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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estaurant

[정동현·한끼서울]마포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맛있는 한끼, 서울 ③ 마포구 굴다리식당


세계 3대 어쩌구 하는 말이 나오면 일단 웃음이 나온다. 세계 3대 불가사의로 시작해 세계 3대 수프, 세계 3대 진미 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3대 시리즈는 사실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다. 줄 세우기 좋아하는 것은 그쪽이나 이쪽이나 매 한 가지. 게다가 딱 세 개만 외우면 되니 간편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욕을 하지만 ‘다이제스트’ 풍으로 만든 잡학 사전류 3대 시리즈는 재미나다. 3등 안에 들면 상을 주듯, 순위 놀음 하는 재미는 끊을 수가 없다.


먹을 것 가지고 3대를 꼽는 것은 아예 관련 방송 프로그램이 생겨버렸다. 사실 그 방송을 쫓아 다니지는 않는다. 음식과 취향을 딱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김치찌개만은 예외다. 어릴 적 가벼운 주머니를 차고 남들이 3대 운운하는 집들을 찾아다닌 경험이 있는 탓에 김치찌개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3대 김치찌개 집이 있는데 말이야”라고 운을 띄운다. 논란 여지는 분명히 있지만 그 3대 안에 마포 ‘굴다리 식당’이 들어갈 자리는 꽤 넉넉해 보인다.


그날 밤 갑자기 굴다리 식당 생각이 난 것은 저녁 무렵 선선한 바람 때문인지 모른다. 혹은 오후에 내린 가랑비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둘은 갑자기 식욕이 동했다.



“굴다리 식당 갈까?”


나의 제안이 속전속결로 통과됐다. 축축한 밤길을 달렸다. 마포 구석 도로변에 있는 굴다리 식당에 도착했을 때 식당 안은 테이블 위에 소주병을 쌓아올린 사람들이 한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자리는 그들 옆 작은 테이블이었다.


“뭐 먹을래?”라는 질문은 형식적이었다. 어차피 시킬 메뉴도 몇 되지 않았다. 김치찌개 전문이니 김치찌개는 기본, 제육볶음도 아니 먹을 수 없었다. 나는 익숙한 척 “찌개 하나, 제육 하나 주세요.”라고 손을 들고 말했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은 쟁반을 든 아주머니가 홀을 왔다 갔다 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주문과 동시에 음식이 나오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음식을 미리 만들어놓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음식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고 절대 급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미리 해놓아야 맛이 배는 종류가 있다. 이곳 김치찌개가 특히 그렇다.



대략 3분 여 후 상이 깔렸다. 스테인레스 대접에 김치찌개, 플라스틱 접시에 뻘건 제육볶음이 담겨 왔다. 단품으로 승부하는 집이 대개 그렇듯 반찬은 사족일 것이나 북어조림과 계란말이는 꽤 모양새가 먹음직스러웠다.


우선 김치찌개에 숟가락을 집어넣었다. 펄펄 끓이지 않는 탓에 뜨거운 기운은 덜하다. 버너를 앞에 두고 땀을 흘리며 후후 불어가며 찌개를 먹어야 먹은 것 같다는 사람에게 이 집은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뜨거운 국물에 혀 데는 것을 싫어한다면 이 온순한 찌개 매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래 끓여 부드럽고 온도가 높지 않아 차분한 이 집 김치찌개는 수더분하여 정감이 간다.



제육볶음도 김치찌개와 결이 비슷하다. 고기는 숨펑숨펑 썰은 듯 두껍고 양념은 몇 번 덧칠을 한 듯 두텁다. 하지만 그 맛은 맺힌 곳 없이 쉽게 풀어지고 밥 한 공기는 그 순한 결을 따라 술술 묵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저녁 식사 때를 지난 밤, 늦은 끼니를 챙기는 남녀,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한 여자, 표정에 어둠이 없는 청춘들은 툭툭 내어놓는 김치찌개 한 사발에 밥을 씹고 소주를 넘기며 하루를 마감했다.


목소리가 큰 음식은 아니다. 화려하지 않고 맛도 유별난 것이 없다. 하지만 익숙하고 친숙하다. 언젠가 먹어본 것 같다. 자취방에 혼자 앉아 먹다 남은 것을 데운 것일지도, 어릴 적 할머니가 푹 끓여 국자로 퍼 담아 주던 그것일지도 모른다. 그 기억의 연을 찾게 되면 그제야 납득이 간다. 이 집이 굳이 3대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굳이 3대가 아닐 까닭도 없다.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092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