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인)에 대한 비난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진행되는 동안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내고, 직접 관계도 없는
유대균의 치킨 주문을 보도하고, 단식을 하는 유가족의 사생활을 파헤친다. 정부와 검찰의 발표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필요한
질문은 스스로 자제하고, 자기 회사에 유리한 것만 필요한 만큼 보도한다.
언론에 대한 불신은 자연스럽게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말을 낳았다. 그러나 있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고, 대립하는 양쪽의 입장을 동등하게 보도하며, 중립을 지키는 것
자체가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국내 언론을 기레기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정당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 언론이
얼마나 언론다움과 거리가 먼가를 보여주는 대비적인 사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결국 상대적인 존재다.
아름다움과 추함,
성숙과 미성숙, 정의와 불의, 평등과 차별은 결국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평생 군사정부의 나팔수, 재벌의 대변인,
정부의 전략적 동반자로 행세해 왔던 언론만 봤던 일반 국민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배경도 상황도 다르지만
반복해서 낯선 풍경을 보여주고 다른 관점을 갖도록 돕는 것은 그래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1972년 6월 17일. 민주당 선거본부가 있는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 불법 침입했던 5명이 경찰에 구속되면서
시작된다. 단순 강도사건이 아니라 도청기를 재설치하기 위한 침투였다. 그 중의 한 명은 전직 CIA로 밝혀졌고 닉슨 대통령의
자문관이었던 에드워드 헌트의 전화번호도 갖고 있었다. 백악관은 3류 도둑사건에 불과하다고 반박했지만 불법도청을 지시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 비용은 어떻게 조달되었고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만약 공화당의 재선위원회(CRP) 자금과
인력이 사용되었다면 현직 대통령과 측근은 얼마나 연루된 것일까? 불법도청 시도는 일회성일까 아니면 또 다른 불법적인 선거운동이 더
있는 것일까? 또한 범인들의 변호사 비용과 FBI의 조사를 막으려는 시도는 어떻게 가능할까? 약관 20대에 불과했던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던진 질문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연루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은
고단했다. 재선에 성공한 닉슨 대통령과 백악관은 워싱턴포스트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고 FBI, CIA 및
연방커뮤니케이션위원회(FCC) 등을 모두 동원했다.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 편집주간 벤자민 브래들리, 편집국장 하워드 사이먼스 등
관련 기자들은 구속의 위협을 받았으며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려 2년에 걸친 투쟁 끝에 진실은 마침내
승리했다. 닉슨 대통령 자신은 물론 보좌관 존 에일리크먼과 비서실장 H 홀더먼 모두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불법도청만이 아니라 민주당 후보를 대상으로 랫퍼킹(Ratfucking)이라는 불법선거운동도 확인되었다. 민주당 후보자들의 가족
미행하기, 그들의 사생활 자료 수집하기, 후보자들의 문구가 들어간 편지지를 이용한 편지 위조 및 배포, 신문에 거짓 정보나 날조된
정보 누설, 유세일정 교란시키기, 선거운동 기밀자료의 탈취, 다수의 민주당 선거운동원 사생활 조사 등 그 종류와 규모도
엄청났다. 백악관의 많은 고위관료들 또한 구속되었고 닉슨 대통령은 결국 사법방해죄, 권력남용죄, 의회모욕죄로 탄핵을 당했다.
1974
년 8월 8일. 닉슨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직 사퇴를 공식발표했다. 당시 회견문에서 그는"오늘 나는 대통령으로서 가장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나의 가장 친밀한 동료 두 명의 사표를 수리했습니다. 밥 홀더먼과 존 에일리크먼, 이 두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공복입니다... 사실을 밝혀낸 것은 제도입니다.
이 경우 제도는 결연한 태도를 견지한 대배심이며, 정직한
검찰이며, 용기있는 판사 존 시리카이며, 활발하고 자유로운 언론입니다"라고 말했다. 로널드 지글러 백악관 대변인 또한 워터게이트
사건 폭로 보도를 비난했던 것에 대해 워싱턴포스트와 그 신문의 두 기자에게 공식 사과했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워싱턴포스트, 대배심을 이끌면서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던 존 시리카 수석판사, 그리고 상원의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와 아치볼트 콕스
특별검사 등이 협력해서 일궈낸 수확이었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두 사람이 공저한『워터게이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지금도
사회과학의 필독서다. 뉴스생태계에 워터게이트 사건이 남긴 유산 또한 엄청나다.
언론의 존재이유. 가장 두드러진 유산
중의 하나다.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대통령과 측근, 대기업, 군대, 검찰과 비밀 정보부는 지금도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다. 일반인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 얼마나 공정한지, 정말 현명한 판단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들은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할 수 있고, 언론을 조작할 수 있으며, 관료조직을 이용해 정의를
짓밟을 수 있다.
