스티브잡스처럼 혁신하고 싶고 내 삶의 멘토처럼 살고 싶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페이스북에서 자주 스치고 대화하고 안정감도 얻는다. 이렇게 ‘닮고’ 싶고 특정 네트워크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가 동일시의 욕구이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는 동일시의 대표급 정도 되겠다.


반대로 차별화란, 특정 집단이나 사람으로부터 구별되고 싶은 욕구를 말한다. 정체성에 필요한 두 번째 재료이다. 


유행 지난 옷이 아니라 좀 더 트렌디한 옷을 입고 싶은 욕구, 조중동을 읽는 사람과 차별화되고 싶은 욕구, SNS에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를 만들고 싶은 욕구이다. 단순하게는 유튜브 동영상이나 댓글에서 ‘싫어요’를 누르는 것도 차별화지만 페이스북에서 모두 좋아요를 누를 때 아무 반응없이 침묵하는 것도 차별화의 방법이다.


처음부터 차별화가 의도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다수 속에 존재하기 위한 ‘포지셔닝’은 누구에게나 고민이다. 차별화는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고 이것은 결국 정체성을 추구하는 본능이며 평생 연습이다.



사용자 정체성(identity)은 크게 동일시(identification)와 차별화(differentiation) 욕구에 기반하며, 이 대립된 요소는 서로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 관계에 놓여있다.

사용자 정체성(identity)은 크게 동일시(identification)와 차별화(differentiation) 욕구에 기반하며, 이 대립된 요소는 서로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 관계에 놓여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동일시’도 ‘차별화’도 서로가 없이는 성립이 안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내가 다른 집단과 ‘차별화’된다는 것은 어떤 집단에 ‘동일시’된다는 것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동일시는 어떤 네트워크와 차별화됨을 뜻한다.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일어난다. 페이스북의 사용 패턴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용자 유형에 대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제나 맨 먼저 ‘좋아요’를 누르는 ‘First-Timer’형, 의견이나 논쟁거리를 주로 제시하는 ‘Activist’형 등 모두 동일시와 차별화 메커니즘이 만들어낸 결과들이다. 위의 스키마는 이와 같은 동일시와 차별화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결국 동일시는 차별화를 의미하며 차별화는 동일시를 의미한다는 말이다.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정체성은 성립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두 요소의 쫓고 쫓기는 관계가 어떻게 생생한 정체성을 만드는지 그 과정(process)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 여러가지 사회 현상 중 ‘유행’은 동일시와 차별화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사례이다.



2. 동일시와 차별화의 팽팽한 긴장 관계


유행은 계속 반복되고 수정되고 변화하는 사이클을 지닌다. 새로운 사이클이 일어나지 않으면 유행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때 사이클은 동일시와 차별화간의 상호작용, 그 팽팽한 긴장 관계가 유지될 때 만들어지고 지속된다. 뭔가 새로운 것이 유행이 되려면 그것을 새롭게 선도하는 집단이 필요하고, 또 추종하는 집단이 있어야 한다. 


유행을 선도하는 그룹은 ‘차별화’를 시도하는 그룹이고 이 선도 그룹을 추종하는 그룹은 ‘동일시’를 시도하는 그룹이다. 그리고 한번 유행이 영원한 유행이 되기는 어렵다. ‘유행을 타지 않는다’라는 말은 ‘유행이 아니다’라는 말과도 같다. 모든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 유행을 따라하게 될 때 즈음 되면 유행이 바뀐다.


이 중 패션은 특히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상징들을 통해 전달되므로 더욱 사례가 극명하다. 귀족의 신분은 아니지만 돈이 많아 귀족처럼 되고 싶었던 18세기의 ‘부르주아’라는 집단을 떠올려 보자. 이들은 과장된 복장과 화려한 패션으로 부르주아라는 정체성을 표현했다. 


