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몸담았던 회사 중 하나에서 실제로 겪었던 일이다. 그 회사는 국내 굴지의 중견기업이고 상당한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어서 입사하면서 회사가 나름대로 잘 정비된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입사 직후 회사 전반에 대한 오리엔테이션과 각 부서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소개를 받는 과정에서 그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정리한 용어집을 접하게 되었다. 삼성에서 신경영 추진 이후에 정리했던 “삼성 용어집”에 착안해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이 용어집은 그 회사 사람들끼리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공유하는 용어들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용어집의 내용을 익혀 나가면서 나는 매우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외부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업계 특유의 용어나 일본어 등이 상당 수 있었고 심지어는 외부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마저도 다른 뜻으로 사용하거나 은어처럼 축약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세발”은 “세금계산서 발행”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용어집”이라기 보다는 “은어집”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용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거나 설사 소속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 것이었다.
어쨌든 그 회사를 다녀야 하니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나는 예전에 경영실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서에서 4년 이상 일한 적이 있고 그 중 1년은 전사 예산을 관리하는 일을 했었다.
그런데 새로 옮긴 이 회사에서 “예산”이라는 용어가 쓰일 때마다 왠지 좀 혼란스럽게 느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예산이라는 용어를 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쓰고 있었다. 어떤 때는 사업계획을, 어떤 때는 경비 계획을, 어떤 때는 매출과 손익을 예산이라는 용어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지시 받은 사람들마다 같은 용어를 다르게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원가”라는 용어 조차도 다양한 의미로 쓰여지고 있었다. 단지 원가라는 용어를 언급하면서 어떤 때는 제조원가를, 어떤 때는 구매원가를, 어떤 때는 총경비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임원들과 실무자들이 오너가 “예산”과 “원가”라는 용어를 쓸 때마다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니 회사가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일 재간이 없지 않은가.
또 하나의 예를 들면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경영혁신 운동인 “신경영”이 출범하여 막 속도를 내는 시점에서 그룹 회장이 CAD/CAM을 가지고 문제를 삼아 호통을 친 적이 있었다. 관계사마다 사용하고 있는 CAD/CAM이 서로 데이터 공유를 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안되고 막대한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 이후 그룹 회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CAD/CAM 문제를 거론하였다.
이 그룹 내에서 CAD/CAM을 쓰는 부서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결국 엄청난 비용을 들여 모든 관계사의 CAD/CAM 장비를 새로운 기종으로 통일하여 구매, 설치하였다. 그리고 그룹 회장에게 지시사항의 완료 보고를 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회장은 보고를 받고 엄청나게 역정을 냈다고 한다. 회장이 뜻했던 것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회장은 그룹 전체에 걸쳐 정보가 원활하게 전달되고 공유될 수 있는 정보시스템과 업무 체계의 구축을 염두에 두고 지시를 했지만 컴퓨터 용어 중 당장 생각나는 것이 CAD/CAM이다보니 그것을 예로 든 것이다.
그런데 그 지시를 받은 임원들과 전략 스탭들 또한 컴퓨터에 대해 전문성이 높지 않다 보니 직접적으로 언급된 CAD/CAM만을 문제로 인식한 것이고 정보시스템 전반과 업무 체계에 대한 개선은 없이 모든 관계사의 연구소만 들들 볶아 애꿎은 기계만 교체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용어 사용이 혼란스러우면 성과창출과 목표달성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 용어를 알지 못하여 대화가 잘 안되는 경우도 문제이지만 용어를 모르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같은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조직 내에서 사용되면서 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용어를 보편 타당한 의미로 정의하라. 그리고 그것을 구성원들과 공유하라. 하나의 용어가 그 조직 외부에서 사용하는 의미와 다른 의미로 정의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다른 사람이 용어를 모르는 경우는 가르쳐 주면 그만이지만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출처 : 착한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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