진실을 은폐할 수 있을 뿐더러 왜곡된 정보와 조작을 통해 그럴듯한 진실을 만들기도 한다.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
이들을 감시한다. 권력집단의 부정을 고발하고, 비리를 파헤치고, 국민의 공복으로서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지켜본다. 물론 당시
두 기자는 일개 국민으로서 자신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무례하거나, 대통령이라는 제도에 타격을 주거나, 궁극적으로 국가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진실을 택했다. 진실로 인해 국가이익이 일시적으로 제한을 받을 수 있지만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진실과 국가이익은 충돌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었다. 또 다른 유산은 인터넷 시대에 넘쳐나는 정보와
뚜렷이 구분되는 뉴스의 본질을 보여준 데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보도는 1인극이 아니었다.
집단창작물이었다. 자살한 남편을 대신해 발행인을 맡았던 그레이엄 캐서린 여사는 가장 바깥에 있는 보호막이었다.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를 비롯해 닉슨 행정부의 외압을 막았고, 기자들을 대신해 감옥에 갈 것을 자청했고, 소속 기자들을 무한 신뢰했다. 벤자민
브래들리, 하워드 사이먼스, 해리 로젠펠드, 베리 서스먼 등 편집국 간부들은 관련 기사 작성에 공동으로 참여했고, 문장을
다듬었고, 행여 있을지 모르는 사실관계의 오류를 바로 잡았다. 초년병 기자가 겁에 질렸을 때는 위로했고, 정보원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수정을 지시했고, 명확한 사실이 아닐 경우에는 보도를 막았다. 취재 및 보도의 원칙도 확립했다.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현직 대통령을 거역할 취재원이 없을 때도 포스트 기자들은 뉴스를 위해 취재원에게 금전적 보상을 약속하지 말 것, 취재원이 원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인터뷰를 강요하지 말 것, 불법 도청이나 부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지 말 것, 익명을 보장했을 경우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것 등의 원칙을 지켰다.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 가령, 백악관 비서실장 홀더먼의
관련설을 보도하기에 앞서 두 기자는 딥스로트로 알려진 익명의 FBI 관료, 재정을 담당했던 휴 슬로언의 증언, FBI 담당 수사관
및 백악관의 법률 전문가 등 4명의 정보원으로부터 확인 작업을 거쳤다. 편집국 간부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두 기자를 대상으로
실제 취재과정을 재연하도록 했고 의문이 나는 점에 대해서는 확인을 요구했다. 뉴스에 등장하는 이해관계자의 반론을 반드시 실었고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에는 그 사실을 적었다. 언론인의 전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도 있다.
언론은 진실을
찾아가는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무수한 취재원을 인터뷰하고, 또 온갖 루머와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야
한다. 냉철한 분석력, 효과적인 인터뷰 기술, 본질을 꼬집어내는 통찰력과 자료수집 및 요약능력이 요구된다. 출입처에서 나눠주는
보도자료를 뉴스로 내보내는 것은 이런 전문성과 무관하다. 권력형 비리와 같은 복잡한 사안을 다룸에 있어 정확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당연히 특정 주제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역사적 맥락, 핵심적 이해관계 및 전후좌우 맥락을 알아야 한다.
정확한 문장력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자질이다. 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뉴스의 본질로 인해 법적 분쟁은 물론 돌이킬 수 없는
파장이 따른다. 위협을 당하는 피보도 대상자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한 정확하고, 충분한 확인 작업을 거친 정보의 생산, 단어
선택, 문장, 팩트에 대한 반복적인 확인은 그래서 필수다.
끝으로 모든 공격은 결국 메신저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높은 윤리성과
공익의식도 필요충분조건이다. 특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하거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언론인에 대한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기자들은 신뢰를 받았고 그 덕분에 진실의 수호자가 될 수 있었다.
국내
언론은 비겁하다. 국민도 언론을 도와주지 않는다. 닉슨을 탄핵시킨 힘은 결국 성숙한 구성원이었다. 각자 제 자리를 지켰다.
대법원은 현직 대통령의 특혜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도 정의를 수호한다는 원칙 외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닉슨을 사랑했던 많은
공직자들 또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진정한 국익이라고 믿었다. 언론 또한 언론다움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언론사주는 밤의
대통령이라고 거들먹거리는 대신 일선 기자를 위해 자청해서 감옥에 갈 수 있다고 선언했다. 편집국장을 비롯한 임원들 역시 외압에
당당히 맞섰다.
약관의 기자들은 지하 주차장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인터뷰를 했고,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고, 법정에 소환되면서도 제
일에 충실했다. 현직 대통령과 맞서는 힘겨운 투쟁 과정에서도 언론의 취재와 보도 윤리에도 충실했다. 항상 독립적이고, 도덕적이며,
메신저로서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주의했다. 소금 먹은 사람이 물을 먹는다는 평범한 진리에 충실했다. 권력과 돈이 제공하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2014년 한국에서 이런 언론인은 없는 것 같다. 민주주의를 부정한 많은 부정은 잊히는 것
같다. 실시간 사이버 검열이 이루어지고 공직자인 대통령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일본계 특파원은 기소를 당한다. 엊그제까지 너무도
당연했던 상식이 잔인하게 배반당하지만 침묵은 더욱 견고해진다. 언론을 가르치는 일이 오늘날처럼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출처 : http://www.huffingtonpost.kr/sunghae-kim/story_b_5956434.html?fb_action_ids=1382815348523537&fb_action_types=og.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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