부르주아 정체성을 선도하는 그룹과 이를 따라하는 그룹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부르주아 패션이 너무 대중화되어 그들의 가정부들까지도 그들을 따라하는 순간, 즉 더 이상 그들의 화려한 모자가 차별화 요소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그들은 그 모자를 버렸다. 모자는 촌스러움의 상징이 되고 새로운 유행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동일시와 차별화의 게임을 통해 새로운 사이클이 이어지고 ‘커뮤니케이션’은 계속된다.


부르주아 패션은 동일시와 차별화에 기반한 정체성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부르주아 패션은 동일시와 차별화에 기반한 정체성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체성이란 동일시와 차별화의 이중작용을 통해 형성되며, 한번 정해지면 영원히 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집단속에서 동일시와 차별화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과정속에서 형성된다.


결국 동일시와 차별화를 다른 말로 하면 나를 타인에게 표현하고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하는 방법이다. 고프만(Erving Goffman)도 우리가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관계를 통해 ‘나’를 인식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고프만의 ‘face’ 개념이 그렇다 [E. Goffman, On Face-work: An Analysis of Ritual Elements of Social Interaction, 1967].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고, 그것을 타인으로부터 ‘확인(confirm)’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고프만에 의하면,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가 타인에게서 확인받지 못하면 불안감이 생기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잃게 되기도 한다. 지인의 반응이 전혀 없는 SNS를 상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SNS에서 발견되는 동일시와 차별화


동일시와 차별화의 개념과 이 둘의 의존적 관계가 이해되었다면 이제 SNS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대입하여 몇 가지 시사점을 짚어보자. 혹시 ‘나는 단순히 생각을 적는 것뿐이고 동일시도 차별화도 아니다’라고 생각되는가?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동일시와 차별화의 핵심은 ‘나’가 ‘관계’속에 존재한다는 데에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 타인들은 나를 동일시와 차별화를 통해 구분하고 기억하게 된다.



1. 정체성과 네트워크 확산


우선 사용자 네트워크를 보자. 나의 친구 리스트와 팔로잉 리스트는 동일시와 차별화의 결과이다. 트위터에서 내가 팔로잉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 관심사가 무엇이고 어떤 네트워크에 속해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페이스북의 친구 리스트를 보면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린다.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리는 대표적 상징이라는 말이다. 


맨 처음 프로필 페이지를 개설하고 친구를 만들 때에는 나와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로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가족, 친한 친구 등 나와 가장 동일시 되는 집단이다. 그 이후 확장은 이것의 연장이다. 아는 사람, 친해지고 싶은 사람, 나의 관심 정보를 주로 발행하는 사람들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일시 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나의 네트워크는 결과적으로 나를 다른 네트워크와 ‘차별화’ 시키는 요인이 된다. 동일시와 차별화의 이중적 작용이 지금의 사용자 네트워크 규모를 만들었다고 하겠다.


두 번째는 콘텐츠 네트워크의 확산에서 나타나는 동일시와 차별화 작용이다. 개별적으로는 정보와 생각을 올리고(post), 공유하고(share), 좋아하는(like) 등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위들이다. 


하지만 기사 링크 하나에도 그 내용과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암묵적인 동일시가 내포되어 있다. 이것을 공유하고 좋아하는 것 또한 역시 동일시의 사례이다. 여기에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라고 댓글을 단다면 차별화가 시도되는 순간이다. 침묵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동일시와 차별화는 습관적으로, 매순간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이것을 네트워크 관점에서 보면 콘텐츠를 생산하고 주도하는 그룹과 이에 반응하고 확산시키고 재생산하는 다수의 그룹간의 동일시와 차별화 과정이라고 하겠다. 동일시와 차별화는 거창한 결심이나 전략이 아니다. 하루에 수십번씩 매 찰나 동일시와 차별화의 끝없는 줄다리기가 콘텐츠를 연결하고 확산하며, 그 결과가 ‘나’의 정체성으로 돌아온다.


