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예를 든 바 있는 중국 부품공장의 기존 생산 방식은 공정이 흐름으로 연결되지 않고 각 공정이 섬처럼 독립되어 일하는 Job Shop 방식이었는데 이 방식은 재공(Work in Process) 재고가 최대로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생산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재공 재고는 원자재가 투입되어 제품으로 완성되기 전까지 공정 중에 미완성인 상태로 존재하는 재고를 말하는데 그 규모와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으므로 결코 소홀히 보아서는 안 된다. 어찌 보면 재공 재고의 관리 수준이 그 회사 경영의 수준과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며 재공 재고의 분석만으로도 문제의 단서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 중국 부품 공장 전체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된 것도 매출액 규모가 비슷한 경쟁기업의 재무제표를 비교 분석한 결과 그 경쟁 회사보다 재공 재고 수준이 두 배나 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재공 재고가 많다는 것은 공정이 효율적이지 못하며 제품을 생산하여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객으로부터의 주문 납기를 지키지 못할 위험이 높아지므로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비축 재고를 운영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제품 재고 보유량이 많아진다. 재공 재고와 제품 재고가 늘어나게 되면 생산에 투입하기 위한 원자재도 더 많은 양을 보유해야만 한다.
따라서 재공 재고가 증가한다는 것은 제품 재고와 원자재 재고가 모두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회사 전체의 자산 운영 효율을 크게 감소시키고 현금을 묶어 놓게 되므로 경영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재공 재고가 많고 납기가 길어지게 되면 공정 상에서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변동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재공 기간이 2일인 경우와 20일인 경우를 생각해 보면 후자의 경우가 재공 재고의 양이 많을 뿐만 아니라 변동성이 발생할 확률 또한 10배 이상 높다고 볼 수 있다.
생산 공정의 성공적인 운영은 지속성과 안정성이 생명인데 공정 중의 변동성은 생산의 불안정을 수반하게 된다. 그러므로 재공 재고가 증가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생산 효율이 저하되고 불량이 늘어나며 로스(Loss)가 증가하면서 수율(Yield)도 감소한다.
이러한 재공 재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하나의 공정에서 한 단위의 작업이 완료되는 즉시 바로 다음 공정으로 넘기는 것이다. 주문 작업량을 모두 완료한 후 전체를 다음 공정으로 넘기는 Job Shop 방식과는 개념상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공정은 완전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재공 재고는 최소화되어 모든 공정이 현재 작업 중인 한 단위의 재공 재고만 갖게 되므로 재공 재고 전체의 양은 공정의 수와 같게 된다. 이 방식이 이론적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완벽한 공정 운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실제 상황에서는 이런 경우는 존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방식의 실현을 시도하게 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공정들마다 한 단위를 처리하기 위한 작업 속도가 다르다. 어떤 공정은 한 단위 작업을 10초에 처리하지만 다른 공정은 15초에 처리한다. 한 단위씩 처리하게 되면 작업 속도가 빠른 공정은 한 단위를 처리할 때마다 5초씩 데드타임이 발생하게 된다. 공정 중 한 단위 생산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 공정에 모든 공정이 속도를 맞추어야 하므로 재공 재고는 최소화했을지 몰라도 생산 효율은 크게 저하된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속도가 가장 늦은 공정의 수를 복수로 늘려 데드타임을 줄여 가면서 흐름을 최적화해야만 한다.
두 번째의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것인데 프로세스 상에 있는 어느 공정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공정이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병목 공정이 중단되었을 때만 전체 프로세스 속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이 경우처럼 모든 공정이 한 단위씩 처리해 나가는 방식으로 프로세스의 흐름을 연결하게 되면 모든 공정이 병목이나 마찬가지의 역할을 하게 되어 어느 공정이 중단되더라도 프로세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사실 토요타 자동차의 JIT(Just in Time) 방식은 이러한 개념에 가장 근접한 프로세스를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위에서 말한 극단적인 경우처럼 하나의 단위씩 작업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생산에 필요한 부품재고의 규모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 한 대를 조립하기 위해서는 2만개 이상의 부품이 필요한데 이 모든 부품을 생산에 필요한 수량 이상으로 보유할 경우 그 전체의 재고 규모는 엄청난 양이 된다. 이 때문에 토요타 자동차는 생산에 필요한 모든 부품을 모든 협력업체가 생산에 투입되기 직전 생산 현장에 적시에(Just in Time) 도착하도록 하여 최소량의 재고를 보유하되 생산 프로세스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개념을 구현하였다. 이 개념에 그 유명한 토요타 자동차만의 독창적인 간반(看板) 시스템이라는 재고 관리 기법이 결합되어 거의 완벽에 가까운 JIT를 생산 현장에 훌륭히 적용할 수 있었다.
토요타 자동차의 JIT와 간반 시스템은 최고의 생산 공정 및 재고 관리 기법 중 하나로 칭송을 받고 있는데 때로는 토요타 자동차 스스로가 이 방식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한다.토요타 자동차는 필요한 부품의 비축 재고를 거의 가져가지 않고 대부분의 재고 운영을 협력업체에서 하면서 생산에 필요한 부품만을 적시에 조달하다 보니 수 많은 협력업체 중 하나만 파업에 돌입해도 부품 하나의 조달 문제로 전체 프로세스가 중단되는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실상 하나의 단위씩 생산을 해 나가는 방식을 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이 때문에 한 공정에서 작업한 일정 수량을 한꺼번에 묶어 다음 공정으로 보내는 것이 필요해진다.
이렇게 복수의 단위를 묶어 한번에 처리하는 것을 배치(Batch)라고 한다. 전산 처리에서도 같은 개념이 사용된다. 발생한 데이터를 즉시 보여 주는 것을 리얼타임(Real Time)이라 하고 데이터를 모아서 한꺼번에 처리하여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을 배치(Batch)라고 하는 것도 동일한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어떤 경우든지 작업한 결과가 하나씩 순차적으로 프로세스의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니라 일정량만큼 모아서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을 배치(Batch)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얼만큼의 양을 모아서 처리할 것인가, 다시 말해 배치의 사이즈를 얼마로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배치 사이즈를 최대화하게 되면 Job Shop 생산 방식에 근접하게 되면서 재공 재고가 증가하고 납기가 길어지며 프로세스의 효율이 저하될 것이고 배치 사이즈를 최소화하면 한 단위씩 처리하는 완전 흐름 생산에 근접하게 되어 효율은 좋아지지만 공정 트러블 등에 의해 전체 프로세스가 중단될 위험이 매우 높아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배치 사이즈가 커 질수록 비효율이 증가하고 작아질수록 프로세스 중단의 리스크가 커지게 된다. 때문에 배치 사이즈는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 관계에 있는 비효율과 리스크 두 변수 사이의 어느 점에서인가 최적점을 찾아야만 한다.
모든 공정이 한 단위씩 작업을 처리해 나가는 완전 흐름 방식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프로세스 중단의 위험이 너무 커서 현실적이지 못하다. 이 때문에 배치를 적절히 활용하여 프로세스 중단의 리스크를 줄이고 공정의 안정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배치 사이즈를 너무 크게 하면 프로세스의 효율이 저하된다.
결국 배치 사이즈는 프로세스의 흐름과 재공 재고의 수준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배치 사이즈를 최소화할수록 경영 효율은 크게 증가한다, 하지만 배치 사이즈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는 프로세스 중단의 위험을 어디까지 충분히 흡수해 낼 수 있는가 하는 그 회사의 경영 역량에 달려 있다.
[출처 : 착한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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