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홍콩 섬(香港島)과 주룽 반도(九龍半島 )와 신제(新界) 및 그 밖의 부속도서로 이루어져 있음
홍콩섬: 중서구(中西區), 만자구(灣仔區), 동구(東區), 남구(南區)
주룽반도: 유첨왕구(油尖旺區), 심수부구, 구룡성구(九龍城區), 황대선구(黃大仙區), 관당구(觀塘區)
신제: 사전구(沙田區), 서공구(西貢區), 대부구(大簿區), 북구(北區), 원랑구(元朗區), 둔문구(屯門區), 전만구(筌灣區), 규청구(葵靑區, 이도구(離島區)
또한 1898년 제2차 북경조약에 의거하여 신계지 및 235개 부속도서에 대한 99년간 (1898.7.1∼1997.6.30)의 조차계약을 체결한다. 영국이 지배권을 가지게 된 후 홍콩은 영국의 주요 무역항으로 자리잡았으나 1941.12월 일본이 홍콩을 침략하면서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1945.8월 다시 영국이 식민지 지배권을 회복하게 되면서 1946년 홍콩 총독부가 재수립되었고 1967년 홍콩 총독부를 홍콩정청으로 개칭하게 된다. 그 이후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이전인 1984년 중국과 영국 양측은 1997년에 홍콩의 주권을 영국에서 중국으로 이전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1997.7.1 중국이 주권을 회복하고 지금의 홍콩특별행정구를 설치하게 된다.
또한 철도교통은 열차(KCR), 지하철(MTR), 그리고 경철( LRT)등 다양한 형태로 발달되어 있으며, 특히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연결해주는 스타페리는 홍콩의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아울러 1998년 7월에 새롭게 개항한 란타우섬의 홍콩국제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유동인원이 많은 공항 중 하나이며 첵랍콕국제공항이라고도 불리운다.
홍콩은 지난 2000년부터 도심의 보행환경 개선과 대기오염 완화를 위해 풀타임 보행도로(Full-time pedestrian street), 파트타임 보행도로(Part-time pedestrian street), 교통 진정 도로(Traffic-calming street) 등 세 가지 종류의 보행자 우선도로를 조성했는데 풀타임 보행도로는 차량통행이 전면 제한되고, 파트타임 보행도로는 정해진 시간대에 차량통행이 금지된다. 교통 진정 도로는 보도를 넓혀 보행자 중심으로 도로를 개선시켰다.
이러한 도심내 교통환경의 개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홍콩정부는 홍콩내 섬과 주변도시들과의 연결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대규모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 홍콩-광저우간 최고 시속 203㎞에 이르는 고속열차가 개통되었으며, 홍콩 반환 10주년을 맞아 션전과 홍콩을 잇는 선전만대교가 개통돼 홍콩-대륙간 육상 관문은 3개로 늘어났으며, 오는 2015년에는 홍콩 ,주하이, 마카오를 연결하는 총연장 35㎞의 강주아오(港珠墺)대교가 완공될 예정이다.
강주아오 대교가 완성되면 홍콩에서 출발하여 마카오-주하이-광저우-선전을 거쳐 홍콩으로 되돌아오는 주장강 삼각주 경제권을 어우르는 원형도로가 개통되게 된다.
구 분
|
자연증가(천명)
|
유입유출(천명)
|
인구증가율
|
---|---|---|---|
1970 |
59.1 |
30.2 |
2.3 |
1979 |
56.9 |
197.9 |
5.3 |
1985 |
50.9 |
18.6 |
1.3 |
1995 |
37.2 |
113.5 |
2.5 |
2000 |
20.3 |
53.6 |
1.1 |
2003 |
10.0 |
28.4 |
0.6 |
2004 |
12.9 |
20.6 |
0.5 |
2005 |
18.3 |
21.8 |
0.6 |
2006 |
28.9 |
42.8 |
1.0 |
2007(연중) |
28.8 |
35.8 |
0.9 |
香灣統計處.2007
이러한 이주 인구의 감소와 인구의 노령화는 향후 노동인구의 감소와 사회 후생비용의 증가 등으로 홍콩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 장애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1) 경제발전 과정
홍콩경제는 중계무역에서 수출가공무역으로 그리고 다시 국제금융센터로의 발전과정을 밟아왔다. 1984년 영국이 홍콩을 자유항으로 선언한 이후 홍콩은 중국과의 중계무역항으로써 은행, 창고, 운수 등 무역관련 산업이 발달되었다. 이후 중국본토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륙에서 기업가와 숙련공 등이 유입되었고 중계무역으로 축적된 자본과 본토로부터 유입된 자본 등은 1950년대에 홍콩을 중계무역에서 수출가공무역으로 전환하는 물적토대가 되었다.
이후 1970년대 초에 아시아 경제가 성장하면서 국제적인 금융회사들이 홍콩으로 몰려들었고 이는 홍콩 금융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1972년 오일쇼크 이후 홍콩은 달러화에 연계한 환율제도를 구축하면서 금융센터의 지위를 공고하게 다지게 된다. 그리고 197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은 홍콩을 세계자본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외국자본의 창구역할을 담당하게 하였고 이는 홍콩의 금융산업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2) 도시 경쟁력
세계경제포럼(WEF)이 131개 국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하여 발표한 “2007~2008 세계경쟁력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전년대비 1단계 상승하여 34위를 기록했으며 홍콩은 전년대비 2단계 하락하여 12위를 기록하였다.
그 중 홍콩은 상품시장 효율성과 금융시장 성숙도면에서 131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했으며 인프라스트럭처, 거시경제 안정성, 노동시장효율성 등도 5위권 안으로 높은 점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혁신도와 시장규모는 각각 23위, 27위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구 분 |
순 위 |
---|---|
2007 |
12 |
상품시장 효율성 |
1 |
금융시장 성숙도 |
1 |
인프라스트럭처 |
5 |
거시경제안정성 |
5 |
기술수준 |
6 |
제도 |
12 |
혁신도 |
23 |
고등교육 및 훈련 |
26 |
시장규모 |
27 |
그 중 품질경쟁력 등은 1위를 차지했으나 구조경쟁력과 인프라시설은 3위, 성장경쟁력은 200개 도시 중 198위를 기록하였다.
년순위
|
2007
|
2006
|
---|---|---|
1 |
홍콩 |
홍콩 |
2 |
션전 |
타이베이 |
3 |
상하이 |
상하이 |
4 |
베이징 |
베이징 |
5 |
광저우 |
션전 |
中國城市競爭力報告, 2006, 2007
실제 중국 내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인력이나 기술, 품질과 관련된 사항들은 대외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며 전체적으로 봤을 때 홍콩의 도시자체 경쟁력은 대내외적으로 조금씩 약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홍콩정부는 2001년부터 “홍콩2030”을 통해 도시발전을 총체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인프라스트럭처 개발 프로젝트” 와 함께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션전과의 탈국경 “통합도시”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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