인터넷 서비스에서 네트워크의 구조와 작동원리에 대해서는 이미 ‘소셜 미디어 서비스 구조 읽고 쓰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네트워크가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설명했다면 ‘동일시와 차별화’는 ‘왜’ 반응하는지에 해당한다. 이에 기반한 사용자 정체성은 네트워크가 작동하는데 필요한 ‘엔진’ 역할이라고 하겠다.



2. 동일시와 차별화의 긴장감이 무너질 때


하지만 동일시와 차별화의 긴장감은 자동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노력과 선택과 실천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 긴장감이 유지되지 못할 때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SNS에서 발견되는 아래 두가지 현상이 그 사례가 되겠다.


첫째는 SNS ‘허세’ 현상이다. 동일시와 차별화를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어렵고 힘든 노력이나 의사결정보다는, 말로써 ‘보여지고’ ‘드러나는’ 것 중심으로 동일시와 차별화를 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셜 서비스는 사용자가 생각과 생활을 노출하고 그에 대해 지인이 반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이 구조도 SNS가 허세로 흐르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말이나 사진 같은 것들이 나를 대변하는 상징이자 기호임과 동시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보니 이것이 과도화되어 ‘허세’ 현상까지 도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둘째, 동일시에 편중되는 현상이다[André Akoun, La communication démocratique et son destin, Paris, PUF, 1994]. 수많은 SNS를 통해 수없이 많은 그룹이 생겨나지만 모두 ‘유유상종’이라는 것이다. 동일시와 차별화의 긴장 관계가 깨지는 순간이다. 대신 ‘동일시’ 되는 그룹, 즉 나와 유사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집단을 만들고 찾으면서 ‘사회적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현상이 지배하게 된다. 


두 요소의 긴장 관계 대신 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 줄다리기에서 한쪽이 줄을 놔버리는 것과도 같다. 닮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지속되면 사회적 파편 현상으로 이어지는 위험성도 가진다. 이것은 이미 사회 전반에서 감지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SNS에서는 사용자들의 상호작용 방식이 더 급진적이고 가시적으로 발현되기 때문에 영향력도 훨씬 크다.


SNS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도, 마케팅을 하는 사람도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왜 사람들이 반응하는가?’ 그 답은 사용자 정체성에 있다. 사용자의 모든 동기가 결국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며, 이 과정은 오늘 언급한 동일시와 차별화의 메커니즘이 만드는 긴 여정이다.


정체성의 이슈는 평생 노력하고 풀어야할 모두의 숙제와도 같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인터넷 공간의 근간으로 자리를 잡게 된 (당연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네트워크와 정체성은 지금의 소셜 현상을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동일시와 차별화에만 국한하여 정체성을 살펴보았지만 사실 중요한 축이 하나 더 있다. 동일시와 차별화가 X축을 형성한다면 Y축이 되는 기준점이라고 하겠다. 이 또한 두 개의 대립된 요소지만 서로의 상호작용과 의존적 관계로서만 성립된다. 바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관한 것인데, 사용자의 사회적 참여나 공유 경제 등을 설명할 수 있는 기재이기도 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별도의 포스트에서 다루게 되었다.


(일러두기: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동일시와 차별화는 오래된 레서피이다. 헤겔의 정신 현상학이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지멜의 사회적 상호작용 [Georg Simmel, "The problem of sociology," Journal of American Sociology, 1909] 등 일찌기 많은 철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었던 재료이다. 


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여정을 단순화, 구조화하고 ‘동일시-차별화’로 통칭하여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부르주아에 대한 이야기는 작고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드레 아쿤 교수의 필사본[André Akoun, La mode, unpublished manuscript, 1989]에 근거했음을 일러둔다.)



* 많은 공유와 피드백 부탁드리며 글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관련 포스트: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소셜게임’>



May 1st, 2013
Dr. Agnès Jiyoung YUN
Organic Media Lab Founder & CEO

email: yun@organicmedialab.com
facebook: yun.agnes
Twitter: @agnes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